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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pen Sally Nov 09. 2021

싱가포르 만 10살, 공부의 무게

우리는 잘하고 있다

아이들의 짧은 방학인 텀 브레이크와 온라인 등교 HBL, 수능급 파급력이 있는 초등 졸업시험 PSLE 시험 후 채점으로 또 짧은 방학으로 무언가 괜히 다사다난한 한두 달이 훌쩍 지나간 싱가포르였다.


아직도 3 천명대를 육박하는 확진자 수에 마음을 졸여가며 일단 등교는 시키며  겨울 방학을 기다리고 있는 심난한 요즘이기도 하다. 핑계 같지만 이로 인해 나의 생활 패턴이 완전 동네 왕백수와 맞짱 뜨고도 남을 만큼 게으른 생활로 돌아가버렸다. 들쑥 날쑥한 등교 일정에 아이와 같이 나도 덩달아 늦잠도 자고, 아주 밤늦게 자보고 싶다 해서 퇴근이 늦은 아빠도 기다려 보며 밤 11시 12시 취침도 하고 학교 다닐 땐 꿈도 못 꾸는 평일 티브이 시청 타임도 즐기며 아주 행복한 시간이 지나는 듯했다. 물론 사람이 갑자기 급변하면 안 되니 하루 종일 붙어 있을 때는 너무 행복하여( 그렇다! 절대로 짜증이 아니다. 참으로 행복했다고 해두자) 버럭이 올라와 사자후 같은 버럭과  욱 타임도 잊지 않고 가끔 시전 해주는 욱 엄마 모드는 꾸준히 유지하였다.​


그런 나날들 속 기본 공부를 해야 하는데도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를  수업 후 집으로 돌아오면 너무 피곤하고 또 나는 나대로 이것저것 해야 할 과제들이 있으니 진이 빠져 아이의  공부를 일관성 있게 꼼꼼하게 제대로 챙기질 못하였다. 그런데 또 하필 엄마가 아주 유난히  피곤한 날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딱 그때 아이는 유난히 더 자기 일을 제대로 해놓지 않아 폭풍우 같은 엄마의 샤우팅 잔소리로 샤워를 하고  코끝에 땀방울을 송골송골 맺혀 가며 다시 반성문 같은 일간  학습계획서 작성을 명 받고는 열심히 작성을 해서 가져왔다.


하지만 엄마의 분노가 이번에는 하늘을 찔렀다.


문제는 계획표 한 귀퉁이에 “ 나는 다음 주에 이 계획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한 문장”...


엄마의 단전에 분노와 황당함이 모여 벼락이 포효하는 소리로 아이를 야단치는데…


“ 계획표를 작성하는 이유가 뭐니?”


“ 엄마가 너를 괴롭히려고 계획표를 짜보라고 했니?”


“ 너는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구나…”


“ 엄마의 화를 모면시키려 이 정도면 엄마 마음에 들겠지 하고 보여주려고 계획표를 만들어 왔구나”


“ 이 계획표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정말 안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지 뭔가를 잔뜩 적어 놓고는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못 할 생각부터 하고…”


“ 너는 공부를 할 준비도 안되어 있고 이유도 모른다”...


블라블라 블라….


그러고 말을 하면서 서서히 더 열이 받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최악의 한마디,


“다 하지 마!!! 그냥 하지 말고 계속 니 맘대로 놀아!!!”를 큰소리로 뱉어놓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러고는 또 늘 그렇듯  아이가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싹둑 잘라 버린 것이 또 불쑥 미안함으로 올라왔고, 찬찬히 말하지 않고 버럭 화를 내버렸다는 자책감과 또 뒷수습은 어떻게 하지 하는 고뇌를 안고 그 짧은 시간에 번민으로 괴로운데 아이는 늘 그렇듯 고맙게도  먼저 다가와 준다.


울먹울먹 눈물 그렁하게 다가와서는


 “엄마 그게 아니고 그냥 숙제를 하다가 많으면 못 할 수도 있잖아. 그 계획표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적어 보라 하는 칸이 있길래 그냥…”


나는 늘 그렇듯 조금만 참으면 될 것 늘 내 감정에 못 이겨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후회를 할 것을 알면서 또 그렇게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착잡한 마음에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에둘러 설명을 해보았다.


