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반 학생

#2. 하와이 한 달 살기 - 2일 차

by 솔트앤선

새벽 6시 45분.

눈을 비비며 크리스가 싸준 도시락을 챙겨 들었다.

오늘은 어학원 첫 등교 날.


버스를 타고 1시간을 가야 했기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런데 웬 폭우?


어제는 그렇게 맑고 따뜻하더니, 오늘은 전혀 달랐다.

심상치 않다.


버스 창밖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하와이 사람들의 아침은 빠르다.

6시 35분, 집집마다 스쿨버스가 서고, 7시 30분이면 초등학생들의 수업이 시작된다.

어학원도 8시 시작.

한국에서는 9시 출근이 일반적인데, 여긴 모든 게 조금 더 이르게 시작되었다.

심지어 5시 30분부터 문을 여는 카페와 크로스핏 센터까지.

‘하와이는 조금 이르게 시작되는구나.’

그렇게, 폭우가 쏟아지는 아침 나는 어학원으로 향했다.



어학원에 도착하자 원장 에릭과 짧은 면담이 진행됐다.

“어떤 목적으로 영어를 배우고 싶나요?”

“왜 하와이에서 공부하기로 했나요?


몇 가지 질문에 답한 후, 곧바로 레벨 테스트를 치렀다.


Essay 20% (15분)

Listening 10% (15분)

Reading & Grammer 10% (20분)

Language Use(Speaking) 60% (15분)


한 시간을 꽉 꽉 채운 시험이 끝나고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레벨 발표.


“레벨 4”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크리스와 아놀드는 내 레벨이 최소 5 이상일 거라고 확신했는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는데. 결과는 달랐다.


그리고 곧이어, 어학원의 총 책임 선생님이 나와 긴 연설을 시작했다.


“첫 레벨 테스트 결과는 한 달 동안 유지됩니다.”


네? 한 달이요?


“어떤 이유에서건, 첫 시험 결과는 최소 4주간 변경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소통입니다. 문법과 리딩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말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Step by step, 차근차근 올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문법과 리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어도, 스피킹 점수가 낮으면 레벨을 올릴 수 없었다.


어학원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첫 레벨 테스트였을 줄은 몰랐다.

이 결과가 최소 4주 동안 유지된다는 것도 몰랐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어학원의 수업 시간은 두 가지였다.

오전반 (8:30 ~ 12:10) - 레벨 5 ~ 8 수업

오후반 (13:20 ~ 17:00) - 레벨 1 ~ 4 수업


그렇다. 나는 레벨 4.

내가 원하던 오전반 수업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지? 설마 4주 동안 레벨 변경이 안 된다고?

매주 테스트에서 최고 점수를 받아도 바꿀 수 없다고?’


내 어학연수 일정은 4주.

즉, 나는 한 달 내내 ’오후반 학생‘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침형 인간으로 살며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려 했건만…

오전 수업 후,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하와이를 만끽하려 했건만…

내 계획은 하와이 도착 2일 차에 날아가 버렸다.


왜 아무도 이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하와이에서 어학연수를 한 경험담을 찾기란 참 어려웠다.

블로그, 카페, 유튜브를 뒤져봐도 필리핀,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의 정보만 가득했다.

심지어 한국 유학원에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조차, 하와이 어학원을 직접 연계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하와이에 오는 사람들은 단순 여행자이거나,

이미 영어를 어느 정도 하는 사람들이라서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물가가 비싸다 보니, 애초에 어학연수 시장이 작아서일까?


어쨌든, 나는 이 중요한 사실을 몰랐다.

이렇게 해서 나는 오후반 학생이 되었다.


어학원 첫날, 나의 한 달 일정이 결정된 것이다.


이제 나는 오후 1시 20분에 등교하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이 상황을 최대한 즐기는 수밖에…

오후에 석양을 보며 서핑과 포케 한 그릇 해야지.


그땐 몰랐다.

왜 하와이의 하루가 아침 일찍 시작되는지,

왜 카페가 새벽 5시 30분부터 문을 여는지...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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