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섬꽃 마라톤에 이어 예약해 둔 곳은 청송 사과 마라톤이었다. 나는 청송이라고 하여 청도쯤 생각하고 예약을 했는데 웬걸 집에서 차로 3시간이 걸리는 먼 곳이었다. 대구-구미-안동을 지나서 있는 아주 먼 곳이었다.
처음에는 버스 운행을 한다고 해서 버스를 신청해 놨는데 겸사겸사 차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취소를 하고 보니 3시간이 걸렸고, 9시까지 도착하려면 6시에는 출발을 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전날 서울 출장이 있었는데 저녁에 끝나고 오면 12시간 넘는 일정이었다. 실제로 1시 넘어 자서 5시 반에 일어나 가야만 했다. 전날 잠을 안 자고 마라톤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몸소 체험을 했다.
아침에 반팔로 그냥 나왔는데 생각보다 날씨는 쌀쌀했고, 곳곳에 안개가 자욱했다. 추워서 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도착한 곳은 산소카페 청송정원. 꽃들로 예쁘게 꾸며져 있는 넓은 공간의 정원 옆에서 마라톤이 개최되고 있었다. 주차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주차 자리도 넓었다. 마라톤 출발 시간이 10시로 다른 마라톤보다 늦은 편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쌀쌀했던 날씨도 어느덧 풀려 있었다.
행사장에는 떡과 약밥을 나눠주고 있었고, 청송의 황금 사과를 시식할 수 있게 했다. 사과가 생각보다 맛있었다. 마라톤에 참가를 하면 배번호에 청송 상품권 1만 원으로 바꿀 수 있는 교환권이 있고, 이걸로 상품권을 받아서 사과를 사거나 지역에서 쓸 수 있게 하였다. 사과가 맛있어서 우리는 마라톤이 끝나고 이 상품권을 보태서 사과와 사과즙을 샀다. 지역 소비도 촉진시키고 여러모로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았다.
문제는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3시간 운전을 한 데다가, 거제 마라톤에 참여하고 나서 우측 발목에 통증이 있었기 때문에 완주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나는 청송까지 왔고, 안 뛰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천천히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코스는 사과밭이 있는 도로를 쭉 뛰어갔다가 오는 코스였고, 갈 때는 약간 오르막, 올 때는 약간 내리막이었다. 청송 정원 걷기 코스부터 하프, 10km, 5km 순으로 출발을 했다. 출발을 한 뒤 우측 발목에 통증이 느껴졌기에 나는 발목에 계속 신경을 쓰면서 천천히 뛰었다. 주변의 사과밭에서 일을 하시는 주민들이 있었고, 할머니들이 도로 쪽에 나와서 응원을 하고 있었다. 시골의 정겨운 풍경이었다. 날씨는 매우 화창했고, 다른 건 몰라도 공기가 너무 깨끗해서 뛰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속으로 5km까지 천천히 뛰고 그 뒤에는 발목 상황을 봐서 스퍼트를 올려 보자 생각하고 있었다.
오르막이 이어지는 5km까지 다 뛴 뒤에 턴을 해서 내리막이 이어졌다. 나는 그때부터 발목의 통증을 조금 잊고 속도를 올렸다. 오르막에서는 페이스가 6분 대였다면, 내리막에서는 4분 대가 나올 때도 있었다. 천천히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뛰다 보니 욕심이 났고, 앞 구간에서 못 뛴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늦어지지 않기 위해 힘을 쏟았던 것 같다. 돌아오는 구간에서는 5km 사람들이 걷거나 뛰는 것이 보였고, 아이들도 참가해서 뛰고 있었다. 여전히 할머니들이 응원을 하고 있었고, 나는 끝까지 뛰어서 53분 대에 도착했다. 거제 마라톤보다 늦었지만 발목 통증과 피로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았다.
도착을 해서 사과와 사과즙을 샀고, 사과 막걸리도 샀다. 원래 청송에 온 김에 청송도 여기저기 둘러보고 시장 구경도 하려고 생각했는데 마라톤을 뛰고 나니 그냥 집에 가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생각보다 힘들었나 보다.
대신 돌아오는 길에 경주가 있어서 경주에서 국수도 먹고, 예쁜 카페도 갔다. 카페가 인상 깊었는데 인도풍의 사장님이 짜이를 내주시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내비가 가리키는 대로 차를 끌고 갔는데 너무 좁은 골목이 나와서 이건 아니다 싶어 주변에 차를 대고 다시 걸어서 가니 강 쪽 구석진 곳에 아담한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큰 한옥 건물에 검은 지붕이 특징이었고, 안은 인도 느낌으로 장식이 되어 있고, 고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들어가면 사장님이 두 손을 모으며 ‘나마스테’로 반겨 주시는데 손님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인도 여행 갔을 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했던 한국인 여자 사장님이 생각났다. 그분은 인도 여행을 다니다가 인도가 마음에 들어 정착을 해버렸다고 했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낙타 사파리 체험도 같이 하고 있었다. 결혼은 안 한 것 같았고, 자유롭게 인도 사람들과 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좋아 보였다. 혹시나 카페 사장님이 그분은 아니겠지? 혼자 속으로 생각했는데 잘은 모르지만 그분과 분위기가 비슷했던 것 같다.
짜이는 30분쯤 뒤에 나왔다. 앞에 2팀이 더 있었고, 사장님이 혼자 천천히 직접 만들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카페를 찾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위기와 여유를 즐기려고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래 걸리는 건 크게 개의치 않았다. 우리는 이야기도 하고, 풍경도 보고, 새끼 고양이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짜이는 향신료와 생강을 넣은 밀크티 맛이 났다. 인도에서 먹었던 짜이는 차가 맛있어서 그런지 진하고 담백한 맛이 났던 것 같고, 향신료 맛은 많이 나지 않았다. 인도에서 싼 가격에 먹었던 짜이와 여러 여행 기억의 단편들이 스쳐 지나갔다.
따뜻한 짜이를 먹으니 힘이 좀 났는데 그전까지 몸이 이상할 정도로 무거웠고,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수도 맛있게 먹긴 했는데 이상하게 속이 좀 안 좋았던 것이다. 나는 단순히 마라톤이 힘들어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집에 와서 체온을 재보니 38도의 열이 나고 있었다. 목이 아프거나 다른 이상은 없어서 문제가 생긴 건 아닌 것 같았는데 피로에 마라톤에 운전에 몸이 축난 것 같았다.
밤에 계속 누워있다가 겨우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는데 다행히 아침이 되니 열은 내렸고 다른 이상 반응은 오지 않았다. 일종의 몸살인 것 같았다. 뭔가 오려고 하다가 지나간 것 같았다. 잠을 못 자고 피곤한 상태에서 마라톤을 하면 이럴 수도 있구나 느낀 소중한 기회였다. 그래도 뭔가를 해 내고 이겨낸 것 같아서 뿌듯했고, 운동도 평소에 계속해야겠구나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