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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드부아 Apr 01. 2020

무알콜러의 노트

술은 있지만, 알콜없는 인생을 살기로 했다.

35년을 나름 건강하게 살아 왔다고 믿었는데, 처음으로 나의 심장이 엇박으로 뛰는 것을 느꼈을 때의 그 우울함과 두려움은 말로 표현을 못 할 정도였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심지어, 샤워를 하면 심박이 135까지 솟구쳤고, 다시 자리에 앉으면 60으로 떨어졌다. 심지어 저녁에는 심하디 심한 저혈압이 와서 다리를 높이 두고 자야 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무리한 키토 다이어트를 했던 탓일까? 저혈당 증세인가? 몇 달 전 시작한 무리한 다이어트와 연관돼 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일단은 다이어트를 중지하고 원래의 식습관으로 돌아가고 두고 보기로 하였다.

인터넷을 뒤졌다.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이고, 어떻게 하면 원래대로 되돌아온단 말인가?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진실일지 거짓일지도 모르는 자료들을 총 종합해보았을 때, 결과적으로 부정맥은 심각한 현대인의 골칫덩어리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치는 약은 없다.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만 있을 뿐. 왜 발생하는지도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그냥 두면 없어지기도 하지만, 만약 심해져서 심장이 급속하게 떨리는 '심방세동'이 오면 돌연사할 수도 있다.


한 주, 두 주가 지나도록 나의 심장은 예전으로 돌아올 생각을 안 했다. 오히려 다신 건강하게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조바심 때문인지,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빈도가 늘어났다. 20대 같진 않아도, 나름 비유한다면 고혹한 재스민 같은 30대 중반의 한창인 나이인데, 늘어나는 눈가의 주름이나 걱정하면 더 했지 부정맥을 고민할 필요 없는 나이에 이를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에 스트레스가 날로 심해졌다.


결국, 더 심해진 부정맥 때문에 응급실까지 가게 되었다. 심장 관련 응급환자는 응급환자 중에서도 위급환자로 분류되는 모양이었다. 응급실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레드존에 나를 눕히더니 갖가지 검사를 하였다. 처음 보는 장비들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응급실에서 몇 가지 질문을 받았는데, 가족력이 있나? 와 최근 다이어트를 한 적이 있나 였다. 가족력이 없는 건강한 30대 여성이 심장 쪽 문제로 응급실에 끌려 들어올 때는 아마 이 두 가지 사실을 먼저 의심해 보는 듯했다.


많은 검사와 오랜 기다림 끝에 검사 결과가 나왔고, 결국 심방 쪽 문제보다는 조금 더 심각한 '심실'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심장에 무슨 관을 통과해서 추가 검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네 마네하는 이야기는 거의 나를 기절 직전까지 몰아가더니만, 결국 다행스럽게도, 오늘은 추가 검사 없이 일단 퇴원을 해도 되다고 하였다. 의사는 작은 하트 모양의 처방약인 콩코르를 쥐어주며(처방전을 쥐어줬는지 처방약을 쥐어줬는지 사실 가물가물함. 자세히 기억나는 것은 콩코르의 하트 모양), 지금 주말이라 담당 의사가 없으니 이틀 뒤인. 화요일에 진료를 받으러 다시 나오라 했다.

 

퇴원을 시키다니... 그리 심각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머리에 아직 수백 개의 질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여기는 응급실이니, 화요일까지 기다렸다 심장전문의 담당의사를 만나 모조리 물어보기로 하였다.


그렇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 말도 안 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배가 아플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안다. 속이 쓰리다면 소화제를 먹거나, 설사를 한다면, 정장제를 구해서 먹던가, 심해질 때면 식중독인지 장염인지를 대략 의심해 보고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약 처방을 받을 수 도 있다. 어제 먹었던 뭐가 이상했다는 추측도 해볼 수 있다. 이렇듯 미리 아는 증상과 익숙한 통증에 대해선 대략 어떻게 대처하면 언젠가 회복하겠거늘 감이 오기 때문에 몸은 아파도, 불안감은 적다. 그러나, 미지의 통증과 증상에 대해서는 말도 안 되는 불안감이 동반된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낫긴 낫는 것인지, 왜 증상이 나타났는지, 다음에 또 유발할 것인지 인터넷을 뒤져 봐도 부정맥엔 정확한 답이 없었다.


