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로 귀촌을 하고 난 뒤부터 일찍 잠드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과학자와 의학자들이 말하길 햇볕을 받으면 사람의 생체 시계가 자연에 맞게 활성화된다고 하는데 시골에 온 후 햇볕을 많이 쬐게 되니 도시에선 12시 이전에 잠을 자본적이 없던 제가 8시에도 자고 9시에도 자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벽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졌고 4시나 5시쯤 잠을 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때 잠에서 깨면 가을이와 초동이가 따라와 밥이나 간식을 달라고 졸라대서 한동안 그 시간에 녀석들에게 밥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녀석들이 배가 고픈가 보다 하고 무심코 간식도 주고 사료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녀석들은 그 시간을 식사 시간으로 인식했는지 제가 조금이라도 늦게 일어나거나 피곤해서 잠을 더 자려고 하면 저를 깨우려는 녀석들의 훼방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사료나 간식을 대령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가을이와 초동이가 처음에 저를 깨우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겨울에 문을 닫고 자기 위해 달아놓은 고양이문을 발로 세게 쳐 열렸다 닫히는 시끄러운 소리로 저를 깨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시도는 좋았으나 저는 한 번 잠들면 충분히 자기 전까지 소리 때문에 깨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녀석들의 그러한 시도는 저를 깨우지는 못했고 도리어 아내만 깨우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아내는 저와 달리 일어나 녀석들의 먹거리를 챙겨주지 않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문여닫기 신공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문여닫기 신공으로는 저를 깨울 수 없었던 녀석들은 둘이 쑥덕쑥덕 작전 회의라도 했는지 둘이 번갈아 가며 제 머리맡이나 발치를 돌아다니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척 하면서 저를 깨웠습니다. 처음에는 녀석들의 그러한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잠을 깨우면 녀석들을 끌어 안고 잠을 청하는 통에 그 뒤로는 침대로 올라오는 일이 줄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일어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문밖에서 대기모드를 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어설프게 잠이 깼는데 시간을 보니 5시 반이었고 일단 1층으로 내려오기는 했는데 너무 졸린 탓에 안마의자에 누워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녀석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깼는데 그것은 가을이의 다급한 비명소리였고 2층에서 1층으로 도망쳐 내려오는 가을이 뒤에는 무시무시한 떡대의 초동이가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1층을 돌아다니며 가을이를 쥐잡듯이 잡다가 다시 2층으로 올라갔는데 선잠에서 깬 저는 잠시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여 어리벙벙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덕분에 잠에서 완전히 깨어버린 저는 평소 습관대로 녀석들의 밥을 챙겨 주었고 녀석들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총총걸음으로 내려와 사료를 얻어먹고는 평화롭게 2층으로 잠을 자러 올라가 버렸습니다.
녀석들이 올라간 뒤 상황을 유추해보니 평상시 초동이는 가을이를 귀찮게는 해도 쥐잡듯이 잡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우리 앞에서는 가을이에게 다가가 귀찮게 하려다 쥐어터지기 일쑤였는데 그날 새벽에 일어난 실상은 정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을이를 앵벌이시켜 저한테서 사료나 간식을 얻어내다 그날 제가 잠에 취해 아무것도 주지 않자 앵벌이에 실패한 가을이를 초동이가 구박하며 정신 교육을 시키고 있던 장면이었고 저는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왜 가을이가 늘 먼저 간식을 달라고 조르고 연이어 어디선가 초동이가 그 뒤를 따라 스윽 나타나서는 바닥에 자리잡고 앉아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을인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간식을 다 먹지 않고 조금씩 남기면 초동이가 어느새 낼름 누나 간식을 훔쳐 먹게 되었는지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초동이가 가을이를 앵벌이시키고 앵벌이로 얻은 사료를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그저 추측이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사료나 간식은 늘 가을이가 더 많이 얻어 먹는데 체중은 늘 초동이가 더 늘어나는 것이 확실한 증거였던 것입니다. 결국 가을이는 초동이의 앵벌이 도구요, 간식 셔틀이었으며 알고 보니 도도한 콩쥐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조폭스러운 초동이의 실체를 발견하게 되었고 녀석은 제게 실체를 들킨 줄도 모르고 여전히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가을이를 앵벌이시켜 호의호식을 누리며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냥이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