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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Apr 15. 2021

이제는 담담하게

학교를 옮기고야 쓸 수 있는 이야기

한 학교에서 몇 년 근무하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 근무 후반부에는 나름 잘 통하는 학급경영 기술이나 조금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자신감 갖고 생활할 수 있게 된다. 처음과 두 번째 해에 열심히 했던 나의 노력에 대한 소문은 규모가 제법 큰 아파트 단지 두 개에 퍼져 내 귀에 다시 들어왔다. 박한 평가는 아니었으므로 세 번째 해에는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새 학년을 시작했다.     


개학식 날 여자 아이가 전학을 왔다.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표정도 어른스러웠다. 정신없던 첫날. 자기소개를 시켜보니 또박또박 잘 해낸다. 아이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은 이미 아이를 알고 있던 동료들의 말을 들은 후부터였다. 아이는 지난 학기에 전학을 갔다가 학년이 바뀌자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딱히 나쁜 아이는 아니었지만 아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의 집착이 심해서 태풍의 눈 같은 아이라는 말을 했다. '그 애를 조심해야 해'라는 말이 주는 학기초의 위압감은 나를 긴장시켰다. 꽤 많이 그런 말을 듣고도 의외로 잘 지낸 학생들의 수가 많았는데 번번이 불안의 늪에 빠져들었던 나.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보니 아이가 잘 웃지 않는 것도 안 좋게 보이고 단짝 하고만 붙어있는 것도 안 좋게 보였다.     


바로 전 해 여자애들끼리 너무 밀착되어 있어 무리 지어 다니며 속 썩였던 터라 나도 꽤 예민하게 반응했다. 짝을 바꾸는 데 친한 친구들끼리 앉혀주지 않을 거라고 매섭게 말을 한 것이다. 그 말은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단짝이랑 한 반이 되어 기뻤던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다. 아이 엄마는 그 날 바로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상담 때 나눴던 친밀함은 이미 사라졌다. 나는 아이에 대해 걱정되는 점을 말했고, 엄마는 내게 과하다 했다. 우리 반 학생들이 나에 대해 뭐라 하는 줄 아냐며 선생님 참 나쁘다 했다. 나는 짝을 바꾸는 문제는 교사 권한이며, 혹여 내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이와 맞춰가는 과정이니 좀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의 말투가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면 그건 유감이다. 앞으로 주의하겠다 하고 끊었다.   

 

 아이는 다음날 학교에 와서 나를 보고 말했다. “우리 엄마가 이제 친한 친구랑 앉아도 될 거라고 했는데요?” 예의를 갖춰 말하긴 했지만 어머니와 나는 서로 자기 말만 하다가 끊었다. 그쪽의 결론은 저런 거였나 보다.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그 후로도 나의 지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홱 토라져 울거나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려들지 않았다. 친구들과 생긴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도 보기와는 다르게 거칠었다. 카톡 안에서 친구 하나를 힘들게 해서 데려다 상담한 적이 있었는데 카톡을 통해 본 아이는 고학년 아이들이 상대방을 누를 때 가차 없이 말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말 끝에 너 이런 식으로 하면 우리 엄마한테 다 일러서 가만 안 둘 거다. 학교도 못 다니게 할 거다.라는 말이 있었다.     


나 역시 그 ‘엄마’가 무서워 아이를 지도하기 힘들었다. 겉으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했지만 엄마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일러다 바치는 그 애의 눈이 싫었다. 엄마는 그 후로도 몇 번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예의는 갖추지만 할 말은 다했다. 교사에 대한 신뢰가 없어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운동회 날이 되었다. 학년에 학부모님이 딱 두 분 오셨는데 그 분과 우리 반 다른 학부모님이 오셨다. 둘은 평소 언니 동생 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학년 체육대회라 같은 반에서 청, 백을 나누어야 했는데 운동 능력순으로 가르다 보니 그 애는 친한 친구들과 한 팀이 되지 못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론 그랬다. 아이 엄마는 그 일로 폭발했다. 그 날 오후 함께 있었던 다른 학부모님이 내게 전화를 주셨다. 그 아이 엄마가 너무 선생님 욕을 해서 좀 알려드리려고 전화했다고 했다. 자신은 가족들이 우리 학교에 자녀를 많이 보내고 있어서 나의 미덕을 많이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러 나쁘게 대하신 건 아닐 거다.라고 만류해보았으나 그 아이 엄마는 그런 게 무슨 소용이냐며 자기 딸한테 이렇게 모질게 군 것 용서할 수가 없다고 했단다.    


“마음이 힘드셔서 어쩌나요, 제가 더 잘해야겠습니다.”    


