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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살랑 Apr 16. 2024

달디달고 달디단 행궁동 나들이

'브런치 플레이트와 식빵'이란 메뉴를 시켰는데 왠 하얀 보자기 더미와 대나무 찜통 바구니를 내어 준다. 보자기를 고이 풀어헤치니 오색찬란한 자연이 펼쳐진다. 당근라페 소시지 베이컨 샤인머스캣 방울토마토 초록야채와 계란프라이 그리고 빵까지 바구니 가득 꽉꽉 들어차 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듯한 찜통을 여니 감성 터지는 보자기천에 고이 감싼 식빵이 자태를 드러낸다. 방금 쪄낸 밤식빵다. 양 끝을 잡고 반으로 갈라 보니 진하게 졸여진 밤알맹이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달디달고 달디단 밤알맹,이란 이런 두고 하는 말이리라. 양갱은 사실 맛없지 않나.. 개인피셜입니다.

브런치 플레이트와 밤식빵, 프렌치토스트에 단호박수프까지, 자몽에이드와 아이스라떼를 포함해 우리의 브런치 메뉴가 한상 가득 차려졌다.


벚꽃이 절정을 치달아가던 지난주, 동네 엄마 아니 여자 셋이 카페에 모였다. 이 근방에서 일하는 H 언니도 만나고 이전했다는 독립서점도 가볼 겸 수원의 핫플레이스, 행궁동에 J & P가 떴다, 두둥!


핫하고 힙곳을 많이 아는 H 언니의 추천으로 팔달산 산책로에 위치한 카페 [슬로우 우즈]에 모였다. 근처 도서관에 있었다던 J 언니는 20킬로짜리 행군배낭을 메고 나타났다. 아니 도대체 도서관에 있는 책을 몽땅 빌려온 거야 머야. 정말이지 못 말린다. 게다가 이 카페 오는 길에 이런 언덕이 있을 줄 누가 알았던가. 차 타고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걸 스레 미안하다.

1년여 전 같이 '북메이트'라 명명하며 북카페도 가고 맛난 것도 먹으러 다녔던 우리 셋은 비록 활동(?) 기간은 적었으나 여전히 같은 감수성으로 언제든 콜, 하면 만나는 사이가 됐다. 만에 이뤄지는 셋의 만남에 설레는 내 마음을 그녀의 깜찍한 등장이 기분 좋게 워준다.


그림 안배운 티가 팍팍 나지만 고생해서 그린 게 아까워 올려봅니다.

노란 바이크를 타고.


어쩜 출근도 이렇게 힙하게 하는지, 그녀답다. 만나자마자 길을 왜 그쪽으로 걸어왔느니 내가 지도 보내지 않았냐니 타박 앤 구박으로 다정한 인사를 나누고 본격 수다삼매경에 들어간다. 초등 1학년때 만나 같이 축구를 하던 아이들은 중1이 되어 각각 다른 학교에 배정됐다. 아이들끼리 엄청 친한 것도 아닌데 엄마들은 지금까지 이러고 있다. 아이들과 별개로 따로 만나는 사이란 것이, 아이 때문에 억지로 유지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좋아한다는 것 같아 의미가 남다르다. 어리바리한 내가 똑 부러지는 그녀에게 아들과의 대화법에 대한 고민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일어났다. 그녀는 다시 일터로, 우리는 독립서점을 향해 고고.


최근 행궁동으로 이전했다는 독립서점 [그런 의미에서].

철학 좋아하는 공대생 J 언니가 맘에 들어하는 곳이었다. 네이* 지도는 목적지에 도착을 했다고 그러는데 도대체 서점이 어디에 있다는 거냐. 낡은 건물과 간판만 즐비하고 새로 단장했을 서점 같은 곳은 보이질 않는데 J 언니가 여기란다. 음. 왜 간판도 안보일까.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까요. 여하튼 J 언니가 여기라니 따라서 들어가 본다. 2층 3층, 어떤 문을 열고.... 따라라라라~ 그래도 찾았다는 기쁨에 설렘으로 문을 여니 단정하고 아담하게 꾸며놓은, 과거에 주거공간이었음이 분명한 구조 속에 독립서점과 북카페 그 중간의 형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독립서적들과 젊은 남자 사장님의 안목으로 모아놓은 책들이 나름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슨 책을 봐야 할지 몰랐다. J 언니.. 나 뭐 봐야 해? 그림책이나 내 취향의 에세이 같은 건 잘 안보였다. J 언니는 뭔가 상기된 볼을 하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둘러보고 있었다. 오. 그중에서 내 흥미도 끌만한 걸 하나 집어 들었다. 카세트테이프 모양을 한 책이었다. 언니는 그걸 살 거란다. 무슨 내용일지는 모르겠으나 책 모양이 독특해서 관심이 갔다. 옳지 안 그래도 저번에 언니가 준 파김치를 너무 잘 먹어서 고마운 데다(뜬금 파김치), 또 김치 필요한 거 없냐는 안부를 물어주는 게 고마워 저 책은 내가 사줘야겠다. 이런 건 글로써 길이길이 남겨야 하기에 굳이 빼먹지 않고 적어둔다. 그나저나 이런 독립서점들은 수익을 어떻게 창출할지 걱정이 잔뜩 된다. 우리 집 가계경제나 걱정하라는 남편의 외침이 들리지만 1층에 간판이라도 눈에 띄게 빡 해두면 더 좋을 것 같다는 하찮은 의견을 남겨봅니다..

 

1층 입구에 나무 간판, 눈에 띄나요? 깔끔하게 정돈된 책들과 여러 독립서적들이 꽤 있었습니다.
달디달고 달디 단 [슬로우 우즈]에서의 브런치


수원에 살면서도 행궁동에 자주 가보질 못했는데 언니들 덕에 여기저기 아는 데가 많아진다. 달디달고 달디단 행궁동 나들이, 또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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