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 속 약국
여행을 가기 이틀 전 날이었다.
중년의 여행도 청춘의 여행도 설레고 즐겁긴 매한가지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예쁜 옷보다 편한 옷을 챙겨 넣고 예쁜 신발보다 운동화가 우선이다. 내 경우는 그렇다.
또 한 가지 중년의 내 여행은 상비약을 종류별로 철저히 챙기는 것으로 청춘의 여행과 다른 선을 그었다.
설사할까 지사제
과식할까 소화제
두통 올까 진통제
건너뛰면 큰일 날까 각종 영양제
인공 눈물도 한가득
여기서 끝이 아니라 치실까지 챙겨 가실게요.
요즘 이에 음식물이 끼면 빠지지도 않는다.
숨 가쁘게 상비약과 먹던 영양제를 챙겼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연고 처방이 필요했다. 나는 발바닥에 한포진이 있다. 이년 전 갑자기 가려움을 동반한 수포가 생기기 시작했다. 단순 염증이려니 생각했지만 수시로 재발했고 한포진이라 진단받았다. 작년 여행 때 연고를 챙기지 않은 탓에 고생한 기억이 있어 이번에는 잊지 않고 피부과를 찾았다.
"기미약 처방받으러 오셨죠?"
나를 보자마자 훅 들어오는 의사 선생님의 일격에 잠시 주춤했다. 생얼로 병원에 간 내 잘못이지 의사는 죄가 없었다.
나는 호탕하게 웃으며
"기미 때문에 온 건 아닌데.. 제 얼굴에 기미가 많나 봐요. 하하 그럼 기미약도 처방해 주세요."
졸지에 내 주상증은 기미가 되었다. 가려움증에 고생 중인 발바닥은 심각할 것 없이 연고 처방이 내려졌다.
청춘의 여행이 즐기기 바빴다면 중년의 여행은 캐리어에 작은 약국을 실어 가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맨얼굴을 의사 선생님 앞에 들이 민 바람에 기미 완화제까지 챙겨 가게 되었으니, 동남아 여행에 이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생각하며 속을 풀어 보았다. 그리고 기미 완화제가 선크림보다 강력할 거라 믿으며 여행 이틀차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