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 『꿀벌의 예언』 1막
2025년 12월 30일.
잠깐 포근해진 날씨를 뒤로 하고 다시 추위가 닥쳤다. 손을 호호 불며 옷깃을 여미고 하나둘 갈산도서관 2층 문화아지트의 문을 열었다.
날이 추워지면서 매주 건강이야기가 그녀들의 화두다. 시어머니 보청기 때문에 병원에 네다섯 번이나 오가고서야 장애 진단을 받았다는 그녀는 한숨을 푹 쉬었다. 장애진단을 받으면 11만 원 하는 보청기가 진단을 받지 못하면 130만 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장애 진단비가 50만 원이나 나왔다는 것이다. 지난주엔 화상 치료비가 보험이 나오지 않아 울상을 지었는데 이번엔 장애 진단비라니. 다들 기가 막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들의 맏언니는 왼쪽 눈에 대상포진이 와서 일주일 내내 고생했다고 했다. 예방주사도 맞았고 수년 전에도 같은 자리에 대상포진으로 물집이 생겨 심하게 앓았다며 그녀들에게도 건강관리 잘하라고 당부했다. 다들 큰일 날 뻔했다며 큰 언니를 걱정하고 언니 이야기를 잘 새기기로 했다.
2025년을 마무리하며, 그녀들은 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만났다.
『개미』를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녀들에게, 그의 신작 『꿀벌의 예언』은 반가우면서도 묘하게 낯설었다. “베르베르 치고는 너무 쉽다”는 말이 먼저 나왔고, 동시에 “역시 베르베르다”라는 감탄도 이어졌다.
이 책을 세 번에 나눠 읽기로 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 1막이다.
베르베르는 아무런 실마리도 없이 질문을 던지며 글을 시작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르네 톨레다노는 서른세 살의 전직 역사 교사이자 이제 막 자리를 잡은 공인 전문 최면사다. 그는 최면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최면 여행’을 이끈다. 어느 날 한 관객이 “30년 뒤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라고 요청하고, 그 여행은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만든다.
겨울의 파리는 43도가 넘고, 습도는 4퍼센트. 전 세계 인구는 150억 명.
꿀벌은 사라지고, 식량은 부족하며, 폭동과 전쟁이 일상이다.
미래의 르네(63세)는 현재의 르네에게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에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실마리가 바로 중세 기사가 작성했다는〈꿀벌의 예언〉이다.
소설 곳곳에는 ‘므네모스(Mnemos)’라는 이름으로 짧은 사유의 글이 삽입된다. 므네모스는 그리스어로 ‘기억’을 뜻한다.
첫 번째 므네모스는 존재의 세 가지 이유.
‘배우기 위해, 경험하기 위해, 그리고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짧지만 이 구절이 내내 기억에 남았다. 최면 여행, 환생, 전생의 기억이라는 장치 역시 결국은 기억과 책임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 므네모스인가?
계속되는 므네모스에는 유대와 이집트 역사가 등장한다. 성경이 차용되는 부분을 걱정하는 목회자 그녀와 그럴 필요 없다는 불가지론자 그녀의 짧은 논쟁이 흥미로웠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녀의 우려가 근심이 될지 안심이 될지 지켜보고 싶다.
르네는 자신의 전생이 중세 십자군 기사 살뱅 드 비엔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가 집필한 예언서가 인류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스승 알렉상드르는 과거에서 그를 구해준 기사였고, 스승의 딸 멜리사는 살뱅이 구해준 유대인 여성 드보라와 연결된다. 과거와 현재, 개인의 기억과 인류의 역사가 겹친다.
이야기 처음에, 장미 향이 섞인 어머니의 향수 때문에 벌에 쏘여 한쪽 눈을 잃은 기사가 나온다. 처음엔 그가 주인공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융통성 없는 십자군 기사 위르슬랭으로 곳곳에서 주인공 르네 아니 살뱅 드 비엔이 하는 일을 방해한다. 자신의 눈을 멀게 한 꿀벌에 화가 난 그가 미래에 태어나 꿀벌이 사라지도록 일을 벌이는 건 아닐지 왠지 걱정스럽다. 과연 나비효과가 나타날까?
책 속 미래의 르네가 말한 것처럼 꿀벌은 인간의 채식 소비를 전담한다고 할 수 있다. 꿀벌이 사라지는 이유는 책 속에 등장하는 제초제 사용과 등검은말벌뿐만이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서식지 감소 또한 큰 영향을 미친다. 책 서두에 등장하는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간에게 남은 시간은 4년뿐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귓가에 끊임없이 맴돈다. 인간이 선택해 온 수많은 ‘편리함’이 쌓여 우리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두렵다.
작가는 또한 르네의 입을 빌어 십자군 시대의 학살, 유대인들의 공포,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져 간 이름들을 얘기하며, ‘기록되지 않은 존재는 망각된다’라고 말한다. 작가는 곳곳에서 실제 사건이 벌어진 연도와 지명,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입성, 유대인의 영국 호텔 폭파, 수없이 많은 역사가들. 그녀들은 그녀들은 책을 읽을수록 '진실 혹은 거짓'의 경계가 궁금해 계속 구글과 네이버를 뒤적였노라고 했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서 중세 템플 기사단 이야기를 시청한 그녀들의 대표는 살뱅 드 비엔이 다른 기사들과 기사단을 조직한 대목을 읽으며 그 시기가 매우 흡사해서 깜짝 놀랐노라고 눈을 반짝이며 얘기했다. 베르베르를 처음 만나는 그녀는 그의 박학다식에 놀라고, 이미 전작『개미』를 통해 그의 치밀함을 잘 아는 그녀들은 '역시 대단해!' 하며 작가의 지식과 노력에 박수를 보냈다.
『꿀벌의 예언』은 생태 소설이면서 동시에 역사 소설이다. 지난 한 달간 우리가 읽었던 『역사의 역사』의 주인공들이 역사 교사였던 르네 아버지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르네는 아버지의 말을 계속 되뇐다. 역사를 올바로 바라보고 그 역사를 통해 우리 현재를 잘 살아내야 미래를 함께 잘 사는 세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음을 다시 각인시켰다.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거짓 속에 사는데 익숙해지다 보면 진실이 의심스러워 보인다.
『꿀벌의 예언』 1막은 도입부다.
쉽게 읽히지만,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르네와 알렉상드르, 멜리사는 실마리를 찾기 위해 이스라엘로 떠난. 멜리사는 르네와 알렉상드르가 과거로 돌아가는 최면 현상을 정신의 힘을 이용해 시간을 구부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구부러진 시간’은 다가오는 끔찍한 재난을 막을 수 있을까. 과거로 돌아간 그들이 과연 현재로 돌아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궁금한 것투성이다. 2막이 기다려진다.
*오늘은 상큼한 귤이 한가득이었는데 담지 못했네요. 새콤함이 달콤 쌉싸름한 커피 향이 어떻게 어우러졌을지 상상해 보셔요.
*2025년 올 한 해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많이 웃고 또 많이 울었습니다. 작가님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참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년은 말의 해라고 하죠. 우리 또 열심히 달려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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