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새란 Oct 31. 2024

머리는 산발, 발은 맨발

차가 식어가는 동안, D+71


어떤 자세로 누워도 편치가 않다. 바로 누우면 어깨가 무겁고, 옆으로 누우면 허리가 불편하고, 엎드려 누우면 뒷목이 뻐근하다. 커피 한 잔의 호사를 포기할 수 없으니 잠에 쉽게 들지 못하고, 잠을 청하려 애쓰다 보니 몸 구석구석의 삐걱거림이 더욱 선명하게 와닿는다.


아기를 낳고 만나는 이들마다 내 몸 건강을 묻는다. 회복이 빠른 편이었고 육아는 물론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시간 내어 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답해왔다. 그런데 아주 조금씩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기를 안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다 보니 무릎과 허리, 손목과 발목이 시큰시큰하고, 아기에게 분유를 먹일 때 한쪽 아래를 계속 바라봐야 하다 보니 목과 어깨가 뻑적지근하다.


출산 전까지는 매일 아침 10분 스트레칭을 했는데 지금은 몸과 마음 모두 10분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밥도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데 뭘 차려서 먹는 일은 사치일 뿐.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에 휙 돌려 먹거나 빵, 시리얼 같은 것으로 때우기 일쑤다. 맘 편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 생기면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젖병을 설거지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돌돌이로 바닥을 닦는 것이 먼저다. 먼 훗날의 내가 지금의 나를 원망할 수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의 나는 이게 최선이다.


몸을 바로 세우는 것보다 마음을 바로 세우는 것이 좀 더 빨리 실천할 수 있겠다 싶어 하루에 한 번은 산책을 나가고, 밤에는 한 시간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가장 좋아하는 시월이 벌써 마지막 날이니 산책은 좀 더 바지런히 다녀야 한다. 아기에게 따뜻한 옷을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아기띠에 앉히고 나면 문을 나서다 보면 선크림도 바르지 못하고 머리는 산발에 발은 맨발인 나를 발견한다. 다시 아기띠에서 아기를 내리고 준비하느니 그냥 나가기를 택한다. 신발은 몸을 숙이지 않아도 발을 슥슥 넣을 수 있는 여름 샌들을 여전히 신고 있다. 어차피 거울 속 내 모습은 가을 공기 중으로 날아간다. 눈을 감고 잠들 준비를 하는 아기에게 계절의 변화와 눈앞의 풍경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다 보면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진다.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살짝 여유를 즐겨본다. 지금은 아기를 품에 안고 있어야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시기인가 보다~ 하고 온전한 혼자로서의 여유는 잠시 뒤로 밀어두기로 한다.


마음이 바로 세워질 무렵이면 아마 아기도 목을 바로 세우고 앉을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맘때는 새벽에 깨서 아기에게 밥을 주지 않아도 될 것이고, 그럼 지금보다는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폼롤러로 등은 풀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뒤집고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일과는 더욱 바빠지겠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좋아질 거란 생각을 하면서 오늘 하루도 아기를 잘 키웠다고 다독여본다.


-

[오늘의 한 마디]

"그럼요. 엄마가 이렇게 키운 거예요."

보건소 간호사 선생님의 2차 방문일. 선생님 품에 안겨있는 아기를 보니 나도 모르게 "많이 컸네." 소리가 나왔는데, 그 말을 들은 간호사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 괜히 맘이 찡해서 마음에 남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덜 외로워하고, 조금 덜 괴로워해도 괜찮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