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되고 전화번호를 바꾼 적이 없다. 덕분에 카카오톡이 생긴 후부터는 제자들의 성인이 된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아이들도 나를 친구 추가해두고 간간히 보는 모양이다. 프로필에 내 사진이라도 올려놓으면 가끔 안부 톡이 오곤 했다. 어젯밤 자려고 누웠는데 톡이 와 있는 걸 발견했다. 첫 제자 민희다. 선생님~ 하고 부르는 말 바로 옆 프로필 사진이 예사롭지 않다. 민희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어머, 민희 시집갔나?'
아이들 나이를 헤아려보니 스물여덟쯤 됐겠다. 결혼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내가 저희들을 처음 만났을 때보다 나이가 많다. 깜짝 놀란 마음을 붙들고 재빨리 소식을 물었다. 결혼식 했냐는 내 물음에 온라인 청첩장이 바로 날아왔다. 음악까지 깔린 기다란 청첩장이다. 신랑 될 사람과 활짝 웃는 사진이 서너 장 나와있다. 웃는 모습이 서로 닮았다.
민희가 열두 살 때 담임을 하고 아이들 스무 살이 됐을 무렵 읍내에서 잠깐 만나 차를 마셨었다. 텔레비전에 출연했다는 특별한 추억을 공유했던 우리들이라 쉽게 잊을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고 내가 도시로 옮겨오며 우리는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것 이상은 함께 할 수 없었다.
여전히 순수하고 착한 아이들이라 그나마 함께 한 시간이 어색하지 않았었다. 한 해를 함께 하고 다시 만나는 제자들이 난 늘 어색했다. 그리 진하게 함께 한 추억이 많은 사이여도 그랬다. 우리가 헤어져 지낸 시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다 나누지 못한 채 예전 이야기들만 주르륵 꺼내놓고 웃고 떠들었다. 그때 민희는 말이 많지 않았다. 삼 형제 막내딸이라 철부지였던 민희. 그 애는 어른이 되며 부쩍 성숙해진 게 눈에 보였다.
민희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은 추운 어느 겨울이었다. 민희는 간호사가 되려고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집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 민희는 자취방도 겨우 구했다고 했다. 문제는 그 자취방이 안전하지 않다는 데 있었다. 어느 날 밤. 민희가 아홉 시가 넘은 시간에 내게 톡을 했다.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다. 민희는 누군가 있는 것은 아닌데, 주변이 안전하지 않아서 자기가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시골에 계신 엄마는 걱정하실까 봐, 오빠들은 멀리 살아서 연락하기 어려워 나에게 했다고 했다. 그 집이 그리 무서우면 방을 옮기자 하니 그럴 형편이 안된다며 전화를 끊었다.
네 시간 거리의 그 애의 방에 당장이라도 가고 싶었다. 무섭고 힘들 때 생각난 사람이 나라는 사실에 책임감이 올라왔다. 아이가 그곳을 나와서 살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이라도 우선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했다. 괜찮냐 묻는 내 말에 늘 밝게 웃던 아이. 민희가 어떻게 그 시간을 버티어 냈을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던 내 처지가 아이에게 미안해 제대로 묻지도 못했다.
민희가 어려웠을 때 해 준 게 없는 것 같아 늘 애틋한 마음뿐이었는데. 그 애가 다 자라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사진으로 보니 대견하고 미안한 생각이 컸다.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은 마음을 꺼내 주섬주섬 대화창에 적어 넣었다.
"선생님 톡에 선생님 마음이 한가득 들어 있는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보고 싶어요."
답글을 보고 괜히 눈이 시큰해져 온다. 우리 민희 꼭 행복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