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예언』 2막
약국에서 일하는 그녀가 2주 만에 모임에 돌아왔다. 늘 다양한 정보를 전해 주는 그녀의 복귀 덕분에 모임은 한결 활기를 띠었다. 수영장을 다니는 친구는 요즘 어르신들 사이에서 계피를 넣은 아메리카노가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된다며 인기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커피 원두 가격이 치솟는다며 걱정하다가, 석유와 식량을 둘러싼 전쟁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흔들리는 세계, 불안한 미래.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꿀벌의 예언』 2막으로 이어졌다.
2막의 중심에는 *‘구부러진 시간’이라는 개념이 놓여 있다. 르네와 알렉상드르는 최면을 통해 본격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전생의 자신들에게 역사를 전(?)한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간다는 설정은 익숙하지만, 베르베르는 이 모험을 결코 낭만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제3차 세계대전을 막겠다는 명분 아래, 허가 없이 팔레스타인 영토로 들어가는 인물들의 행동은 점점 불편하게 다가온다. 모험심이라기보다 이기심에 가깝고, 선의를 내세운 개입이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1막에서 결성된 기사단이 결국 역사 속 템플 기사단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흥미롭지만, 동시에 섬뜩하다. 선한 의도로 시작된 조직이 시간이 흐르며 권력과 폭력의 도구가 되는 과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살뱅과 가스파르, 두 인물이 예언서를 두고 벌이는 경쟁은 ‘누가 더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역사를 서술할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된다. 한 사람은 정치·군사·경제를 중심에 두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람들의 일상과 기술, 예술을 기록하려 한다. 그 차이는 곧 우리가 역사를 읽는 방식의 차이이기도 하다.
살뱅의 후생인 에브라르가 기사가 되어 예언서를 품에 안고 목숨 걸고 프랑스로 떠나는 모습은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 반지를 목에 걸고 비장하게 떠나는 프로도를 연상시켰고, 900년을 버틴 밀랍 속 여왕벌을 현대 기술로 재생시키는 대목에선 영화 "쥐라기 공원"에서 호박 속에 갇혀 있던 백악기 공룡이 떠올랐다. 오마주인지 베끼기인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성경 말씀 덕인지 온갖 작품들이 떠올라 우린 자주 웃었다.
생이 반복될 때마다 르네와 알렉상드르의 삶이 마주하는 장면에서는 인연이라는 단어와 작가의 의도라는 단어가 교차했다. 살뱅의 다음 생 에브라르 역시 기사가 되어 예언서를 나르고 알렉상드르는 심지어 여자로 태어나면서도 르네의 전생을 돕는다. 우리는 그 여자가 멜리사가 아닐까 기대했다가 다들 김이 샜다고 털어놓았다. 3막에서는 멜리사가 과거의 어디에선가 등장하려나? 궁금하면서도 계속 엮이는 삶이 억지스럽기도 하고 작가가 그저 꿰맞춘 것 같기도 해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풍요를 당연하게 여기는 인간의 태도를 꼬집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매일 잔칫상 같은 식사를 하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 땅과 동물로부터 받은 것을 끝없이 소비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전생 체험을 한 알렉상드르가 남은 음식을 보고 괴로워하는 장면에서, 나는 굳이 전생을 보지 않아도 우리가 얼마나 낭비 속에 살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가 두려운 이유는 무지해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바꾸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삶의 동력’에 대한 질문도 오래 남았다. 알렉상드르는 잊히지 않는 불멸을 꿈꾸며 살아가고 멜리사는 사랑을 첫 번째로 꼽았다. 르네는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들 중 누군가는 가족이라 했고 또 누군가는 부모라 했다. 하지만 타인이 삶의 동력은 아니라는 이들도 여럿 있었다. 누군가는 체험하고 느끼는 삶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했다. 발자꾹 그녀는 내내 고민하다 이 글을 쓰면서야 문득 깨달았다. 자신은 배우고 나누고 다시 배우면서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는 사실을.
2막 곳곳에 배치된 ‘므네모스’ 이야기들은 기억과 망각의 양면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솔로몬 왕의 지혜, 아리스토텔레스의 벌집 비유, 디아스포라 이후 유대인 공동체의 학문 전통. 기억은 인류를 살렸지만, 동시에 파괴적인 힘이 되기도 했다. 전생이라는 도구 역시 발명과 다르지 않다. 어떻게, 어떤 의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구원이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모임이 끝나기 직전에 전생 체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대부분이 관심이 없다고 했지만. 그중 한 명은 자신의 과거가 궁금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이 가장 누리면서 사는 세상인 것 같아 과거로 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소설에서 등장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처럼 누군가가 개입하면 상황이 계속 바뀔 것 같아 전생이든 후생이든 점점 관심이 사라진다. 그리고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시간에 현실의 나에게 충실하고 싶다는 점점 깊어진다.
아무튼 2막은 많은 질문을 남긴 채 끝난다.
살뱅은 과연 누가 죽였을까?
예언서는 누구의 손에 남게 될까?
슈퍼 꿀벌은 정말 인간의 탐욕이 만든 재앙을 되돌릴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또다시 서구의 승리로 귀결될 것인가?
결말을 향해 가는 길이 불안하면서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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