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미니멀리스트라고 하지만, 내 기준에서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다. 미니멀리스트가 단순히 물리적인 물건 소유를 최대한 지양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인간의 '다양성'과 '존엄성(??)'을 핑계로 내가 원하는 수준의 미니멀리즘에 도달하지 못하는 나에게 숨쉴 구멍을 만들어놔 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는 내가 선천적이 아닌 후천적 미니멀리스트로, 미니멀리즘을 선택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시절의 영향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내가 대부분의 살림과 연년생 육아 및 재택 근무를 오롯이 감당했어야 하다 보니 모든 것에 최우선하는 가치는 생존 및 생존을 위한 최대치의 효율이었다. 그래서, 살림에서도 효율만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을 추구했다. (물론 추구만 했다..)
좌충우돌하던 시간은 흘러흘러 연년생 남매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첫째는 본인 기준에 지금 우리집 정도면 완전 미니멀이라고 한다. 쌉T 엄마인 나는, 아이가 집에 대해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냥 넘어가도 될텐데 굳이 셀프 팩폭을 한다.
나: 우리 집이 깔끔해 보이는 건 사실인데, 미니멀은 아냐. 엄마가 생각하는 미니멀은 깔끔해 보이도록 유지하는 데에 큰 품이 들지 않는거야.
첫째: 아..! 그래? 그렇군!(팩폭 당하심)
나: 지금 우리 집은 엄마 맘에 들만큼 깔끔하려면 솔직히 손이 좀 가는 편이야. 그게 살림 동선이나 수납 시스템 등 구조적인 이유도 있을 수 있는데, 근본적으로 현재 우리 집에 있는 물건의 양이 엄마 기준에는 약간 많은 편이야.
첫째: 아..! 그래? 그렇군!(이해 안되심)
첫째에게 말한 그대로다. 진짜 미니멀은 깔끔한 상태를 유지하기가 평소에 힘들지 않아야 한다. 거실만 보면 살림이 많지 않아 보이는데, 내가 집안 관리 최종 담당자여서 그런지 내가 미니멀리즘을 통해 추구하고 싶은 게으름의 눈높이가 너무 높은 건지, 아직 우리 집은 '게으르기 위해 약간 부지런해야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과 추억으로 인해 이성과 감성이 따로 노는 '인지부조화'가 일어나고 있다. 머리로는 여전히 극한의 살림 효율을 추구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잔잔바리 잔 짐에 조금씩 무뎌져가고 있고 버려야겠다는 결정을 칼같이 내리지 못하는 일도 예전보다 빈번해지고 있다.
나이먹으면 군살이 붙는 건 몸도 마음도 집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이먹고 젊은 시절 몸매 유지하는 게 비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인가..)
이러한 성향의 변화가 생긴 이유는 아래와 같다.
설레지 않지만 사랑하는 것들
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쌓이게 되는 추억이라든지, 대체할 수 없는 & 간직하고 싶은 오프라인의 물성이 생긴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지만, 내 나이(?)쯤 되면 사람이든 물건이든 보고 설레기가 상당히 힘들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성취 동기보다는 회피 동기가 더 커지는 나이대에 점점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너덜너덜하다못해 삭아버릴 것 같은 소창 기저귀, 멕시코 시절 사진 찍었던 필름 등이 그렇다. 걸레짝보다도 안쓰러운 비주얼의 소창 기저귀는, 보고 있으면 육아·살림·회사일 모두 죽도록 치열해야 했던 그 시절의 내가 안쓰러워서 지금의 내가 안아주고 위로해줘야 할 것 같아서 못 버리겠다. 이걸 사진으로 찍어서 이미지로만 보관하고 이걸 버리는 건 나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삭았지만 곱고 부드러운 소창의 촉감을 손으로 느낄 때마다 아기 시절 아이들의 뽀송한 피부와 아기 냄새와 지금보다 훨씬 더 미숙한 엄마였던 내가 함께 치열하게 살아냈던 순간으로 시간 여행을 하곤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들의 그 시절이 많이 그립다.)
그러니까, 설레지 않는다고 무조건 버리라고 하지 마세요.
나도 사치(?) 좀 해보자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장식용으로 물건을 늘어놓을 공간적 & 정신적 여유가 1도 없었다. 물론 지금도 왠만해서는 그러고 싶은 물건도 마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어떤 경로나 이유로 나의 버리기 전쟁(?)을 피해 지금까지 살아남은 소수의 물건들이 있다.
그 물건을 보면 이제는 물건의 효용보다는 물건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나의 속성, 그리고 물건에 덧입혀진 애증(?)의 시간이 더 크게 와닿아서 버리지 못한다. 이런 물건들이 지금은 많지 않지만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하면, 왜 물건을 사는데 신중해야 하는지 더욱 크게 깨닫게 된다.
이와는 별개로, 결혼한 이후 지금까지 살아남아 나의 엄마이자 아줌마로서의 역사를 함께해 온 물건들에 대해서는 이제는 좀 늘어놓기도 하면서 공간에 내 취향을 슬쩍 녹여내 보고 싶기도 하다. 꺼내놓음으로써 먼지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여유, 내 공간에서 유지 관리의 부담없이 '나'를 표현하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를 누리고 싶은 맘이 드는 것이다.
밀라논나님과 같은 안목은 없지만, 나와 연이 닿아 내 삶의 중요한 시절을 오랫동안 함께해 온 물건이라면, 내가 그걸 소중하게 대하는 만큼 그 물건은 '나만의 명품'이 되는 것이다. 모두 껴안고 사는 것도 좋은 건 아니겠지만, 무조건 버리는 것도 능사는 아니겠다..라는 생각이 조금씩 드는 요즘이다. 왜 노인들의 집에 쌓여있는 게 그렇게 많은지도 조금씩 이해가 되기도 하고.
하지만, 과거의 물건들이 나의 현재를 힘들게 하지 않는 적정선은 꼭 지켜야 한다고 본다. 그 적정선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지만, 그래서 나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컴포트 존'이자 '최후의 둥지'이자 '늪'이자 '중력'인 지금의 집과 소통해 온 지도 어느덧 만 6년을 채워가는 요즘, 공간을 쓸고 닦으며 매만질 때마다 하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오늘도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나는 싱크대 상판 위를 아무것도 없도록 치우고 정리해야 하는 강박에 충실하며 주방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