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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티마커 SALTYMARKER Nov 05. 2024

세계적인 지성 공동체의 꿈

(Image by Mariana from Pixabay)



나의 어릴 적 꿈은 여러 번 바뀌었다. 가장 첫 꿈은 천문학자였다. 초등학교 1학년쯤 되었던 것 같은데, 우주와 관련된 책들을 읽게 되면서 미지의 별들을 관찰하는 일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천문학자가 직업이 되면 별을 보는 것보다는 숫자와 컴퓨터 화면에 짓눌려 살 것 같아서 꿈을 계속 유지하지는 못했다. 중학교 때에는 미술이나 음악 같은 예술 계통의 일을 하고 싶었다. 아주 뛰어난 능력이 있지는 않았지만 남들보다는 잘했고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고, 나중에 직업으로 했을 때 먹고사는 것이 힘들 것 같아서 더 이상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못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부터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대학에 진학해서 전공 분야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전공은 1학년 때는 건축과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중에는 집을 설계하고 모형을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건축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실력을 쌓고 싶었고, 나중에는 내가 직접 설계하여 지은 집에서 살고 싶은 꿈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 3학년 때 생활기록부를 보면 장래희망이 바뀌어 있다. 아마도 부모님의 영향도 컸던 것 같고, 현실적으로 내가 혼자 독립했을 때 주변의 도움 없이 일어서기에 문턱이 낮았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고3 때 수능 성적이 내가 생각한 만큼 나와주지 않아서 재수를 했고, 다음 해 나는 손가락에 꼽힐 만큼 높은 성적으로 쉽게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꿈은 대학에 다니면서 생겼다. 전공과는 다르지만 나는 사람들을 깨우치는 글을 적고 싶었다. 우주부터 철학까지 다양한 것들을 아우르는 책을 내고 싶었고, 그것들을 계기로 사람들을 감화시켜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서로 가르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지식, 지혜, 지성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일종의 학당처럼 사람들이 와서 책을 읽고 담화를 나누고 깨닫기도 하고 행동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그런 모임. 그런 공동체가 전 세계적으로 형성이 되어서 세계 어디를 가도 그 공간만큼은 이익이나 악의가 없이 지식과 지혜를 나누는 곳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그래서 꼭 그런 학당을 만들고 싶다고 일기장에 적기도 했다.     


물론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고 현실에서는 전공 공부하기 바빴고, 졸업해서 먹고살기에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꿈은 잊혔던 것 같다. 나는 내 전공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기에 바빴고, 관련 공부를 하느라 글을 제대로 못 썼고, 일반적인 책들도 많이 못 봤던 것 같다. 삼십 대가 되어서 다시 글과 접할 기회가 생겼고, 글 쓰는 모임이나 책 읽는 모임에 나가거나 관련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인생은 녹록지 않았고, 책을 내기는커녕 글도 제대로 쓸 여유가 되지 못했다. 힘들 때마다 짧은 글이나 시를 적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아무런 목표도 꿈도 없이, 사는데 급급하다가 교수가 되었다. 교수가 되어서도 내가 뭘 하면 좋은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좋은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그저 해야 할 일만 하면서 하루를 보냈고, 논문이나 연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일상이었다. 남들이 볼 때는 안정된 직장과 커리어에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방황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 길이 과연 나의 길이 맞는 것인지, 잊어버린 목표와 꿈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헤맸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다시 책과 글을 손에 잡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고, 글도 브런치에 올리고 하면서 살기에만 급급했던 생활에서 약간은 벗어나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전공과목이 거의 전부지만 강의 시간에 생활 철학과 같은 이야기도 하면서 약간의 흥미를 느꼈다. 학생들도 전공 외 인문학적인 강의에 대한 요구도 있었고, 마음에 맞는 학생들과 그런 모임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와중에 이십 대 초반에 했던 꿈이 생각났다. 현실에 치여 잊고 지냈던 그런 인생의 목표나 꿈. 지금도 현실은 현실이지만 어쩌면 조건이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수라는 직업이 지식을 나누는 일이다 보니 내가 원했던 글도 쓰고 책도 내면서 현실적인 루트로 다시 꿈을 꿔 봐도 좋겠다는 생각. 목표 없이 방황했던 인생의 시간들이 오히려 그런 일을 하기에 소중한 경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지식적으로는 관련 전공자들을 따라잡기 어렵겠지만 내 나름의 철학을 나누어도 좋겠다는 생각. 대중이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나를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학당과 같은 공동체. 살아 있을 때 이루지는 못해도 언젠가는 후배들의 손으로 이어갈 수 있는 시작과도 같은 씨앗. 교수를 하면서 그런 씨앗을 심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꿈을 다시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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