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시스템, 넷플릭스가 내 취향을 아는 이유

AI 이야기 #14

by 튜링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날,

그런 날엔 간식을 쌓아놓고 소파에 파묻혀 넷플릭스를 켠다.

그런데 화면에 뜬 추천 목록을 보고 잠깐 멈칫한다.

“아니 내가 이런 기분인 걸 넷플릭스가 어떻게 알지?”


기분이 꿀꿀한 날엔 맘껏 웃을 수 있는 코미디가 뜨고,

자극적인 액션이 당길 때 묘하게 그런 영화가 올라와 있다.

심지어 “요즘 약간 소란하네” 싶은 날엔 잔잔한 다큐를 툭 던져준다.

조금 무서울 만큼 정확하다.


그런데 그게 진짜 ‘나’를 이해해서일까?

아니다. 추천 시스템은 마음을 읽는 예언자가 아니라,

당신의 패턴을 누구보다 끈질기게 지켜보는 관찰자에 가깝다.


추천 시스템의 출발점은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다.

“이 사람은 다음에 뭘 보고 싶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기계는 당신의 행동을 조용히 관찰한다.


어떤 영화를 끝까지 봤는지,

어떤 드라마는 중간에 꺼버렸는지,

어떤 장르는 자주 클릭하는지,

영상이 길면 보는지, 짧으면 보는지,

밤에 시청하는지, 아침에 시청하는지,

그리고 당신과 비슷한 행동을 보인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좋아했는지.


기계는 이 모든 것을 조합한다.

그리고 어느 날, 당신이 별 생각 없이 리모컨을 누르는 순간,

그 위에 조용히 자기의 판단을 올려놓는다.

“너 이거 좋아할 것 같아.”


추천 시스템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콘텐츠 기반(Content-based).

당신이 좋아했던 영화들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와 비슷한 분위기·감정·장르·배우를 가진 작품을 골라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범죄 스릴러 + 어두운 톤 + 빠른 템포’를 좋아한다면

추천 시스템은 그 패턴을 기억한다.

그리고 같은 결을 가진 작품을 조용히 엮어준다.


다른 하나는 협업 필터링(Collaborative Filtering)이다.

이건 아주 인간적이다.


“너랑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이것도 좋아하더라.”


우리가 친구 추천을 할 때도

“너 이 영화 좋아했잖아. 그럼 이것도 좋아할걸?”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기계도 똑같이 한다.

다만 사람보다 훨씬 집요하게, 훨씬 많은 데이터를 비교할 뿐이다.


이 두 방식이 합쳐지면,

추천 시스템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것을 꽤 정확히 예측해낸다.


그런데 추천 시스템이 정말 흥미로운 건,

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신을 ‘모델링’하는 방식이 정교해진다는 점이다.

당신의 취향이 변하면 그 변화까지 따라잡는다.


어느 날 갑자기 다큐에 빠졌다고 치자.

그럼 추천 시스템은 “음? 요즘 다큐를 많이 보네?” 하고 신호를 읽어

서서히 추천 목록을 수정한다.

이건 마치 오랜 친구가

“요즘 너 취향이 좀 달라져서 이런 것도 좋아할 것 같아.”

라고 말하는 느낌과 비슷하다.

하지만 기계는 감이 아니라 통계를 쓴다.

정확하게는 수천만 명의 행동 패턴 속에서

‘당신과 닮은 흐름’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그래서 추천 시스템은 때때로

당신 자신보다 당신을 먼저 알아차린다.

“아, 나 요즘 이런 분위기 좋아하고 있었네...”

하고 뒤늦게 자각하는 순간이 있을 정도로.


하지만 넷플릭스가 우리의 취향을 아는 이유는

우리의 행동을 지켜봐서도 아니고,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저 더 나은 초대장을 만들고 싶은 기술의 욕망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욕망은,

어쩌면 우리가 새로운 것을 찾고 싶어 하는 본능과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결국 확률의 문제다.

추천 시스템은 당신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

대신 ‘당신 같은 사람의 통계를 바탕으로 계산된 선택지’를 제시할 뿐이다.

그래서 종종 엉뚱한 걸 추천하기도 한다.

사실 그건 기계가 틀린 게 아니라 당신이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바뀌고, 취향이 흔들리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낯선 것을 클릭하고 싶은 날이 있으니까.


이 예측불허야말로 인간의 매력이고,

AI가 끝까지 따라오기 어려운 부분이다.


추천 시스템은 결국 우리 행동의 거울이다.

우리가 보고 소비한 흔적을 반사해 보여주는 정교한 반사판이다.

그 반사판을 통해 넷플릭스는 우리의 취향을 읽고,

우리는 우리의 취향을 되돌아본다.


때때로 기계가 던져준 작품이 예상 밖의 감동을 줄 때가 있다.

그건 아마 기술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에게 “너 이거 좋아할 것 같아서 추천해봤어”라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그 작은 기쁨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계가 했든, 사람이 했든,

추천은 결국 우리의 세계를 넓혀주는 작은 초대장이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즐거움의 문을 열어주는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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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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