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의 바람과 카레

#1. 하와이 한 달 살기 - 1일 차

by 솔트앤선

1월, 극도로 추웠던 한겨울의 한국을 떠나 도착한 하와이.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선 순간, 피부에 닿는 공기가 달랐다.

스웻셔츠 한 장 걸쳤을 뿐인데, 따뜻한 햇살이 등에 닿자마자 금세 땀이 배어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끈적임이 없었다.

하와이의 바람은 동남아에서 느꼈던 습기를 머금은 눅눅한 열기와는 달랐다.


파우더를 뿌린 듯한, 보송보송하고 가벼운 바람.

짠내도 습기도 없이, 부드럽고 포근한 바람이 살결을 스쳤다.

공기 속에 햇살이 녹아 스며든 것 같은 바람.

그 감촉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내가 한 달간 머물게 될 집에 도착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2층짜리 주택.

와이키키 해변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이곳에서 나는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홈스테이 호스트 부부는 30년 전 필리핀에서 하와이로 이주해 온 이주민이었다.

그들은 하와이에 정착하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 덕분인지 기세가 강했고,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었다.

때로는 그 기세가 나를 숨 막히게 했고, 은근한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응원해 주고, 새로운 기회를 열어준 이 사랑스러운 부부를 나는 잊을 수 없다.


현실적이고 강한 성격에 짠순이지만 결정적인 순간 나를 밀어준 치기공사 크리스.

조용하고 다정한 성격으로 늘 묵묵히 나를 배려하며 챙겨준 보험사 아놀드.


무거운 20kg짜리 캐리어를 힘겹게 2층까지 옮겨 준 것도 아놀드였다.

그 작은 행동 하나가, 낯선 나라에서의 긴장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었다.


하와이의 사설 어학원은 매주 월요일에 개강한다.

그래서 나는 일요일 도착 비행기표를 끊었다. 본격적인 일정 전에 그냥 하루 푸욱 쉬려고…

짐정리도 하고 샤워를 한 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2층으로 캐리어를 옮겨준 아놀드가 말을 걸어왔다.

“시내 구경할래? 와이키키 보여줄게.”


비행기를 탄 지 8시간 만에, 시차적응 따윈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눈 떠있는지 36시간째,

하와이에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하와이에서의 첫 번째 하루가 내 계획과는 다르게 정신없이 시작되었다.


짐정리도 못하고 샤워를 할 새도 없이, 땀에 흠뻑 젖은 스웻셔츠만 갈아입고 아놀드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


“내일부터 어학원에 나가지? 버스는 여기서 타면 돼~ 버스 카드 없지? 버스카드부터 구입하러 가자구~”

야자수와 파란 하늘, 반짝이는 바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와이키키를 지나 아놀드는 나를 매직 아일랜드로 데려갔다.

"현지인들은 와이키키보다 매직 아일랜드를 더 사랑해~"

그리고는 알라모아나 센터로 향했다.


낯선 도시, 낯선 공기, 낯설지만 따스한 사람들.

홈스테이를 한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부드럽게 이곳에 스며들 수 있었다.


“여긴 알라모아나 센터야. 솔트 네 어학원은 여기 바로 앞이고. 배가 고프면 푸드랜드에 가봐. 괜찮은 무스비와 포케집이 있어. 좋은 하루 보내고 쇼핑 마치고 돌아올 때는 여기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돼.”


알라모아나 센터에 들어서자 환호성과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향하니 알라모아나 센터 스테이지에서 훌라 공연을 하고 있었다.

신나는 훌라 공연이 끝난 뒤 쇼핑센터 안을 몇 걸음 더 걸어가니 'Over the rainbow' 우쿨렐레 공연이 이어졌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내가 정말 하와이에 왔구나.”


아놀드의 조언대로 푸드랜드에 가서 포케를 사 먹고, 버스 카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가 지고 집에 도착하니

크리스가 주방에서 카레를 끓이고 있었다.

흰쌀밥에 카레, 한국에서 온 나를 위한 배려가 느껴졌다.



“배고프지? 얼른 먹어.”


하와이에서의 첫 번째 저녁.

나는 흰쌀밥과 따뜻한 카레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이제 정말 하와이에서의 한 달 살기가 시작된 것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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