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발표시간은 공포였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호명할까 심장이 가속을 붙였다. 내 초등학교 생활 기록부에는 늘 얌전하고 소극적이란 말이 적혀 있었다.
그랬던 내가 나이를 먹고 변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외향적 욕구가 발현되기 시작한 건 20대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를 보는 시선은 사교적인 사람, 낯가림이 없는 사람, 술 잘 먹고 잘 노는 성격 좋은 사람이었다.
술자리의 분위기에 취해, 술에 취해, 님에 취해, 노래방에 취해 놀던 때는, 내가 사회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던 외향적인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또 아이를 키우며 학부모 장기자랑에 나가고 아이 운동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을 보면 누구나 나를 외향적인 사람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나에 대한 평가였다.
낯가림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 사교적인 사람 같지만 에너지 소진으로 집에 와서는 입을 닫기 일쑤였다.
술은 간이 해독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고 놀긴 잘 놀아도 이제 거의 혼자 논다. 왜냐하면 신데렐라 보다 더 못하게 10시 전에 졸음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무르익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 '집에 가자'를 가장 먼저 내뱉는다. 그래서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게 되었다.
파투 전문가...
외향성이 절정을 이루던 시절을 지나고 보니 지금 내 모습이 생경하기만 하다.
지금 시간 새벽 3시 24분
오늘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이 있다. 2시 6시 두 번에 걸쳐 학부모들에게 어학원 안내를 겸한 홍보를 해야 한다. 피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잠자리에 누워 내일 말할 내용을 중얼거려 보니 잠이 다 달아놨다. 저녁에 마신 커피 탓도 분명 있겠지만 머릿속에는 OT 밖에서 생각이 안 났다. PPT내용에 더 추가하지 못한 내용이 있는 것 같아 말로 잘 때워봐야겠다 생각했다. 이러다 아무 말 대잔치가 되면 어쩌나 겁도 났다.
오늘도 분명 심장에 가속이 붙을 것 같다. 사투리도 막 튀어나오겠지? 무리한 개그를 쳐서 본전도 못 건지면 안 되는데...
MBTI가 유행하던 때 재미로 본 내 검사 결과는 49:51로 내향형 성향이 무의미한 수준으로 조금 높게 나왔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뺏긴다고 느끼는 나는 결국 내향형에 가까운 체력쓰레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리고 문득 궁금했다. 극외향인들은 발표를 해야 하는 상황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