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산부인과에 보낸 엄마

by 송주

내 아래 사랑니는 완벽한 와상 상태로 잇몸 속에 있었다. 오랜 세월 각종 음식과 술에도 손상을 입지 않고 나올 생각도 조차 없이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잇몸 염증으로 자신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결국 큰 결심을 했다. 안면 구강외과 전문의를 찾아 발치를 예약했다. 2주 간격으로 아래 사랑니 두 개를 뽑기로 했다. 발치 과정이야 말할 것도 없이 두렵고 고통스러웠다. 발치 후에도 아프고 힘든 건 마찬 가지였다. 처음 발치 시 병원을 나오자마자 드레싱 날짜와 시간을 잊어버렸다. 긴장감 때문인지 통증 때문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발치 후에는 정신줄을 잘 붙들어 매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화요일 마지막 남은 매복 사랑니를 뽑는 날이었다. 내 영어 수업 스케줄은 화요일이 가장 한가하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신상에 관련된 일들을 화요일에 몰아서 한다. 그렇다 보니 병원을 방문하는 일도 화요일로 잡는 경우가 많다. 이날 역시 사랑니를 뽑는 것 외에 산부인과에 검진 결과를 들으러 가는 두 가지 일정을 계획했다. 직장인의 삶은 언제나 몰아서 뭔가를 해야 했다. 일주일에 딱 한번 여유가 있는 시간을 차나 마시며 보낼 수 없다. 이날 역시 수업 전 3시간의 공강 시간 동안 치과와 산부인과 두 군데를 방문해야 했다. 그날 병원 두 군데를 다 가지 못한다면 다음 주가 곱절로 바빠질 것이 뻔했다. 사랑니를 뽑고 무리를 해서라도 산부인과를 가는 진료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그리고 이 주 전 사랑니를 뽑았을 때는 출근을 못했기에 그날은 아파 죽어도 출근을 해야 했고 수업도 해야 했다. 딱 하루만 고생하자는 마음으로 수업과 수업 사이 세 시간 안에 무리한 계획들을 채워 넣었다.


먼저 예약된 치과에 갔다. 이 주 전에 사랑니를 뽑아 봤다고 용감하게 침대에 누울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맨 정신으로 사랑니를 뽑는 일은 고문에 가깝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능숙한 손놀림의 의사 선생님 덕분에 무사히 발치를 끝냈다. 하지만 발치과정의 공포 때문인지 정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서서히 마취가 풀리자 더 정신이 없어졌다. 하지만 거즈를 물고 산부인과로 향했다. 나는 내가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왔음을 산부인과 카운터에 알려야 했다. 입을 여는 순간 발음이 새기 시작했다. 혀가 움직이다 마는 했다. 하고 싶은 말이 공기반 소리반의 모습으로 줄줄 새어 나왔다. 간신히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는 진료실 의자에 앉기도 전에 내 발음이 칠득이 반푼이 같은 이유를 의사 선생님께 설명했다. 물론 의사 선생님은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아픈 턱을 부여잡고 4시 30분 수업에 맞춰 차를 몰았다. 주차 후 가방을 꺼내 들려는 순간이었다. '아뿔싸' 가방을 산부인과 탈의실에 두고 온 것이었다. 곧 수업이라 돌아갈 수도 없었다. 탈의실이면 CCTV도 없을 텐데... 가방 속에는 지갑은 물론 각종 인증서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큰 아들! 그래 큰 아들이 있었다. 그날 2일 화요일 반짝 개학은 한 아들이 떠올랐다. 아들의 하교 시간이었다. 급하게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들 어디야? 엄마 병원에 가방을 두고 왔는데 지금 갈 시간이 없어. 가방 좀 찾아와 줘 지금 바로! "

"병원이 어딘데?"

"너 자주 가던 앞선 소아과 건물 3층 아담과 이브 산부인과"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 지금 교복 입고 있는데.."

"엄마가 지금 갈 수가 없어. 귀중품이 많아서 바로 찾아야 해."

결국 아들은 19년 만에 출생의 순간이나 함께 했던 산부인과에 가방을 찾으러 다시 가게 되었다.


아들의 전화였다.

"엄마 나 병원에 왔는데 직원이 없어. 안에서 말소리는 들려."

사실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는 의사 한 명 직원 한 명이 전부인 지역의 소형 산부인과이다. 간호사인 직원 한 명이 접수와 간호를 동시에 한다. 카운터에 직원이 없다는 건 진료실에 있다는 말이었다.

"다 진료실에서 환자 보고 있나 봐. 조금만 기다려."

"한참 기다렸는데 안 나와. 진료실 문 살짝 열어 볼까?"

"안돼!"

순간 외마디 비명처럼 '안돼'를 외쳤다. 진료실 문을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된다. 특히 산부인과는 더 그렇다.

대기실 환자들 사이에서 교복을 입은 새파란 아들은 부끄럽고 머쓱했는지 전화를 끊지 못하게 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엄마, 직원 나왔어. 잠시만."

수화기 너머로 수줍은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한송주 아들내미..."

말 끝을 흐리는 아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들은 산부인과에 교복을 입고 들어선 자신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몰랐던 모양이었다. 아들도 아니고 아들내미 라니...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직원은 한송우라는 환자가 방금 보라색 가방을 놓고 간 발음이 줄줄 새는 정신없는 아줌마임을 바로 알아챈 듯했다.

"네 그거 맞아요." 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엄마 가방 찾았어." 미션을 완수한 아들이 경쾌한 목소리에 안도했다.


나는 여자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산부인과 가는 것을 위험물처럼 취급하며 금기시했다. 산부인과 이야기만 나와도 괜히 부끄러웠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따라붙을 까봐 겁이 났다. 그랬던 내가 고등학생 아들을 산부인과에 보냈다. 군말 없이 가방을 찾으러 산부인과에 가준 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챙겨야 할 것은 바로 내 정신줄임을 머릿속에 콕 박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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