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병원에서 하도 나오지 않길래 슬금슬금 병원 안으로 들어갔더니 수의사 선생님과 아내가 그때까지도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영부영 옆에 앉아서 고양이에 대한 주의사항을 듣고는 기생충약과 설사약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에서 고양이가 변을 보았는데 약간은 설사 끼가 있다고 해서 약만 받아가지고 왔는데 다음날 설사가 심해져서 다시 병원을 찾았더니 범백을 검사하는 키트를 해보자고 하셔서 그 검사를 했는데 다행히 음성으로 나와서 그냥 설사약만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날까지 설사를 멈추지 않아 동물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수의사 선생님 말씀이 전 날 우리가 가고 난 이후에 검사가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병원으로 가니 범백이라는 것이 고양이의 백혈병과 같은 것인데 치사율이 높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때는 범백이라는 병도 처음 들었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보은이는 지금도 우리 곁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후에 생각해보니 그 수의사 선생님 입장에서는 장날 시장에서 사온 고양이에 저희가 비싼 돈을 들여서 치료를 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고양이를 기르는 것이 처음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좀 더 자세한 조언을 했더라면, 차라리 입원치료라도 하자고 했더라면 아마 보은이는 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냥 입원시키지 말고 약을 먹이면서 경과를 보자고 하셨는데 일주일이면 죽든지 살든지 대개 결론이 날 것이라고 하셨고 거의 절망적으로 말씀을 하시는 탓에 우리는 사람이 손을 쓸 수 없는 병인 줄 알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설사를 시작하는 보은이를 위해 마누라님은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에서 보은이를 간호했습니다.
페트병에 따뜻한 물을 채워서 보은이 곁에 두고, 밤에는 전기 장판도 깔아주고, 자주 설사를 하는 탓에 좀 큰 박스를 구해다가 화장실을 작게 만들어서 같이 넣어주면서 매일매일 보은이를 보살폈습니다.
저 역시 한 주먹도 안 되는 작은 체구로 먹지도 않고 설사만 해대는 녀석이 너무 안쓰러워 이 방법 저 방법으로 밥을 먹이려 했지만 아무것도 먹지를 않아서 결국은 주사기를 사다가 강제로 입에 넣어주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나날이 설사는 멈추지 않았고 나중에는 거의 혈변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일주일이 다되었을 때 녀석이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에 처음 왔을 때 아프긴 했어도 낯선 환경에서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집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던 녀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는 친해질 기회도 없이 날마다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주일날 이른 아침에 제가 먼저 들여다 보니 이미 몸은 굳어져 무지개 다리를 건너버리고 말았습니다.
보은이의 마지막 모습은 제가 보고 아내가 보지 못하도록 신문지에 쌓아 두었습니다.
녀석의 마지막 모습은 평상시 그렇게 예쁘고 귀엽던 녀석의 모습이 아니라 정말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워 했던 일그러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마 그 모습을 아내에게는 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양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무지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단순히 고양이를 길러야겠다는 생각으로 너무 쉽게 녀석을 데려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녀석은 우리가 데려오지 않았어도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그대로 죽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과는 상관 없이 생명에 대한 책임과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지 않은 것 역시 무책임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녀석을 묻어주기 위해 뒷산으로 향하면서 지난 일주일 간의 일들이 생각났습니다.
불과 일주일 밖에 함께 하지 않았지만 그 자리는 너무도 컸습니다.
사람의 죽음이든 동물의 죽음이든 모든 죽음은 슬픔을 동반합니다.
고양이를 먼저 키우시던 분들은 고양이가 죽으면 무지개 다리를 건너 별이 된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잠시 잠깐 우리 곁이 있었던 보은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 밤하늘의 별이 아니라 저와 제 아내의 가슴 속의 슬픈 별이 되었습니다.
- 냥이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