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 눈을 키운 시간

『역사의 역사』

by 발자꾹

지난 23일, 12월 한 달 동안 책 모임 친구들과 함께 읽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역사의 역사』를 마무리했다.


KakaoTalk_20251228_003317915.jpg 오늘도 간식이 풍성하다. 곶감과 귤 시안에서 건너온 검은깨 강정까지! 오늘은 두 명의 글쓴이가 선물한 시집과 에세이까지 더해졌다.


날은 흐렸지만, 그동안 시어머니 병간호 하느라 보지 못했던 친구가 함께해서 모임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환했다. 그 친구는 화장실에서 쓰러져 뜨거운 물에 3도 화상을 입은 시어머니를 간호하느라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얼굴을 빼고 전신에 화상을 입은 시어머니는 고통스러워 죽고 싶다고 하셨단다. 다행히 피부 이식 수술도 잘 끝나고 치료가 마무리 단계라고 했다. 며칠 쉬고 또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그녀 역시 안색이 좋지 않아 우리는 마음이 아팠다. 어르신이 빨리 나으시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두 달 동안 치료비가 수천만 원이 나왔다는 얘기에 다들 혀를 찼다. 화상은 보험 처리가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했다. 이제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돈이 없으면, 화상 입은 환자를 눈앞에 두고도 가족들은 발만 동동 굴러야 한다는 현실이 씁쓸했다.


다들 침울해하자 다른 친구가 3박 4일 동안 중국 시안에 다녀온 여행기를 풀어놓았다. 시안은 우리 남해안과 위도가 비슷해서 겨울이지만 여행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그녀는 죽은 진시황을 지키는 용도로 제작된 병마용의 규모와 바위산인 화산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특히 화산에서 바라본 풍경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그린 산수화 속 바위산과 놀랍도록 많이 닮아 있었다고 했다.


중국의 역사와 풍광의 거대함에 놀라던 우리는 안시성 전투에서 양만춘 장군이 당태종의 눈을 멀게 했다는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조선족 가이드의 말을 전해 듣고 모두 화가 났다. 역시 역사는 보는 눈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음을 절절히 깨달았다.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늘 비판적으로 역사를 바라보자고 약속하며 『역사의 역사』 책을 다시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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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역사』, 유시민 도서관에 모여 함께 읽고 토론하니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 © 김효숙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에드워드 H. 카(1892~1982)


앞선 역사가들의 기록에서, 누군가는 역사를 서사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했다. 20세기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1892~1982)는 『역사란 무엇인가』 1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그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자 했다.


사실이 스스로 이야기한다는 주장은 진실이 아니다. 역사가가 이야기할 때만 사실은 말을 한다. 어떤 사실에게 발언권을 주며 서열과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게 역사가다.


며칠 전, 아들과 나는 10년 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미생"을 다시 보았다. "미생"은 고졸 계약직 사원 장그래가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상사에 입사해 좌충우돌하며 커나가는 성장드라마다. 언뜻 보면 주인공이 한 사람인 것 같지만 다양한 부서에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벌이는 갈등과 화해를 다룬다. 10년 전 고등학생 시절의 아들은 주인공 장그래에 몰입했었다. 이십 대 초반에는 사람에게 실망하고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을 때는 오히려 야비한 술수를 쓰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제 사회인으로 나아가는 시점에서 다시 드라마를 보니 어느 정도 전체가 보인다고 했다.


아들의 말을 듣는 순간 카의 말이 떠올랐다. 작가와 연출가가 어떤 사실을 누구의 입을 통해 들려주는가에 따라 우리는 화를 내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한다. 우리 인간이 살아온 수많은 세월을 드라마 한 편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크게 보면 다르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던 친구들도 ‘바로 그거!’라며 물개박수를 보냈다.