 하고 끊었지만 손이 다 떨렸다. 전화로 그 말을 전해주는 학부모님의 저의도 의심이 갔다. 그럭저럭 대부분의 학생과 학부모님들과는 소통하며 잘 지냈지만 나를 싫어하는 두 분의 학부모는 가슴에 박혀 학급을 운영하는 1년 내내 괴롭혔다. 


10월이 되어 교원평가의 날. 최근 몇 년 동안 꽤 높은 점수를 받아왔었지만, 그 해에는 걱정이 되었었다. 분명히 좋은 말이 안 나올 걸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선생님들은 교원평가서 자체를 열어보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최소한의 존중도 없이 함부로 말하는 평가를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렇다. 결과가 발표되는 날. 나는 심호흡을 하고 평가 창을 띄웠다.  

  

 ‘선생님의 저희 아이에 대한 편애와 잘못된 대우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편애로 인해 선생님한테 왕따 당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빨리 학년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대화가 불가능해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저로서는 분통이 터집니다. 제일 바라는 게 있다면 남은 시간에는 불공평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만을 버리시고 맡은 학년에 맞는 눈높이로 똑같이 학생을 대해주세요. 다시는 이런 선생님을 만나지 않길 기도합니다. “     


라고 쓰여있었다. 선생님을 하며 이런 혹평은 처음이었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어지러웠다. 그분을 제외한 모든 분의 찬사는 연기처럼 날아갔다. 마음이 잘 통하는 선생님들에게 털어놓아봤지만 다들 딱히 별말을 해주지 못했다. 그 애를 보듬지 못한 1년은 이렇게 끝이나 버렸다.    

 

그래서, 그 애 엄마가 나더러 나쁜 교사라고 하면 내가 나쁜 교사가 되는 것인가. 나는 나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 애가 편하지 않아 마음껏 예뻐해주지 못했다. 그걸 편애라고 한다면 나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잠도 잘 못 자고 고민하다 상담실을 찾았다. 올해는 끝이 났지만, 나는 앞으로 이런 부모님을 만나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듣더니 아이의 가정환경과 학교에서의 행동 등을 자세히 물어보셨다.     


”이런 어머님을 한 번 만나면 받지 않아도 되는 상처들을 받고 반성은 늘 나만 하는 것 같아요. 괜찮다고 생각해도 속상한 선생님 마음은 괜찮아질까 싶어요. 그러나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건 선생님의 문제가 아니라 어머니와 학생의 문제인 것 같아요. 특히나 한 단면을 가지고 담임을 평가한다는 것은 그 어머님의 성숙하지 못한 태도로 보입니다. 설령 딸이 푸념을 하여 가정에서는 같이 욕을 해주더라도 학교에 연락해서 어머니가 해결하려는 것은 분명 학생이 건강하게 자라는 데 방해가 될 거예요. 어머니가 선생님께 하는 대화 패턴이 아마도 가정에서 딸과 어머니의 대화 패턴일 수도 있어요. 그 학생이 갈등 상황에서 회피하여 엄마 뒤에 숨어서 엄마를 조정하고 엄마로 하여금 갈등을 해결해달라고 하는 듯 보여요. 엄마를 모델로 관계를 맺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리더 격이지만 혼자서는 선생님께 오지도 못하고 눈치 보고 건강한 리더십은 아니에요. 건강하게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아요. 소통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어쩌면 집에서 엄마에게 눌렸던 것을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엄마가 했던 것처럼 행동하면서 풀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     


내 잘못인 것만 같아 똑바로 보려들지 않았던 아이와 어머니의 관계가 그제야 조금 보였다. 선생님은 이어 말씀하셨다.     


"이런 학부모 응대의 요령은 거리두기입니다.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어머니의 해결 방식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잘못의 원인을 돌리려고 하는데 이번에 선생님께서 걸리신 것입니다. 분명 다른 어머니들도 선생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 어머니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돌릴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어머니를 만나게 되면 이것은 나의 부족함이나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이 어머니의 문제 해결방법이다 라고 인식하세요. "    


그리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힘내라고 하셨다. 상담 선생님의 말씀은 감옥 속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죄수가 유능한 변호사를 만나 최후변론 끝에 집행유예로 선처받은 심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죄인이 아니다. 어머니의 요구에 부합하는 교육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가차 없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내게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 소통을 하지 못해 오해를 풀 수 없었지만 그 또한 한계가 있었다. 노력했음에도 어쩔 수 없을 때는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는 정말 인정하고 내려놓아야 했다. 그렇게 나는 또 교사가 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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