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노트

#0. 하와이 한 달 살기 Prologue

by 솔트앤선

서른셋의 어느 11월 22일.

100세 시대의 3분의 1 지점을 지나면서 문득 생각했다.


“영어, 이번 생에 잘할 수 있을까?”


영어에 대한 막연한 욕심은 늘 있었지만, 정작 제대로 배워볼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서른셋. 인생의 1/3 지점. 새로운 노력을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늘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영어를 이번엔 제대로 배워보기로 결심했다.

마음먹었으니 실행해야지! 어학원에 등록하기로 결심하고, 자연스럽게 필리핀 어학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1:1 수업, 저렴한 학비, 따뜻한 날씨! 이거다! 게다가 바다까지 있으니 세부가 딱이겠지? 그렇게 결정을 내리려던 순간, 불현듯 떠올랐다.


“잠깐, 나 하와이에서 살아보고 싶어 했잖아?”


그 순간 필리핀은 서서히 희미해지고, 하와이가 머릿속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저렴한 것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떠날 거라면 정말 살아보고 싶었던 곳에서 해보자. 그리고 바로 결심했다.


“그래, 이참에 하와이로 가자!”


목적지가 바뀌는 순간, 기억 저편 희미해져 있던 것들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지도 위에 빛바랜 경로가 다시 선명하게 나타나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이 결정을 너무 즉흥적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이건 갑작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30년 가까이 일기를 써왔다.

그 일기장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적으면 이루어지는 마법의 소원 노트였다.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그렇다.

적어놓고 나면, 기억은 흐려져도 무의식적으로 내 행동들은 그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늘 그곳에 닿아 있었다.


고등학생 때 본 다큐멘터리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서 우유니 소금호텔이 소개되는 걸 보고, 일기를 썼다. “언젠가 나도 소금호텔에서 자야지!” 그때 이후로 잊고 살았다. 그런데 2012년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우유니의 소금호텔에서 자고 있었다.

2014년, 이사를 앞두고 옛날 일기장을 정리하다가 알게 됐다. 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꿈꿨던 여행지가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걸.

그때부터 확신이 생겼다.


“내가 적은 꿈은 언젠가 현실이 된다.”


그 후로 나는 매년 12월 31일과 1월 1일, 일기장 첫 장에 올해의 목표를 적는다. 몇 년 후 다시 일기장을 펼쳐보면, 이루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적은 방향대로 살고 있었구나!”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일기장에 내가 원하는 삶의 힌트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노트를 뒤적이다가 발견한 2023년 1월의 일기.

“꿈이 생겼다. 하와이에 가서 살고 싶다. 바다와 화산이 있는 그곳에서, 꾸미지 않고 운동복을 입고 쪼리를 신고 다니며 아리를 기르고 싶다. 매일 바다에 나가 서핑을 하고 다이빙을 하며 1년 이상 그곳에서 살아갈 테다!”


순간, 가슴 한쪽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이걸 내가 적었었나? 언제부터 하와이를 꿈꿨던 거지? 기억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정확한 순간은 흐릿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했다.

필리핀 어학원을 검색하다가, 아무런 이유 없이 하와이가 떠오른 게 아니었다. 이건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내가 무의식 속에서 오래전부터 바라왔던 일이었던 것이다.

꿈을 좇기보단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갔지만, 내 무의식은 내 인생의 방향을 꿈을 이루며 살아가라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 이건 또 하나의 소금호텔이야."


그 순간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와이에 어학원이 있고, 따뜻한 날씨와 바다가 있고, 무엇보다도 내가 꿈꿨던 삶이 있다.

1년 이상이 아니면 어떠랴, 한 달이면 어떠랴.

“그래, 필리핀이 아니라 하와이로 가자!”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일기장에 적힌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하와이에서 살아보기.

이번에도, 현실이 될 차례였다.


+ 오늘부터 소원 노트를 써보는 건 어때?

일기라고 생각하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 하지만 그냥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는 메모장’이라 생각해 봐. 오늘 적은 꿈이 언젠가 현실이 된다면? 그게 바로, 기록의 힘이니까!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