고개를 끄덕이던 한 친구가 요즘 논쟁거리인 ‘환단고기’ 이야기를 꺼냈다. 정통 역사학자들은 위서라 주장하지만, 대종교 등 일부 단체에서는 정사로 간주하고 있다. 또 한 친구가 전남대 철학과 박구용 교수의 말을 인용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역사는 서사(history)이기 때문에 하나만 맞는 것이 아니며 사실 그대로 말할 수 없기에 상상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만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떠올리며 ‘우리 고대 역사를 다시 살펴보는 게 무에 그리 나쁜 일인가 중국에서는 우리 고대사를 통째로 가져가려고 고구려의 역사도 틀렸다고 주장하는데 왜 우리는 더 깊고 오래된 역사가 있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걸까’ 하며 안타까웠다. 우리 스스로 고개 숙이기 전에 역사를 넓고 깊게 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에드워드 카의 역사관을 마무리하며, 유시민 작가는 20세기 중반에 다윈의 『종의 기원』이 다시 쓰였듯이 『역사란 무엇인가』도 새로운 정보가 보태져서 누군가 재집필하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친구는 그렇게 계속 확장되면 좋겠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잘못하면 원본은 사라지고 현대 본만 기억될 수 있다며, 차라리 하라리처럼 새로운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할 수는 없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폭넓고 다양해지면 좋겠다. 역사는 그저 과거의 산물이 아니라, 카의 말처럼 역사가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해 현재와 끊임없이 교류하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으니 말이다.



왕조가 아니라 문명의 역사를 파헤친다-아널드 토인비(1889~1975)

20세기 들어서 역사가들은 왕조나 국가가 아니라 문명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토인비는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던 슈펭글러(1880~1936)에 이어 인류 문명의 역사를 서술했다.


아널드 토인비는 과거에 존재했거나 지금 존재하는 세계 문명의 거의 모든 역사를 집대성했다. 토인비는 이 과정에서 인간은 환경 변화와 다른 문명에 대한 대응 방식과 그 과정에서 문명 내부에 형성되는 집단적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도전과 응전의 패러다임’을 창안했다. 토인비에 따르면 문명은 외부 환경의 도전에 대한 성공적인 응전의 산물이며, 탄생한 후에도 계속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응전에 성공하려면 ‘소수의 창조적 천재’들이 비전을 제시하고 다수가 이를 따르는 모방 현상인 ‘미메시스’가 이루어지고 문명이 발전하지만, 천재적 소수가 창조력을 잃으면 이를 따르던 다수자가 이들을 비난하고 외면한다. 이를 ‘네메시스’라 하며 이때 문명은 발전의 동력을 잃고 쇠퇴한다.


처음엔 이 단어들 때문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책을 뒤적이며 한참 동안 자신이 이해한 대로 서로 설득하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도전과 응전’이 ‘미메시스와 네메시스’와 동의어는 아니지만, 깊이 들여다보니 큰 틀에서 미메시스와 네메시스는 도전과 응전의 틀 안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었다.


현대는 국제화 시대다. 소수의 창조자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면, 서구 문명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명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인간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고 서로 원수가 되기도 했고, 버튼 하나로 전 인류를 몰살할 수 있는 핵무기도 개발했다. 하지만 토인비는 노예제도를 폐지한 인간이기에 핵무기의 위험성을 깨닫고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21세기 들어 자본주의가 과열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빈부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생태계는 파괴되었다. 게다가 밝은 미래를 줄 것 같던 과학 기술의 발달로 시작된 인공지능에 인류는 점점 뒤처지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 인류의 미래는 과연 낙관적일 수 있을까?


토인비에 이어 등장한 새뮤얼 헌팅턴(1927~2008)은 『문명의 충돌』을 통해 토인비의 역사 이론을 정치 무대로 소환해 1990년대 냉전체제 해체 후 혼란스러운 국제 질서와 정세 변화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문명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간헐적으로 만나던 서로 다른 문명 세계가 필연적으로 다른 문명과 마주하게 되었다. 헌팅턴은 인류가 문명사회를 유지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문명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미국의 폭력적인 외교 행태를 본 우리들은 과연 헌팅턴의 경고가 받아들여져 문명사회가 평화롭게 발전해 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모두를 위해 무력 충돌 없이 평화롭게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길은 과연 없는 걸까?


