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새어머니 딸 결혼식이랍니다."
정우의 새엄마에게 아들과 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딸이 정우와 동갑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들의 존재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정우의 새엄마를 포함한 그들이 내 인생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 원인을 제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우리가 결혼하려 했던 그날에 이미 정우 새엄마의 딸 결혼식이 잡혀 있었던 것이었다.
정우를 제외한 정우의 가족 모두가 정우에게는 이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정우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날을 잡으러 가면서 사돈 될 집 의견을 미리 묻지도 않는 법이 어디 있냐며 일이 틀어진 것을 우리 집 탓으로 돌렸다.
엄마는 이 중대사에 새엄마 딸도 동시에 결혼을 하니 날짜를 잘 피해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꿈에도 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운이 좋아 날짜가 달랐다 치더라도 후에 정우가 알게 될 것이고 그 배신감을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면 또 다른 말로 둘러 될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수도 있다.
엄마는 한집에 동갑쟁이 둘이가 한 해에 결혼을 하면 좋지 않다는 미신을 듣고 왔다. 그리고 새엄마를 맹비난했다. 정우가 친 자식이 아니라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말하면 심장을 움켜쥐었다.
집안싸움은 그 집의 실세가 누구인지 보여주는 잔혹한 전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하게도 무슨 일이 터지면 남자는 모른 척 빠지고 결국 여자 둘만 남아 싸우는 경우가 많다.
정우에게 새엄마를 선물해 준 정우 아빠는 결국 골치가 아프다며 뒤로 빠졌다. 딸의 결혼에 속 시끄러운 일이 생겨 기분이 나빴던 새엄마만 엄마에게 연락을 해 왔다.
새엄마는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사돈인 자기들과 사전에 결혼 날짜를 상의하지도 않고 날을 잡아 오는 경우가 어디 있냐며 맹공을 퍼부었다.
엄마는 평소 전투력이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러니 착한 며느리, 착한 딸, 착한 아내 착하다는 형용사는 엄마의 참고 버티던 세월을 말해 주는 수식어였다.
그날도 엄마는 늘 그렇듯 별말 못하고 지고 말았다.
선의였는지 악의였는지 알 길은 없었다. 다만 본인이 저지른 일에 누군가가 피해를 보고 상처 입었다면 먼저 사과해야 맞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는 것은 사치였던 모양이었다.
우리 집은 새엄마가 정우에게 숨기려 했던 진실을 까발리게 만든 경우 없는 집안이 되었다.
어떤 현실은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다.
그냥 지어낸 얘기라면 울고 웃던 배우들도 그 역할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절차를 밟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예측할 수 없고 내 절망감이 어디까지 나를 끌어내릴지도 알 수 없었다.
정우가 불쌍했다.
아니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정우가 너무 미웠다. 정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을 피해 갈 수 있었을까?
정우 탓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정우가 비참해진 자신의 처지에 눈물이라도 흘려주길 바랐다.
내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대신 사과라도 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정우는 그 상황에서도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정우 잘못은 아니지만 억지로라도 정우가 눈물을 흘리며 자기를 떠나지 말라고 사정하는 것을 바랐다.
그러면서도 나는 정우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정우가 불쌍해 미칠 지경이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는 연애도 길게 했으며 파혼까지 한 여자가 되었다.
내 파혼 이야기가 세상 사람들의 흥밋거리가 될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은 사건을 좋아한다. 그리고 타인의 불행에 위로를 보내며 자기 위안을 삼기도 한다
나는 불쌍한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화목한 집안에서 잘 자란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화가 났다.
운명? 이게 내 운명인가?
나는 그 길로 속이 터져 죽는 엄마의 손을 잡고 철학관에 갔다.
그곳은 내가 24살에 친구들과 재미 삼아 가 본 사주 카페였다. 그곳에서 그 당시 내 결혼을 이렇게 말했었다.
"일찍 결혼 못 할 거예요. 특히 25 , 26살에는 결혼 안 됩니다."
흘려들은 점괘가 현실이 되는 그 순간
나는 다시 그 철학관을 떠올렸고 엄마를 끄집다시피 해서 그곳으로 갔다.
"결혼 날 잡으러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