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이고 돌발적인 INFP ADHD인 나와 ISTJ 계획형인 남편인지라 대부분 남편이 준비하고 계획해 왔지만 이번 여행은 20년 전 유럽을 가봤던 내가 더 잘 알 것이고 남편은 요새 야근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이다. 하여 전반적인 큰 틀과 예약들을 내가 하고 있는데 여행날이 다가올수록 꼼꼼한 부장님의 업무파악과 지시사항에 숨이 막혀온다.
새벽 출근 밤 9시 퇴근에도 부장님은 업무지시를 잊지 않으셨고 해외여행 시 필요한 준비물과 TO DO LIST, 참고 블로그들을 내게 보내셨다. 보험계약서와 상품설명서가 제일 어려운 나는 정보를 위한 블로그 읽기는 왜 이리도 어려운지.
숙소 계약서 출력? 에어비앤비와 이메일 보면 되는데 왜 출력해야 되지. 16박 17일 동안 숙소는 대략 4-5개, 각각 영문주소와 계약 내용을 따로 출력해 놓으라 신다. 영문주소는 택시나 구글맵 이용 시 필요하다고. 다 너무 맞는 얘기고 남편 말 들어서 손해 본 적은 없는데 INFP ADHD의 숨구멍은 왜 이리 좁아지는 겁니꽈. 비행기티켓도 기차표도 출력 같은 거 안 하려고 그 힘든(?) 과정을 거쳐 앱 깔고 예약한 건데 출력을 왜 또 해. 여행자 보험? 이것도 해야 하나.... 구시렁대면서도 언제나 부장님이 옳으시기에, 또 시킨 대로 안 했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기에 댓 발 나온 내 주둥이를 찰싹이며 작은 방에 있던 프린터기를 아예 내 방으로 뽑아왔다.
여행 며칠 전까지 띵까띵까(남편눈에 비친 나)인 직원에게 한숨이 나오던 부장님은 매일같이 다이소를 방문하며 필요한 물건들을 쟁이셨다. 거기가 전쟁터도 아니고 전투식량과 캔김치는 왜 이리 쟁여온 건지 그곳에도 한인슈퍼는 있을 텐데. 물론 슈퍼가 없거나 비쌀까 봐 이겠지만 난 유럽 가면 빵에 햄, 치즈 넣어 먹거나 노천카페에서 우아하게 먹고 싶은데 1일 1 전투식량 할 요량인지, 게다가 캔김치는 이상하게 눅눅하고 고추장 맛이 텁텁하게 난다. 여행 가서 아무리 김치가 생각나도 이 김치는 당기지가 않았다. 이런 나의 투덜거림을 보고 부장님은 고생을 들했다며 군대 좀 다녀와야 되지, 돈 생각은 자기만 하냐며 직원을 향해 혀를 끌끌 찼다. 그러고 보니 내 잘못이다. 남편이 저런 준비를 하기 전에 숙소 근처에 한인 슈퍼가 있는지 가격은 어떠한지 미리 알아보고 보고를 했더라면 내 입에 맞지 않는 전투식량들을 저렇게 많이 준비하게 두진 않았을 텐데.
대한항공과 저가항공, 기차표들을 다 뽑아놓고 숙소값을 지불했다는 영수증도 출력했다. A4 용지에 숙소와 가는 방법, 일정들을 시간순대로 정리했고 미처 체크 못한 사항들을 보완하며 보고서를 완성했다. 부장님이 다이소에서 공수해 오신 투명파일에 출력한 종이들을 한 장 한 장 끼워 넣으며 일정과 정보들을 브리핑해 드렸다. 이제 됐지 하며 한숨 돌리는데 부장님이 무심한 듯 한마디 던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