이제 인류 전체를 들여다볼 때-다이아몬드(1937~)와 하라리(1976~)


인간의 역사 서술 방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해졌다. 토인비의 문명사를 넘어 20세기 후반에는 인류 전체를 역사 서술 단위로 삼는 인류사가 등장했다. 인류사가 등장한 데는 우주와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빅뱅 이론과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를 밝히는 등 과학의 역할이 컸다. 이를 통해 이전의 역사와는 다른 눈으로 인류의 발달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인류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크게 일으킨 인물은 제레드 다이아몬드다. 그는 조류생태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던 과학자이자 저널리스트였다. 다이아몬드는 기존의 시각과 달리 사피엔스는 어디에 있건 동등한 지적 정서적 육체적 지능을 지녔으며 서구사회가 빨리 발전했던 이유는 환경이 그들에게 유리했기 때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2015년 3월부터 10월까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를 읽고 토론했다. 처음 책을 만났을 때는 퓰리처 상 수상작이며 인류 문명의 수수께끼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 명저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고 두려웠지만 읽을수록 조금 색다른 인문 교양서이며 자기 중심주의에서 깨어난 서구인의 반성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류사가 발전하면서 다이아몬드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바로 유대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디에서 온 누구이며 어떻게 해서 이토록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라리는 이 질문을 던지며 전 세계 사람들과 역사 연구가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리는 모두 호모 사피엔스이며 우리는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하라리는 우리 모두에게 처음으로 돌아가서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는지 되돌아보게 했다.


하라리 이전의 역사가들은 국가나 국가에 준하는 사회 조직의 출현을 역사의 시점으로 잡았는데 하라리는 7만 년쯤 전에 일어난 인지혁명을 역사의 시작으로 보았다. 있지 않은 것을 존재한다고 믿는 사고방식을 발전시켜 종교를 만들고 인권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사피엔스는 공동 행동을 조직하고 강자였던 네안데르탈인을 밀어낸다. 농업혁명을 통해 곡식의 재배가 급증하고 인구도 폭발했지만, 농업혁명 시기가 그 이전 시기보다 행복했다는 증거는 없다.


하라리가 다른 역사가나 인류학자와 다른 점이 있다. 그는 진보와 발전보다는 행복을 말한다. 인류는 과학혁명을 통해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인류의 시작점을 알아냈지만,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가 최고가 되겠다며 무기를 겨누며 오히려 모두가 죽는 길을 향해 가고 있다. 하라리는 우리 인류가 깨어나지 않으면 그 옛날 공룡들처럼 우리의 전성시대를 누군가에게 넘겨줄 수 있다며 우리가 진정 진화를 통해 행복의 길로 가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하라리는 또한 우리가 함께 살아가려면 상호 존중을 통한 문명 공존이라는 헌팅턴의 제안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국가 시대는 저물었으며 다인종 엘리트가 다스리는 하나의 지구 제국을 만들어 함께 문화를 만들고 공통의 이익을 끌어내는 하나의 ‘지구제국’을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역사를 보는 눈을 길렀던 시간

한 달 동안 먼 길을 걸어왔다. 기원전 500년쯤에 살았던 헤로도토스부터 21세기 현시대를 살아가는 유발 하라리까지 다양한 시각을 지닌 역사가와 역사학자들을 만났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되새기며 조금씩 발전해 왔다. 우리는 역사란 사실 그대로 전달될 수 없으며 역사가가 건져낸 사실의 조각에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 씨실과 날실로 엮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다양한 사료를 비교·평가해서 역사적 사실을 올바로 전달할 책임이 있으며 우리에게도 전달받은 역사의 행간을 읽어 낼 비판적 시각이 필요하다.

역사(歷史)란 그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조망할 수도 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편리하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어마어마하다. 그 어느 때보다 골이 깊어진 빈부 격차, 세대 갈등과 남녀 갈등, 생태계 파괴로 인한 다양한 문제들이 날마다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카와 토인비의 말처럼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그동안 잘 이겨낸 우리 인류의 역사적 행보를 기억하고 되새겨서 모두를 파괴하는 암울한 길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사는 평화로운 길로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한 달간의 긴 여정을 마쳤다.


*이번 주에는 개인 사정으로 연재가 많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는 의도치 않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역사 관련 소설 "꿀벌의 예언"을 읽고 이야기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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