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 살던 집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잔디 깔린 마당에 납작한 하얀 돌들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었다.
그리고 징검다리 돌들을 밟고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과 가장 먼 곳까지 걸어가면 또 다른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그 문을 열면 좁은 부엌이 나왔고 부엌 안에 방한칸이 바로 우리 네 식구의 보금자리였다. 우리 집은 꽤나 가난했다. 그 예쁜 마당은 우리 집 것이 아니었단 말이다.
계단을 한 칸씩 오르듯 성실하게 사셨던 부모님 덕분이었을까? 부족하다도 느끼기에 어려서였을까?
가난을 깨닫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친구들과 유선 전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나는 8살 때 우리 집에 수화기 달린 유선 전화가 처음 설치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빨간색 전화기였는데 귀한 물건인 만큼 테이블 위에 고이 모셔졌다.
수화기에는 뜨개 옷까지 입혀 놓았던 호강에 겨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내 말에 친구들은 모두 까르르 웃었다. 정말이냐고 묻는 친구도 있었다. 그때 알았다. 모든 이들이 어릴 때 월세 단칸방을 경험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오늘 이야기는 내가 살던 그 월세 단칸방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인공은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 김여사는 자가 아파트를 마련하기 전까지 총 11번의 이사를 경험했다. 내가 11살에 아파트를 분양받으며 집 없는 설움을 떨치신 김여사는 그전까지 일 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 셈이었다. 그것도 단칸방에 화장실은 무조건 외부에 위치 한 집이었다. 밤에 설사라도 나면 누군가 대동하지 않고 화장실을 가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사건이 벌어진 곳은 우리가 옮겨다니던 단칸방 중 10번째 월세방이었다. 9번째였나?
우리 가족은 부산의 유명한 바닷가 근처 한 칸짜리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한 후 엄마는 자꾸 몸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소화가 안 되고 가스가 찬 것처럼 속이 더부룩했다.
자꾸 살이 빠지고 생활이 불편 해 졌지만 젊었던 엄마는 병원을 다니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병원만 문턱이 드나들듯 다녔다.
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했던 건 꿈에 나타나는 한 여자였다.
그 여자는 옆 구르기를 해서 봐도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다. 하얀 소복 차림이었다.
둥근 얼굴을 하고 머리는 매직 파마가 그 당시 있었던 것 마냥 길고 찰랑했다. 그리고 예쁘다 아니다를 떠나 딱 봐도 미혼의 젊은 여자였다.
그 여자의 자리는 한결 같이 아빠 머리맡이었다.
아빠의 머리맡에 착석한 여자는 정해진 수순처럼
아빠 이불을 들추며 쑥 기어서 아빠 곁으로 들어갔다.
여자가 들어오자 아빠는 짜증 섞인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어딜 들어 오노. 안 나가나?"
혈기 왕성했던 그 시절 아빠의 호통은 안 봐도 뻔했다.
여자는 이불속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와 제자리인 아빠 머리맡으로 돌아온 후 그때부터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매일 밤 꿈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의 반복되는 울음을 지켜봐야 했던 엄마는 이유 없이 자꾸 말라갔다.
그리고 몇 달 후 우리는 이사를 준비했다. 엄마가 아파서 이사를 가는 건 전혀 아니었고 단지 다음 이사를 준비하는 낯설지 않은 일이었을 뿐이었다.
우리가 이삿짐을 싸고 있는 것을 본 옆집 아줌마가 찾아왔다.
"송주 엄마. 괜찮았어?"
"네?"
"사실 송주네 이사오기 전에 여기 처녀가 한 명 살았는데.. 세상에 자다가 연탄가스 마시고 죽어 나갔잖아."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인한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그 집을 나온 후 엄마의 꿈속에서 그 여자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의 속병도 나아져 아프지 않았다.
엄마의 꿈속에 나오던 그 매직 스트레이트 볼 통통 여자는 누구였을까? 그 단칸방에서 유명을 달리했다던 그 처녀였을까?
그 후로도 이 이야기는 수시로 가족들 입으로 회자되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야기 속으로"라는 공포 프로에 이 사연을 보내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글을 쓰다 포기했다. 쓰다 보니 뒷목이 서늘해지며 등골이 오싹 해 졌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그 당시 엄마가 아팠던 이유가 연년생 남매를 키우다 정신적으로 힘들어 신체적 증상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꿈속 그 여자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엄마는 잦은 이사와 어린 남매를 돌보다 지쳐 그 꿈속 여자처럼 울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여자가 앉은 곳이 하필 아빠 머리맡이었는지...
이상 오늘의 이야기 믿거나 말거나였습니다.
사진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