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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li Feb 06. 2020

외톨이 디지털 노마드

부대끼며 살아가는 나름의 맛.

불과 몇 년 전쯤, 아직 Z세대도 등장하지 않았을 무렵,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가 매우 '핫' 했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 xx에서 한 달 살기'로 진화되긴 했지만, 사실 이들의 기원은 비슷하다.


양쪽 다 어느 물리적인 조직에 완벽히 속해 있지 않으면서,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서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맞춰가며 살기 위해 택한 삶의 방식이다.


전자가 조금 더 '일'에 초점을 두고 더 나은 환경에서 '일'과 그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이점들'을 추구하는 느낌이 강한 반면, 후자에서는 조금 더 '삶의 경험'을 중요시하는 느낌을 받는다.


출근지옥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며,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도 적을 것이다. 평일에도 원하면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여행을 하기 위해 비싼 성수기에 비행기표를 구할 필요도 없을테며, 이 나라 저 나라에도 다 살아볼 수 있을 것이다. 둘다,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너무나도 꿈만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삶을 살면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인생의 행복은 훨씬 더 커질까?


2012년부터 한 달에 일주일씩 도쿄 생활을 하는 디지털 노마드를 경험해왔고, 중간중간 개인사업과 취업도 했었지만, 2017년부터 다시 디지털 노마드의 삶으로 돌아온 나의 개인적 의견은, ‘글쎄’ 이다.


주변에 재택근무를 한다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특히나, 곧 결혼을 바라보거나, 이미 했거나, 아이가 있거나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30대의 또래 친구들의 반응이 가장 뜨겁다.

어떻게 하면 쉽게 재택근무하며 돈을 벌 수 있냐 하는 질문을 많이 해오는데, 사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신입사원으로 힘들게 입사한 첫 직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두었고, 생각보다 재취업은 만만치 않았다. 3개월만에 사표를 낸 신입사원이라는 꼬리표가 달렸기 때문에, 결국 들어가고싶은 회사들은 대부분 마음을 접어야 했다. 생각보다 이 사회는 만만치 않았다.

어찌어찌 고군분투 하다 결국엔 다시 재취업이 되었지만 힘든 길로 돌아온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탄탄대로를 걷는 대신, 후미진 오솔길과 지름길들까지 터득한 덕에, 오히려 더 많은 삶의 경험과 그로부터 얻는 삶의 지혜도 터득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돌아돌아 도달한 그 길의 끝에서 나는 원하는 것을 얻었고 지금 그 삶에 꽤 만족하지만,

또 나름의 부작용도 있었다.


그 부작용은 생각지도 못했던,


'외로움'


이었다.


사교적인 성격에 비해 단단한 조직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나는, 이젠 방해꾼들 없이 혼자 일할 수 있다는 해방감에 처음엔 신이 났다. 무리에 휩쓸려 황금같은 점심시간을 보낼 필요도 없어졌고, 지루한 동료의 수다에 낄 필요도 없게 되었다.


처음엔 물론 좋았다.


나의 시간을 온전히 나의 의지하에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느새인가 점점 더 편협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일 뿐이 아니라 범위가 넓어져 나의 삶 자체에 점점 드리워져 갔다.


보고 싶지 않은 것과 듣고 싶지 않은 것을 안 보려, 안 들으려, 눈과 귀를 닫아도 억지로 들려주고 보여주는 사람이 없어지고, 내가 듣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는 것은  폭넓은 가치관을 접하고 삶을 경험을 누리는 데 있어 점점 더 한계를 두게 한다.


리모트워킹을 하다 보니, 나는 대부분의 미팅과 연락을 핸드폰과 이메일, 그리고 화상채팅으로 주고받는데, 어느샌가,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을 점점 부담스러워지고 귀찮아하는 자신이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는 시간에 얼마나 많은 일을 책상에서 할 수 있는지, 계산을 해보자니 밖에 나가서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들이 아까워진 것이다.


새롭게 배우고 있는 프랑스어도 몇 번 학원과 문화센터를 기웃거리다가, 결국 인터넷 강의를 발견하고,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되었다. 식료품 쇼핑과 요리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모든 장보기는 인터넷 쇼핑, 요리는 배달 음식이 주로인네 나는 온전히 디지털이 안겨다 준 편리함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나는 거의 모든 것을 컴퓨터와 AI에 의지한 채 살고 있었다. 효율로 따지자면, 모든 것은 디지털로 연결되어 있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삶의 효율성은 늘었지만, 행복은 예전보다 배로 늘었을까?


비효율적인 것이 절대적으로 삶의 불행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장보기를 나가는 것이 시간과 쓸데없는 낭비를 부축일 수도 있어 비효율적 일지는 모르지만, 장보기를 나갔을 때 마주할 수 있는 시시콜콜한 사람 사는 냄새가 주는 삶의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점심시간 동료들과의 쓸데없는 잡담은 시간낭비이자 나의 삶의 방해 축이기만 할까?

알게 모르게 나눈 남과의 잡담으로 우리는 사실 사람 사는 세상을 배워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효율적인 것은 어쩌면 우리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20대 시절 도쿄의 도시생활에 닳고 닳은 이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 열광했던 적이 있었다.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20대 초반의 일본에서의 생활은 공허함과 외로움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이 때문에 '월든'에 잠시금 빠져들어 현실의 인간관계보다는 자아성찰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아버지의 파산으로 가지고 있던 물질적인 것들을 잃고난 후 보게 된 영화 '인투 더 와일드'는 오히려 인간사회나 현실을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행복해지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가진 게 없든 많든, 인간은 인간사회에서 서로서로 엮여 행복이든 불행이든 함께 나누며 부대끼며 살아갈 때, 진정으로 삶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

자연이든 방구석이든 무엇인가가 현실 도피처가 되어 고립되어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월든'에 열광하여 실제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삶의 본질을 찾으려 했던 미국의 청년 'Christopher Johnson McCandless '의 실화를 배경으로 만든 '인투 더 와일드'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자연에 고립되어 홀로 외롭게 죽으면서 새긴 글이자, 언제부터인가 나의 인생 문구가 돼버린,


"Happiness is the onyl real when shared"

"행복은 나눌 때 비로소 진정한 것"


란 글귀가 웬일인지 요즘 더 와 닿는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부대끼며 살 때 비로소 삶의 맛을 느끼고, 성장하게 되는 것이 정말 분명하다.


지금도 이미 많아졌지만, 가까운 미래에 나와 같은 삶과 직업을 갖게 되는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임에 확실하다. 내가 이미 겪어본 여러 부작용들을 동반한채 말이다. 이러한 부작용의 극복 방법들도 함께 제시될 수 있을 때, 건강한 뉴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는 비로소 막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인투 더 와일드의 모티브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실제 아사로 죽기 전 마지막으로 찍었던 사진. (wikipedia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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