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학생, 어떡해야 할까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학생을 대하는 자세

by Sylvia


얼마 전 우연히 <최재천의 아마존> 유튜브에 올라온 "걸릴 줄 알면서 왜 거짓말할까"라는 영상을 봤다. 교수님은 거짓말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씀하시며 '너무 치명적인 거짓말이 아니라면 오히려 조금 품어주고 기다려주는 게 그 사람의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라는 의견을 덧 붙이셨다. 한창 말문이 트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만 세 살 딸아이를 보고 있으니 교수님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 같지는 않다. 의사표현이 뚜렷해지기 시작한 아이는 요즘 하기 싫은 게 있으면 무조건 “의사 선생님이 그러는데..”라는 말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엄마, 의사 선생님이 나 채소 먹으면 안 된대.” “엄마, 의사 선생님이 지금 안 자도 된대.” 의사 선생님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저렇게 당연하게 얘기하다니. 피식, 웃음이 난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내가 “오 그래?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라고 부추기면 더욱더 힘차게 확답을 한다. “어! 의사 선생님이 그러지 말랬어.” 고작 세 살 밖에 안된 아이가 이것이 사실인 것 마냥 꾸며서 얘기하는 걸 보니 정말 교수님 말처럼 거짓말은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세 살짜리 아이도 이렇게 이야기를 꾸며낼 줄 아는데 중학생은 오죽하리. 이쯤 되면 거짓말에 담긴 스토리는 더욱더 정교해진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지만 어떨 때는 그냥 내버려둘 때도 있다. 어떤 소설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까 궁금하기도 해서다.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주면 더 신나서 MSG에 온갖 양념을 쳐서 근사한 단편소설 하나는 뚝딱 만든다. 하지만 결국 거짓말은 탄로 나게 되어있다.


재잘재잘 떠드는 학생들의 소리로 가득한 쉬는 시간이었다. 옆 반 아이가 울먹이며 나에게 왔다.


“선생님 반 학생 중 하나가 제가 제일 아끼는 인형을 가지고 갔어요.”


“그래? 누구?”


아이는 수줍은 손짓으로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큰 남학생인 D를 가리켰다. 6학년이지만 이미 키는 나를 훌쩍 넘겨서 언뜻 보기에는 8학년처럼 보이는 아이다. 키도 큰데 목소리도 크고 자기주장도 강한 아이라 반 아이들도 선뜻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학생이기도 하다. 그걸 알아서 종종 쓸데없이 자기의 힘을 과시하기도 하는 아이.


“이모가 저번에 크루즈를 갔다 오면서 디니즈 샾에서 산 Stitch 인형이거든요. 저한테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인형이라 제 거라고 돌려달라고 얘기했는데 자기 거라며 안 줘요.”


“그렇구나. 선생님한테 말해줘서 고마워. 내가 얘기한 다음에 돌려주도록 할게.”


그렇게 그 아이를 보내고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던 D를 불렀다. 내가 부르니 이미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시치미를 뚝 떼고 터벅터벅 걸어왔다.


“D, 네가 가지고 있는 인형 선생님 좀 보여줄래? 옆반 학생이 와서 자기 거라는데. 이제 그 학생한테 돌려줘야 할 것 같아”


“이거 제 건데요?”


(어 이럴 줄은 몰랐는데..)

“그래? 그럼 어디서 산 거야?”


“저희 엄마가 사줬어요.”


“언제 어디서 엄마가 사주신 거야?”


“어..음..그러니까.. 어.. 아, 저번 주말에 디즈니 샵에서요.”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는 티가 팍팍 났지만 아이의 말을 믿은 척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너희 엄마에게 이메일 보내서 확인해 봐도 되겠니?”


그제야 D의 동공이 흔들린다. 잠시 고민하는 게 보였지만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네, 엄마한테 이메일 보내보세요. 엄마도 똑같은 말 할걸요.”


'해 볼 테면 해 보세요'라는 태도로 말을 툭 던지고는 쏜살같이 반 제일 뒤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달려간다.


“야, 선생님이 엄마한테 이메일 보낸다잖아. 어떡해? 나 이제 어떡하냐고..! “


이 일에 같이 가담한 친구였는지 그는 쿨하게 대답했다.


“이미 너 거라고 했잖아. 그냥 밀어붙여.”


내 앞에서는 눈 깜빡하지도 않으며 괜찮은 척하더니만 친구 앞에서는 안절부절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얼마나 발을 동동 구르며 교실 뒤에서 왔다 갔다 하던지. 학생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햄릿의 고뇌가, 그의 외침이 교실 앞에 있던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자백하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내심 학생이 나에게 다시 와서 솔직하게 얘기해 주길 바랐지만 D는 친구의 말을 들은 뒤로 자기의 거짓말을 지키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그럼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학생 엄마에게 쓸 이메일 창을 열었다. 하얀 모니터 창에 깜빡이는 검은색 커서를 보니 나도 망설여졌다. 학생 엄마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사실확인을 하면 간단히 끝날 것 같지만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이 학생의 엄마는 학교에서도 알아주는 까다로운 학부모다. 게다가 D의 거짓말로 인해 예전에 크게 곤욕을 치른 적도 있기에 이메일에 쓸 내용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했다.


