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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Jan 11. 2021

결함 있는 눈

선생님이 처음 오신 날. 

나는 기대에 차 있었다. 학년 부장을 하며 코로나 전쟁터에 서서 밀려오는 업무를 해치우고 있을 때였다. 제발 나의 일을 조금이라도 나눠질 수 있는 기간제 선생님이 오시기를 바랐다. 기간제 선생님은 퇴직한 선배님이라고 들었다. 이 시국에 기간제를 기꺼이 맡아서 해주신다는 분이 나선 것만으로도 교장 선생님은 감지덕지라고 하셨다. 선생님 힘드시지 않게 잘 모시라는 말까지 들은 터다. 그래도 기대를 했다.


등교 수업 전 날.

우리 교실로 들어오신 선생님은 무척 마른 체구에 채도가 낮은 회색 원피스를 입고 계셨다. 평범한 오십 대 중반의 선배님이셨다. 특이한 점이라면 선생님의 눈빛이 텅 비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연신 말을 거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셨다. 대화하는 내내 선생님의 눈빛은 내게서 살짝 비껴 나 있었다. 눈 맞춤이 되지 않는 대화를 하며 나는 불안했다. 


'어디 편찮으셔서 퇴직하셨던 것일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실망스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이 분과 업무를 나눠 하기는 글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날 퇴근 후 남편에게 

"올해 업무는 독박이야. 정말 큰일 났어. 이제 어쩌냐." 라며 한참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다음 날부터 전투적인 자세로 출근을 했다. 등 뒤를 맡길 사람이 없다. 혼자 모든 걸 해내야 한다!


하지만, 첫 학년 티타임 때 선생님은 

"머리 쓰는 일을 부장님이 해주시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제가 뭐든 도와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뭐든 도와주시겠다고 말을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어머나, 그런데 정말로!


선배님은 무엇이든 도와주셨다. 

심지어 내가 부탁하지 않은 일까지 미리 손을 대 말끔히 정리해주셨다. 선생님의 오랜 경험에서 오는 풍부한 조언은 부족한 내 시야를 넓혀주었다.


한 달이 지나고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나 올해 천사를 만난 것 같아."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가 너무 따뜻하고 즐거워서 선생님 생각을 하면 행복하다.

텅 비어있는 것 같던 눈빛은 이제는 달리 보인다.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시는 자애로운 선생님의 성품과 꼭 닮은 은은한 빛으로 보인다.


그리고, 선생님은 이제 나를  똑바로 보고 웃어주신다.


계약 연장을 해야 하는 시간.

그만두신다고 하실까 봐 살짝 긴장했지만 우리 선생님은 기꺼이 빠져나가실 수 있는 이 코로나 전쟁터에서 나와 함께 해주시겠다며 내 손을 잡아주셨다.


문득 예전에 선생님을 판단하던 오만한 내 모습이 보인다.

나는 선생님을 쓸 만한 무기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 병사를 대하는 듯하다.

그녀는 처음부터 완벽했는데 말이다.


요즘엔 웹 수업에 필요한 각종 기능을 장착하고, 여러 플랫폼에서 자유자재로 활약하는 교사가 제일 능력 있는 교사다. 헉헉대며 따라가고 있지만 새로운 툴 용어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나는 늘 패배자 같은 느낌이다.


원격 수업에 필요한 능력은 부족하더라도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에게 사람들은 관심이 있을까? 웹카메라 너머에 있는 아이들을 매만져주며  "원격 수업하고 있는 지금 네 마음은 어떠니?"라고 물어주는 선생님들에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선생님들은 자신이 학교에서 별로 쓸모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부터라도 그런 생각하지 않아야지.

이렇게 훌륭한 선생님이 옆에 계시다는 것도 잊지 않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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