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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살이v Oct 08. 2022

아버지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글





아버지!

추운 겨울의 끝자락에서 편안하신지요? 이렇게 편지 글에서 아버지라고 불러보는 것이 아마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 이후로 처음인 것 같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봄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저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제가 세상에 난 지 만 31년이 지났고, 저 또한 제 딸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네요. 지금도 젊은 모습의 아버지가 눈앞에 선 한데, 어느덧 아버지는 머리 희끗희끗한 교장 할아버지가 되어 있으십니다. 또한 그것도 오늘이 그 44년간의 교직생활의 마지막 날이라는 게 정말 머릿속으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믿기지 않을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두어 달 전 제 딸이 드디어 돌을 지냈습니다. 아직 일 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가 딸아이를 낳아보니 누나 2명과 저를 포함하여 아버지께서 저희 삼 남매를 삼십하고도 수년 동안 얼마나 큰 사랑으로 키우셨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정말 크나큰 헌신과 애정으로 저희 삼 남매 모두 이렇게 무사히 자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가정에 충실하셨고 헌신적이었으며 다정다감한 모습이었습니다. 덕분에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저희 가족은 언제 어디서나 즐거웠으며 항상 희망이 가득하고 행복했습니다. 물론 살다 보면 어렵고 힘든 시절도 있었습니다. 저희 셋이 계곡에서 물놀이하다가 급류에 휘말려서 떠내려갈 때, 근처에서 식사하시던 아버지가 밥숟가락을 떨어뜨리며 부리나케 달려오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제가 10살 때 왼팔을 심하게 다쳐서 당시 재직 중이던 아버지 교무실로 간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같이 걱정해 주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수술이 끝난 이후에도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아 밤낮으로 걱정해 주셨습니다. 한 때 입시에 좌절하여 집 앞 운동장을 몇 바퀴씩 멍하게 돌 때도, 아버지께서는 저의 옆에서 ‘세상사 마음대로 안되지~’ 하시며 힘내라고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좋은 시절과 힘든 시절 모두 아버지는 항상 저희 곁에 있어주셨으며, 물심양면으로 저희를 응원해 주셨습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면 서러울 정도로 크게 출세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지난 시절 가정에 충실하지 못해서 꿈이 좌절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가정에 충실하시고 헌신적이었으며, 전 당당하게 이 세상 최고의 아버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베푼 사랑을 보면 학교에서도 얼마나 열의를 가지고 학생들은 지도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40여 년의  정말 긴 시간 동안 교사로서 수없이 많은 제자를 배출하셨습니다. 스승의 날마다 아버지께 감사하다며 찾아오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께서는 가정뿐만 아니라 직장인 학교에서도 열의와 애정을 가지고 교육에 임하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였습니다. 단기간에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수십 년 동안 배출된, 아버지의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자란 수많은 제자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있을 생각을 하니, 교육이야말로 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위대한 업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백년지대계의 업적을 무사히 완수하신 아버지의 모습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제가 좋아하는 고사성어 중에 ‘고색창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랠 고, 빛 색, 푸를 창, 그럴 연. 오랜 세월을 겪은 옛 정취가 그윽하게 나타날 때 쓰는 표현입니다. 지금 아버지께 가장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에 과거 애정과 열의를 가지고 임했던 가정과 학교에서의 시간이 그윽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또한 지난 세월 동안 베푸셨던 아버지의 사랑과 열의, 가르침이 가정과 이 사회에도 그윽하게 깃들어 있습니다.





제게 남은 소원이 있다면 아버지께서 퇴임 이후에는 부디 건강에 유념하시어 44년간 교직에서 지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것입니다. 저희 뒷바라지하시느라 건강이 안 좋아지실까 봐 걱정이 많이 됩니다. 저희 자식들은 이제 결혼도 다했고 손주들도 모두 낳았습니다. 치열하게 임했던 학생 교육과 자식들 뒷바라지에서 물러나 걱정 근심을 잠시 내려놓으시고, 이제 좀 더 여유를 갖고 본인의 시간을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바람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많이 찾아뵙지 못해 항상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좋아하는 킴벌리커버거의 시 한 편 올려드립니다.





삼 남매를 대표하여 아들 올림

​​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Kiberly Kerberger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 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대신 내가 가지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맟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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