심장전문의인 담당의사에게 진료를 보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화요일이 돌아왔다.

여기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24시간 홀터 검사를 해볼 테니 며칠 뒤에 또다시 오라고 했다.



'오 마이 갓. 또 며칠을 기다리라고?'



의사는 나의 마음을 뻥 시원하게 뚫어버릴 답은 주지 않았지만 마지막 인내심을 갖고 며칠만 다시 더 기다리자라고 홀로 다짐했다.


그리고 며칠 뒤 다시 병원을 방문했다.


검사 결과를 쓱 훑어보더니, 의사가 말했다

.


"이 정도로 막 심하게 뛰어도 절대 죽지 않아요~"



장난기 섞인 말투로 의사가 던진 한마디에 나는 울음을 터뜨릴 뻔하였다.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불안한 마음은 심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어요.

극심한 스트레스를 안 받도록 평소에 잘 생활하세요 "



정말 한 달간의 부정맥으로 고생했던 지난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눈물이 고였다.

미지의 경험이 이토록 나에게 스트레스를 줄지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다이어트로 시작된 육체적 스트레스는 결국 정신적 스트레스에 영향을 주었고, 미지에의 경험이 그 스트레스를 결국 더 악화시켜 나의 머릿속에서 나는 불치병 환자가 되었고 이상 빠져나올 수가 없던 것이었다.



"약은 저번에 준 것을 일단 처방해주겠지만, 이건 치료약이 아니라, 증상이 나타날 때만 먹는 약이니 필요할 때만 먹으세요. 필요 없으면 아예 안 먹어도 돼요."



의사의 속 시원한 한 마디에, 나의 심장은 마법같이 차차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불규칙하게 뛰는 빈도수가 줄고, 심장의 쿵쾅거림도 완화되었다. 2주 안되어 부정맥 증상은 거의 없어져버렸다.


장장 한 달간의 이 놀라운 경험은 나에게 비로소 건강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주었다.

30대는 젊은 나이도 그렇다고 많이 먹은 것도 아닌 애매한 나이다. 젊은 마인드로 계속 사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 다가올 40대 이후의 중년의 인생을 위해 미리 건강관리를 하며 다져두면 더없이 좋을 나이다. 지금이 좋은 기회인 것이다.


의사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한 마디가 생각났다.



" 앞으로는 되도록 술, 담배, 카페인 등은 조심하도록 해요. 또 부정맥이 올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거든요. "



담배는 원래 안 했지만, 커피와 술 없이 살라고?  이럴 수가.... 부정맥은 다행히 자취를 감췄지만, 커피와 술 없는 한없이 재미없는 인생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카페인 챌린지


부정맥 증상이 없어지고 처음 몇 달은 디카페인만 마셨다. 각종 브랜드의 디카페인 원두를 사다가, 요리 내리고 죠리 내려마셨지만, 커피광인 나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디카페인에 지쳐가던 몇 달 뒤 어느 날 아침이었다.


' 안 되겠다. 이대로 못 참겠어.'


오랫동안 처박아 두었던 네스프레소 캡슐을 꺼내 들었다. 머신이 작동하고, 꽃내음보다 더 향긋한 원두의 향이 나의 부엌을 다시 채웠다. 한 모금 , 두 모금,  심장이 갑자기 놀라지 않게 아주아주 천천히 커피로 목을 적셨다. 몇 달간의 공백 후에 마시는 진짜 커피는 정말 최고의 힐링이었다. 심장이 다시 떨리면 어쩔까, 불안해하며 반잔씩으로 시작했지만, 다행히 그 뒤로도 나의 심장은 별문제 없이 규칙적으로 뛰어주었다.


카페인 챌린지는 성공적이었다!





알콜 챌린지


몸은 정직하다. 술을 마시고 얼굴이 터질 듯이 벌게 지는 것은, 몸에 술이 받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나는 사실 술을 잘 못한다.


많은 술이 없이도 높은 텐션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났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조차 약발이 점점 안 듣는 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들면 외향적이었던 성격도 점차 내성적으로 변한다고 하는데, 예전에 술 없이도 잘 놀았던 20대와는 달리, 이젠 맨 정신으로 취객들의 장단을 맞춰 주는 것이 생각보다 고달프다.


