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어려운 나와 그대에게

by 발자꾹

2024년 2월 25일,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블로그에 일기 쓰듯 일상을 적어 내려간 것 말고는 글을 쓴 적이 거의 없다.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가 보다. 그동안 품고 있던 수없이 응어리진 순간들, 생명을 품고 세상에 내놓으며 겪었던 경이로운 순간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즐겼다. 갱년기를 지나며 삶에 지쳤던 나는 글을 쓰면서 새로운 힘을 얻었다. 브런치는 여타 글쓰기 플랫폼과 달라서 댓글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으면서 응원하고 격려했다. 나이 오십 넘어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그렇게 진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해 날마다 즐겁게 글을 썼다.


2025년 하반기부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하면서 시민기자 활동도 시작했다. 내가 살면서 만나온 사람과 책 이야기를 썼다. 브런치 이웃들의 응원으로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갔던 내게 오마이뉴스는 글쓰기의 또 다른 기쁨과 아픔을 알려주었다. 단계별로 정해진 글 값은 때론 힘을 주었지만, 때론 내 자존심을 할퀴기도 했다.


처음엔 그저 글을 쓰는 게 즐거웠는데 어느 순간부터 글을 짜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이웃 작가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하면서 자존감이 떨어지고 글맛을 잃어갔다. 글쓰기가 즐겁지 않았다. 내게 위로와 힘을 주던 ‘글쓰기’ 시간이 오히려 나를 자꾸만 작게 만들었다.


일주일 내내 글을 쓰던 나는 모니터와 자판에서 떨어져 나왔다. 잠시 쉬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갈수록 답답하기만 했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도 없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종일 글쓰기 책을 뒤적였다. 유명인들의 글쓰기 책이 가득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스크롤바만 내리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유시민의 공감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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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라는 글자에 마음이 꽂혔다. 주문하고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빨리 읽고 싶어 가까운 도서관에 달려가서 책을 찾았다.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다.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쉽고 친절하다. 원래 제목은 ‘공부와 글쓰기’였는데, 훌륭한 글은 많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작가가 고집을 피워 제목을 정했다고 했다. 작가의 고집 덕에 지금 내게 필요한 책을 만난 것 같아 무척 고마웠다. 작가는 정체성과 감정, 공감, 태도, 격려, 어휘라는 여섯 개의 항목에서 저명한 책과 작가를 소개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공감받는’ 글쓰기 방법을 보여주었다.


유시민 작가는 『사피엔스』 속표지에서 본 ‘어느 사피엔스가 다른 사피엔스에게’라는 말 한마디로 유발 하라리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하라리가 우리에게 익숙한 종족이나 인종, 또는 국가가 아니라 ‘사피엔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사피엔스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라리는 유대인이지만 보편성을 띠었기에 전 세계인들이 그의 글을 읽으며 공감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스모스』를 읽을 때, 작가는 어린 칼 세이건이 도서관에서 사서에게 하늘의 별들에 관한 책을 받아 들고 답을 찾을 때까지 읽고 또 읽어 내려갔다는 대목에서 함께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요즘 책 모임 친구들과 『코스모스』를 읽고 있는데, 다들 어렵지만 재미있다고 했다. 과학 지식이 아니라 칼 세이건이 겪은 모험담을 듣는 것 같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는 것이다.


『담론』에서는 신영복 선생이 수감생활을 할 때, 하나라도 더 얻어먹으려고 모든 종교 집회에 참석했던 ‘떡 신자’ 경험을 대중에게 알리며 공감을 얻었던 대목을 지목했다. 대중에게 고상한 존재는 그저 존경의 대상일 뿐이지만, 그들의 밑바닥 경험을 들으면 깊이 공감하고 빠져든다면서 자신의 경험을 보편화시키는 글쓰기 방법을 배우자고 말한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려면 어휘를 늘려야 한다며 가장 좋은 방법으로 독서를 꼽았다. 나는 수많은 책을 읽으며 제대로 공부했다고 생각한 순간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랐다.


문자 텍스트를 읽을 때는 글쓴이가 독자에게 전달하려고 한 지식, 정보, 생각,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읽어내려고 노력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감도 교감도 비판도 할 수가 없어요.
-75쪽


나는 작가의 감정이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떻게든 너에게서 잘못된 점을 찾아 주겠어!’라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어왔다. 틀린 글자라도 하나 찾으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했던 내가 떠올라 부끄러웠다. 그동안 수많은 비평과 토론, 해설 등에서 그가 활약한 모습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이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다. 게다가 가볍고 휴대하기 편리한 A6 포켓북 형태다. 150쪽에 글밥도 많지 않다.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뿐 아니라 나처럼 신나게 글을 쓰다 벽에 부딪힌 이들에게도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넨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파악하려고 이 책을 여러 번 읽었지만 아직은 자신이 없다.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쪼그라들었던 내 마음에 당장 자신감이 차오를 거라 기대할 수도 없다. 하지만 글을 써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책 한 권을 일주일 내내 붙잡고 있어도 불안하지 않다.


그의 말처럼 수첩을 가지고 다니지는 않지만,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빼곡히 적어둔다. 내 마음 다가오는 무엇이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무조건 쓰려고 안달복달하기보다, 책 한 권을 곱씹으며 작가가 전달하려는 지식이나 정서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 노력이 모여 언젠가는 나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유시민의 공감필법』 주식회사 창비. 2016년 8월 15일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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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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