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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경 Jun 18. 2022

나, 프랑스 파리에 가려고요

90일의 여행 #1

“비행기를 끊었다고? 프랑스, 내가 아는 그 프랑스 말하는 거 맞나 지금?”


유난히 더웠던 2016년 6월의 어느 날, 동네 냉면집에서 함께 냉면을 먹던 아빠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몇 번을 다시 물어보셨다.


그날로부터 몇 주 전, 프랑스 파리의 게스트하우스의 스탭으로 일하며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고민할 것도 없이 일단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최대치인 90일짜리 직항 왕복 항공권을 끊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말했다.


-나, 프랑스 파리에 가려고요.


게스트하우스 스탭 일은 프랑스에 연고조차 없던 내가 무작정 파리로 향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장장 90일이라는 여행기간은 지금 생각해도 대담한 결정이었다. 당시 엄마는 생각보다 쿨하게 허락해주셨는데, 오히려 아빠가 걱정이 한가득이셨다. 그즈음 프랑스에서 테러도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유랑과 유학생 커뮤니티를 열심히 뒤지고는 “괜찮다!”는 답변을 했지 뭐. 진짜 위험한지 아닌지는 나도 몰랐다.


당시 나는 학교를 다니며 서울에 살다가 갑자기 고향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3학년을 마치고 인턴십이나 어학 공부를 위해 휴학 중에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어 모든 걸 다 내려놓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하고 싶고 해야만 일들을 못하고 있다며 허우적거리던 나는, 연고도 없는 프랑스로 향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출국일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다가왔다. 오롯이 혼자 힘으로 가겠다고 출국 며칠 전까지도 계속 일을 했다. 반년 동안 600만 원을 모았다. 3개월을 살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한 돈이지만, 어떻게든 살아질 거라 믿었던 것 같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응원과 축하를 받으며 일했던 곳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돌아보면 무언가에 쫓기듯 떠났다. 출국 3일 전, 미니멀리스트처럼 가장 작은 캐리어에 90일동안 살 짐을 싸서 부랴부랴 서울로 올라왔다. 학교 동기들과 만나기 위해 일부러 아침 일찍 움직였던 그 날 저녁, 고향에선 지진이 일어났다. 동기들과 먹던 저녁밥은 내내 가족들과 먹었던 그 날의 아침밥을 떠올리게 했다. ‘무리해서 일찍 올라오지 않았다면 엄마 혼자 무서운 지진을 겪게 하진 않았을 텐데’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아마도 그 때의 나에게 가족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였던 것 같다. 긴 시간동안 이상한 책임감 속에 지쳐있던 나는, 사실 도망쳤다. 최대한 멀리.


9월 15일, 긴 여행을 위해 파리행 비행기를 탔던 날. 에어프랑스 비행기 안의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하고 이상했다. 딱 두 개의 좌석이 있는 비행기 맨 뒷줄 창가가 내 자리였다. 옆자리엔 아무도 없었는데, 알고보니 불어가 가능한 한국인 승무원의 짧은 휴식을 위해 비워둔 자리였다. 12-13시간의 긴 비행 중 첫 식사 시간. 비어있던 내 옆자리에 잠시 앉게 된 한 어머니와 긴 대화를 나누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니 식사 시간이 되어 일행과 함께 있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둔, 잠깐의 대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다정한 분이었다. 처음으로 먼 곳으로, 그것도 길게 혼자 떠난다는 내게 너는 정말 용감한 사람이라고, 못 할 것이 없다고, 결국은 아주 잘 해낼 것이라고 말해주었던 분. 사실은 그 분이 옆자리를 떠나시고 난 뒤, 한동안 숨죽여 울었다. 그때의 내가 듣고 싶었던, 그러나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말이었다. 좋은 시작점이 되어주신 덕분에, 나는 90일이라는 시간을 그리고 그 이후를 용감히 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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