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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y Dec 08. 2019

아류로 남겠는가. 왕좌를 이을 것인가

tvN <플레이어> 17, 18화 트로트 듀엣 가요제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국민 중에 13년을 동굴 속에 살다가 나온 사람이 아니라면 MBC <무한도전>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평균 이하 남성들의 무모한 도전기는 1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평균 이상의 웃음을 자아내며 방송가의 전설로 남았다. 특히, 특집으로 기획된 무한도전의 수많은 시행착오는 예능국의 새로운 도전을 독려했다. 어떻게 보면 tvN <대탈출>, SBS <런닝맨>, MBC <나 혼자 산다>, MBC <나는 가수다> 등의 다양한 예능 포맷은 같은 엄마 배 속에서 나온 형제인 셈이다. 볼품없는 남자들의 어처구니없는 도전기에서 한국 예능의 살아있는 전설로 성장한 <무한도전>. 그들의 무모한 도전이 막을 내리자 사람들은 더는 <무한도전>의 다채로움을 맛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워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그들의 무모한 도전을 떠오르게 하는 종합선물세트가 등장했다. 출연료를 사수하려는 일곱 남자의 고군분투를 그린 프로그램, tvN <플레이어>이다.



<플레이어>는 쇼미더머니, 아이돌 육상대회, 슈퍼모델 코리아, 뇌섹남 등의 기존 예능 포맷을 B급으로 재해석한 tvN 예능 프로그램이다. 최근 B급 레트로 콘텐츠 형제를 양산하는 tvN 트렌드의 한 갈래로, 그간의 행보는 웃음 버저만 간신히 사수한 채 다른 예능의 그림자에 숨어 뛰노는 B급에 머물러 있기 급급했다. 그러나 17, 18화에 걸쳐 보여준 트로트 듀엣 가요제는 A급 프로그램으로의 도약을 기대하게 한다. 과장 조금 보태서 무한도전의 황금 전성기를 보는 듯했다.

앞서 9, 10화의 쇼미더플레이에서 쌓아온 예능 포텐이 트로트 듀엣 가요제에 와서야 제대로 터졌다. 최근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의 성공으로 방송가에는 뽕끼 가득한 바람이 불고 있다. 대부분 음악 예능이 그렇듯이 지금까지 공개된 트로트 예능은 원래 있던 트로트 곡을 편곡하여 부르는 모습 정도였다. 하지만 트로트 듀엣 가요제에서는 한때 히트했던 대중가요를 트로트로 편곡해 듀엣으로 부르는 독특한 포맷을 도입했다. 듀엣 대상 역시 평범한 트로트 가수가 아닌 발라드 가수부터 아이돌 가수까지 다양했다. ‘내꺼 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라는 가사로 2014년 전국에 때아닌 네꺼, 내꺼 논란을 일으킨 ‘썸’의 트로트 버전을 생각해본 적 있는가. 발라드 황제 노을이 멜로망스의 선물을 트로트 버전으로 부르는 상황을 상상이나 해본 적 있는가.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운 조합이라 더 참신하다. 물론 트로트 듀엣 가요제는 예능의 연장선에 있기에 트로트는 양념이고 메인은 코미디였다. 하지만 한때 우리가 흥얼거렸던 추억의 가요들이 뽕짝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갑자기 뒤통수를 가격당한 듯한 짜릿한 충격을 준다. 게다가 프로그램으로서의 완성도도 높아, 지금 당장 이 포맷을 메인으로 하는 정규 방송이 나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매번 복고풍이라는 명목하에 추억에 빠져 허우적대는 식상한 예능프로그램 사이에서 참신하고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의 등장은 이미 전설이 된 그들의 도전을 오랜만에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트로트 듀엣 가요제를 제외하고 보면, <플레이어>는 아직 뚜렷한 자기 색이 없다. 인터넷상에서 가장 핫했던 9, 10화 쇼미더플레이는 재미와 화제성을 잡아 호평을 받았지만, 참신함은 없었다. 재미와 화제성 또한 개밥 소밥이 반복되는 참신한 이진호의 농번기랩이 일구어낸 결과물이었을 뿐, 프로그램 자체의 매력도는 높지 않았다. 그냥 쇼미더머니에 개그 요소를 뿌린 것 뿐이었다. 물론 레트로 B급 예능이라는 포맷에서 보면 나쁘지 않은 기획이다. 하지만 트로트 듀엣 가요제에서 보여준 <플레이어>만의 고운 진주는 그저 조개 안에 갇혀 있기에는 아까운 보물이다. 지금 <플레이어>는 B급 레트로 예능이라는 포맷 위에 플레이어만의 색깔을 덧칠할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과거 예능의 포맷을 카펫처럼 깔아놓고 개그맨이 맘껏 뛰놀게 하는 방식도 좋지만, 카펫을 자기 스타일에 맞게 수선할 필요가 있다. 트로트 듀엣 가요제에서 보여주었던 스타일이 계속된다면 여러 예능의 잔상을 떠오르게 하는 B급에서 자기 색이 뚜렷한 A급으로 성장할 수 있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자식일수록 회초리를 든다는 말이 있듯 전성기 시절 <무한도전>의 잔영이 보이는 이 프로그램에 자꾸 쓴소리를 뱉게 된다. 충분히 A급 예능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다채로운 종합선물세트인데, 고작 통조림 세트만을 보여주는 게 아쉽다. 이번 트로트 듀엣 가요제가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플레이어>만의 색을 보여줄 참신함의 등장이 절실하다. 다른 예능의 잔상을 떠오르게 하는 아류로 남을 것인가. 전설의 왕좌를 이을 대형 프로그램으로 성장할 것인가. 선택은 <플레이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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