몇 달 전 성적표를 받던 날, D는 자기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못 미치는 성적에 충격을 받았는지 엄마에게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았다. 2주가 지나도 성적표를 가지고 오지 않자 이상하게 여기던 엄마가 학생을 추궁했고 D는 선생님이 주지 않았다고 거짓말했다. 미스 문이 원래 이런 걸 자주 까먹는다고 했다나. 학생의 엄마는 의심에 여지없이 당연히 그의 말을 믿었고, 곧바로 나에게 화가 활활 타오르는 듯한 이메일을 보내셨다. 폭발하는 화산을 단어로 바꾼다면 이런 문장이지 않을까. 선생으로 일 하면서 이런 이메일은 또 처음 받아봤기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차분한 마음으로 상황 설명을 하니 그제야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여전히 뾰족한 화살 같은 물음으로 나에게 책임을 돌렸다. ‘왜 애 성적이 이 지경이 되도록 가만히 놔두신 거죠?’ (가만히 놔두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었답니다.)


이런 경험이 한번 있다 보니 이메일이 쉬이 써지지 않았다. 태연하게 시치미 떼는 학생의 태도를 보니 아무래도 이 기회에 거짓말하는 버릇을 고쳐놔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자꾸 한 물음이 키보드에 얹혀있는 내 손을 잡았다. 이게 과연 최선의 방법일까? 아이를 코너로 몰아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이메일을 보낸다면 일이 더 커지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물론 학생도 알고 있다. 엄마에게 이메일이 간다면 엄청 혼날 것이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더 큰 거짓말을, 더 화려한 이야기를 꾸며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자백을 하는 자기 모습이 있음을.


이메일을 쓰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학생이 발을 동동 구르며 교실을 배회하는 동안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손을 동동 구르며 내적갈등을 겪었다. 어떡할까. D의 태도가 괘씸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메일 보내기 전에 마지막 기회를 주는 게 옳은 것 같았다.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불러 백지인 이메일 창을 보여주었다.


“자, 이제 선생님이 너희 엄마에게 이메일을 쓸 거야. 이 이메일을 쓰게 되면 아마 저 학생의 엄마와 옆에 반 담임 선생님에게도 이메일을 써서 사건의 진실여부를 따지기 시작해야겠지.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도 이 일을 말해야 되는 건 물론이고. 네가 방금 전에 무슨 얘기를 했든 상관없어. 선생님은 지금 네가 말하는 걸 믿을 거야. Remember, honesty is the best policy. 다시 한번 물을게. 이 인형 정말 너 거야?”


그 말을 듣더니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고백했다.


“아니요. 저번주에 체육관에서 찾았어요.”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D 마음속의 양심이 손을 들어주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고뇌하던 내 마음속의 햄릿도 작은 함성을 내질렀다. 골치 아픈 일 하나가 줄었으니까.


“선생님에게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럼 너희 엄마에게 이메일을 안 써도 되겠네. 이제 이 인형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자.”


그 말을 들은 D도 안심이 되었는지 표정이 환해졌다. 녀석 하고는. 진작 솔직하게 얘기할 것이지, 왜 쓸데없는 거짓말을 해서 마음을 졸였나 모르겠다.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는데 말이다.


고작 일주일만 가지고 있었으면서 벌써 애착인형이 되었는지 D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인형을 건넸다. 그리고선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열심히 그린다. 가서 슬쩍 보니 일주일 동안 자기 것처럼 가지고 있던 인형에게 작별인사 차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원래 자기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슬플까. 인형의 얼굴 밑에 연도까지 써가며 일주일 동안 애착인형에게 작별을 하는 모습을 보니 어찌나 짠해 보이던지. 녀석은 덩치만 컸지 아직도 한없이 어린아이었다. 센 척을 해도 아직도 마음속에는 여린 연둣빛 순수한 새순을 가진 어린아이. 인형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커진 나머지 들킬 게 뻔한 거짓말을 하고 만 거였다.


거짓말의 씨앗을 뽑아버리겠다며 ‘너 말이 맞는지 내 말이 맞는지 한번 해 볼래?’라는 태세를 취할 수도 있었다. 잘못한 행동을 꼬집어 단단히 혼내고 훈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랑 싸워서 뭘 할 것인가.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쳐야 할 존재지 싸워서 이겨야 할 존재가 아니다. 이런 행동은 오히려 아이를 적개심만 심어 줄 뿐이며 아이 안에 있는 반짝이는 초록 새순을 짓밟는 일이다.


아이들은 수많은 실수를 하며 자란다. 우리도 그렇게 자랐다. 학교라는 공간은 그 실수를 스스로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다시 한번 주어진 기회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해주는 게 어른인 우리 몫이 아닐까. 기회만 주어진다면 아이들은 얼마든지 자기 양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한다. 해바라기가 햇빛을 향해 자라듯 아이들 또한 자기 안에 밝은 빛이 있는 쪽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 더 품어주고 기다려주는 일. 더 많은 인내심과 관용이 필요한 일이지만 결국 새순을 자라게 하는 건 따스한 햇빛이다. 최재천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너무 치명적인 거짓말이 아니라면 때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그 아이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마련해 주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 사랑을 할 줄 알게 되듯, 관용을 받고 자란 아이들이 관용을 베푸는 어른이 되니까. 그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만드는 사회를 상상해 본다. 서로의 실수에 무조건 칼부터 들이대지 않는 사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타인을 대할 줄 아는 어른들이 있는 사회.


앞으로 D는 수많은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하면서 살 것이다. 우리가 모두 그렇듯이.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니까.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정직하기로 결심한 경험은 그 아이의 마음에 작은 발자취를 남겼을 것이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양심이라는 나무에 좋은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이 거름은 아이가 살면서 마주하게 될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나무를 더 높고 푸르게 자라게 해 줄 것이라고, 햇빛 나는 쪽으로 아이를 끌어당기길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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