부정맥 이후, 카페인 챌린지는 다행히 성공으로 끝났으나, 아직 술은 입에 못 대고 있다. 연말에 놀러 간 여행지에서 기분 좀 내보겠다고 반잔의 사케를 마시고는 오랜만에 다시 심장 떨림을 느끼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카페인과 달리 나의 몸은 아직 알코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술도 원래 잘 못 했는데, 그냥 없이 살면 안 되냐고?

 

하지만, 이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담배를 안 하는 나는, 술은 내게 있어 그나마 사람과의 관계의 긴장감을 느슨하게 해주는 존재였다. 술은 커피 모임보다 느슨하고, 솔직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했던 도구였던 것이다. 단지 개인적인 모임 외에도, 잘 모르는 파티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술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이유는, 단지 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술이 가져다주는, 인간관계의 확장성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나는 플라시보의 효과를 최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술자리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술을 안 마셔도 같이 분위기에 취할 때가 있지 않은가?

늘 주변 사람들보다 한 텐션 높은 나에게는 좀 더 쉬운 일일 지도 모른다.


나는 국내에서 구입 가능한 무알콜 맥주 리스트 뽑아낸 후, 이것저것 시음해 보기로 시작했다.

몇 가지 입에 맞는 것들을 찾았고, 절망적이었던 나에게 한줄기 희망이 생겼다.


알코올은 들어 있지 않았지만(혹은 거의 들어있지 않았지만), 술이 가져다주는 느슨한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파티에서도 남들이 일반 맥주를 딸 때, 나는 미리 챙겨간 무알콜 맥주를 땄다. 파티에서 혼자만 술을 안 마신다는 소외감도 더 이상 들지 않았고, 별로 당기지도 않았지만 입이 심심해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했던 당 높은 탄산음료도 밤새 홀짝 거릴 필요가 없어졌다. 파티는 예전처럼 즐거워졌다.


무알콜 맥주가 나를 살린 것이다.


끝없이 계속될 줄 알았던 가뭄 속에서 하늘이 단주를 내려 주었다.  난 그렇게 무알콜 애주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임신 혹은 건강상의 아니면 필자와 비슷한 이유로 알콜을 입에대지 못하는 분들을 위하여 (내맘대로) 무알콜 순위  공개합니다.


2020 9월자 업데이트 


1. 일본 - 보리의 휴식 


제가 맛본 무알콜 최강의 맛은 역시 일본맥주입니다... 삿포로맥주 박물관에 갔다가 우연히 맛본 “보리의 휴식이라는 무알콜맥주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국내에서는 사기가 어려워서 포기했습니다만, 일본에 다시금 간다면  사오고 싶은 맥주입니다.

향긋한 꽃향이 가득한 무알콜 맥주인데,  이름을 “보리의 휴식이라 지었는지   같은... 산뜻한 하늘색 용기 포장과도  어울리는 그런 맛입니다. 그리고...당과 칼로리가 무려 0kcal 말이 됩니까!! 인생 무알콜 맥주이죠..!



2. 독일 마이셀

무알콜 맥주의 단점이라면, 화려한(?)칼로리와 아낌없는 당성분이죠. 대부분의 무알콜맥주들은 일반 맥주보다 당과 칼로리가 높을때가 많아요. 국내에서 구입가능한 무알콜맥주들을 서치하던중 가장 당과 칼로리가 낮았던 독일 마이셀. 그럭저럭 먹을 만햇던 마이셀도 단점이 있었으니... 일단 병을 따서 조금만 밖에 두어도 맛이 변해버려요. 원샷할 마음으로 열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손을 놓게 되었네요.

무알콜러 선언 이후 사랑에 빠지게 된 마이셀


3. 마지막으로 혜성처럼 나타난 저알콜 칭따오

원래 칭따오를 좋아했었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나마 당함량이 (다른거에 비해) 봐줄만한 칭따오 무알콜이 나왔습니다! 얼마전 롯데마트에 가서 무알콜 코너를 보던중 발견하고 바로 구입하고 집에와서 먹어보니 역시 칭따오는 배신을 안합니다. 성분이 안좋다는 말도 많은 칭따오지만 기름진 음식 먹을때 계속 땡기는건 칭따오밖에 없네요.. 역시 칭따오의 맛을 거의 살려  만들었네요. 다만 무알콜은 아니고 0.05%이하의 미량의 알콜이 함유되어 있다하니 확인하시구요. 그렇지만 알콜분해력 0 가까운 저도 얼굴이 빨개지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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