“엄마가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한건 정말 공부가 싫으면 우리가 다른 길을 찾자는 의미야. 그 말을  그렇게 너를  속상하게 만들며 말해서  엄마가 미안해. 근데 정말 네가 공부가 하기 싫고 다른 일이 좋으면 공부를 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그 일을 해볼 수도 있어. 그러니까 공부가 싫으면 억지로 해서 우리 모두에게 시간 낭비가 되고 힘든 일이 되는 일은 안 생기게 해야지”


말은 쿨한 척 이렇게 하면서 내심 아이가 공부하기 싫다 해버리면 어쩌지 하고 쪼는 찌질한 마음도 또한 똬리를 틀고 앉았다. ​


“엄마 나는  공부를 하고 싶어. 근데 공부가 생각만큼 잘 안 되는 것 같아, 나는 공부 잘하고 싶어.” ​


‘아… 공부할 마음이 있구나! 다행이다!’


하지만 그 안도도 잠시 아이가 말을 이었다.


“공부 못해서 PSLE 잘 못 봐서 인생을 망치고 싶지 않아-

I don't want to ruin my entire life.”​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고작 만 10살 초등학교 4학년의 아이의 입에서 고작 첫 입시인 시험 하나 못 봐서 인생을 망치기 싫다는 말을 하다니…

“ PSLE 좀 못 본다고 해서 인생을 망치는 거 아니야. 다른 기회도 있고 또 다른 잘하는 거 있으면 찾아서 하면 되지.”


“ 중국어 선생님이 친구가 있는데. PSLE 못 쳐서 완전 라우지한-lousy job 일을 하는데 돈도 엄청 조금 벌고 그 일을 엄청 싫어한데.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울먹이는 아이를 보는데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 라우지 잡은 없어.  돈을 적게 번다고 라우지 잡이 되는 건 아니야. 네가 돈을 조금 벌고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이 좋고 만족하면 되는 거야. 공부를 열심히 하면 나중에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어떤 기회가 왔을 때 네게 조금은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는 있겠지만 공부 못한다고 PSLE 점수 못 받았다고 실패한 인생은 아니야”


나는 생각 나는 대로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주긴 했지만 도대체 제대로 말을 해준 건지도 모르겠고 이 조그만 가슴에 어떤 불안감과 고민이 들어앉았는지 궁금하고 걱정되었지만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며 건강하게 마음 바르게만 자라기만 해’

라는 말을 끝내 해주지는 못했다.


이 또한 내게는 충격으로 남았다.


나름 쿨한 엄마라 생각하고 공부도 타고난 재능이라 빡세게 시키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에는 ‘기본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은연중 아이에게 부담을 준건 아닌지 고민이 깊은  밤이었다.


그날 이후 다시 내게는 아이를 키우고 공부를 시킨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가 고민이 많아졌다. 나름 열심히 고민을 하고 그리하여 정답이 없는 이 시험에 나의 주관식 답을 일단은 찾아 써내었다. 싱가포르  로컬 교육이란 나름 험란한 여정을 가보기로 일단 이 배에 아이와 함께 몸을 실은 이상, 훗날 미래의 우리가 서로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최선은 다해 보기로 다짐했다.


아주 잘해보기로…


오은영 박사님이 주신 정답에 가까운 말을 가슴에 품고 자꾸 욕심이 생기면 되뇌고 또 되뇌어 본다…


아이와 나는 아주 잘하고 있다고…


우리는 아주 잘하고 있다!


사람들은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을 성적이 좋은 거라고 해석해요. 그런데 하루 종일 열심히 공부해도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성적이 다 좋은 것이 아니에요.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맞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너무 사랑하고 너무 잘 키우고 싶어요. ‘잘’을 잘못 해석하면 아이를 굉장히 혹독하게 대할 수가 있어요. ‘잘’은 기준이 항상 너무 높습니다. 아이들은 당연히 그 기준에 못 미치죠. 그런데 부모들은 아이가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열심히 해도, 즐겁게 해도, 성실하게 해도 ‘잘’ 한 것이 아닌 것으로 여깁니다. 줄넘기도, 피아노도, 그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잘’ 한 것이 아니라고 보죠. 그러면 아이들은 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한 엄마가 말했어요. “원장님, 얘 큰일 났어요. 공부를 너무 못해요.”


제가 물었지요. “아이가 나쁜 짓을 하나요?”


엄마는 눈이 동그래지면서 대답했어요. “아니요.”


저는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아이가 학교는 잘 갑니까?” 엄마는 “네”라고 대답했어요.


 “아이가 급식도 잘 먹고 아이들이랑 잘 어울리나요?” 엄마는 다시 “네”라고 대답했어요. “선생님이 아이에 대해서 뭐라고 하세요?” 엄마는 조금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얘는 친구들하고 잘 어울린대요.” 저는 또 물었습니다. “아이가 학원을 빠지지 않고 잘 다니나요?” 엄마는 “네”라고 대답했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는 공부를 잘하고 있는 겁니다.”​


오은영의 화해 | 오은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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