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브티 Dec 14. 2020

전근 가는 날

3년을 보낸 학교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며칠에 걸쳐 짐은 이미 집으로 이미 옮겨둔 상태였고, 아이들에게 주려고 마련했던 선물을 담은 빈 박스만 교실에 남아 있었다.


 교직 경력 중 가장 마음에 든 아이들과의 한 해였었다. 5학년 치고 순수했고, 아이들이 나를 무척이나 잘 따랐다. 아이들과 합이 맞으니 나는 붕붕 떠서 '뭐든 다 해주고파'병에 걸려 사랑을 쏟아부었다. 수업이 끝나도 교실에 아이들이 남아 놀다 갔다. 나와 수학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자청해서 청소를 돕는 아이들도 있었다. 친구랑 다툼이 해결이 안 되는 경우 나를 끼고 이야기를 하다가 오해가 풀리면 집에 가는 경우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느낌은 교사가 되길 잘했다는 충만한 감정으로 이어졌다. 행복했다.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박스를 쓰레기장에 버리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눈에 익숙한 교정을 하나씩 더듬으며 추억을 꺼내 음미했다.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일찍 집에 갈 예정으로 마음이 가벼웠다.


가방을 들고 막 교실문을 잠그려던 참이었다.

복도에 서서 보니 어떤 사람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헉헉대며 달려오고 있었다. 내 쪽에서는 어두운 긴 통로로 보이는 복도라 누군지 실루엣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분의 얼굴보다 그분 손에 들린 꽃다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사한 꽃다발은 급히 뛰어온 주인의 손에 이리저리 흐트러져 있었다.

"선생님!"


꽃다발을 들고 나를 찾아온 사람은 대현이 어머님이셨다.

아이는 참 엉뚱했다. 내가 하는 말을 절반만 듣고, 나머지 절반은 상상력으로 채워 대답을 하곤 했다. 하여 그 애가 하는 대답은 삼천포로 빠진 사람 같았고 더러는 기발했다. 나는 기발한 답에만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아이는 자신감이 상승했고, 그 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어머님은 상담 시에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신 적이 있었다.


" 선생님, 아이가 5학년 되고 마음이 너무 편하다고 해요. 선생님이 무엇을 해도 편하게 해 주셔서 학교 가는 일이 즐겁다고 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대현이 어머님은 나를 불러놓고 한동안 말씀을 못하셨다.

5학년 교실은 5층에 있었다. 5층까지 얼마나 뛰어오셨으면 저렇게 숨도 제대로 못 쉬시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겨우 눌러놓았던 눈물샘이 폭발했다.

아이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때도 꾹 참았던 눈물이었는데, 헉헉대며 꽃다발을 들고 서 계신 학부모님을 보자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만 것이다.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 적응을 잘 못해서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녔었는데 떠날 땐 아이들과 학부모님들께 소중한 사랑을 받고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정이 더 격해졌다.

아무 말 없이 엉엉 우는 나를 대현이 어머님이 안아주셨다. 나는 대현이 어머님의 품 속에서 실컷 울었다.


"선생님 가셨을까 봐 집에서부터 뛰어왔어요. 선생님 가시는 것 보려고 왔는데 얼굴 보고 가게 돼 다행이에요."

땀을 닦으시며 내게 꽃다발을 안겨주시는 어머님.


"선생님과 아이들이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학부모인 저희가 봐도 애틋해 보였어요. 아이들 많이 사랑해주셔서 고마웠어요. 학교 옮기셔도 잘하실 거예요. 저희 엉뚱했던 아들도 기억해주세요."

환하게 웃으시던 어머님의 얼굴이 여전히 생생하다.


몇 년에 한 번씩 학교를 옮겨야 하는 나는 있던 학교에서 떠나는 일이 항상 아쉽다. 또 새 학교에서 적응해야 할 일이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 끝과 시작을 함께 해주셨던 대현이 어머님.

그분은 내년에 또 새로운 학교로 가야 하는 나에게 부적처럼 꺼내 품을 수 있는 따스한 기억까지 선물해주셨다는 것을 알고 계실까?



 

작가의 이전글 제가 잘 못 가르쳤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