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제4절(1/2) 사고 자아의 위탁

1. 사고 구성 vs 사고 선택, 2. 신경학적 기반: DMN의 역할

by 사유의 풍경
생각은 내가 시작한 것인가?

2024년 어느 날, 한 대학생이 리포트를 쓰고 있다.

학생: ChatGPT에게 질문을 입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설명해 줘"

ChatGPT: 3초 만에 잘 정리된 답변을 제시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 서구 사회에서..."

학생: 답변을 읽으며 생각한다.
"오, 이거 괜찮은데?
근대성의 해체... 상대주의... 맞아, 이런 내용을 쓰려고 했어.
조금만 수정해서 내 리포트에 넣자."

학생: 문장을 약간 바꿔서 리포트에 붙여 넣는다.

리포트를 제출하고 나서, 학생은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이 리포트는 내가 쓴 건가, ChatGPT가 쓴 건가?"
"아니, 더 정확히는... 이 '생각'들은 내 것인가?"



2.4.1. 사고 구성 vs 사고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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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고츠키: 사고는 내면화된 언어

러시아 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Lev Vygotsky)는 『사고와 언어』(Thought and Language, 1934)에서 혁명적인 주장을 했다:

"사고는 언어가 내면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먼저 타인과 대화하고, 그 대화가 점차 내면으로 들어와 '내적 언어'가 되며, 이것이 사고를 구성한다."

비고츠키의 발달 단계:

1단계 (유아기): 외적 언어
- 소리 내어 말하기
- 타인과의 대화

2단계 (아동기): 자기중심적 언어
- 혼잣말하기
- 행동을 언어로 안내하기

3단계 (성인기): 내적 언어
- 소리 내지 않고 생각하기
- 언어가 사고로 완전히 내면화됨

핵심: 사고는 외부에서 주어진 문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내면화하며 스스로 구성하는 것이다.



(2) 후설: 사고는 지향적 구성 행위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은 『논리 연구』(Logical Investigations, 1900-1901)에서 사고의 본질을 "지향성"으로 설명했다.


지향성(Intentionality)이란?

의식은 항상 "무언가를 향해" 있다

사고는 대상을 "의미 부여하며" 구성하는 능동적 행위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나아가는 것


예를 들어:

"나무를 본다"는 것은:
1. 눈으로 나무 이미지를 받아들이고 (수동적)
2. 그것을 "나무"로 의미 부여하며 (능동적)
3. "저 나무는 참 아름답다"라고 판단하는 것 (구성적)

사고도 마찬가지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1.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을 향해 의식을 돌리고
2. 그것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3. 내 관점에서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

후설에게 사고는 "내가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다.



(3) AI 시대: 사고는 제안된 옵션 중 선택


그런데 생성형 AI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의 사고 과정 (AI 이전)

질문: "포스트모더니즘이 뭐지?"

(내면적 사고 과정 - 약 10-30분)
- 책에서 읽은 내용 떠올리기
- 교수님 강의 내용 기억하기
- 내 나름대로 이해한 점 정리하기
- 예시 생각해 보기
- 문장으로 구성하기

결과: "내가 이해한" 포스트모더니즘


현재의 사고 과정 (AI 시대)

질문: "포스트모더니즘이 뭐지?"

ChatGPT에게 질문

(3초 후)
AI의 완성된 답변 제시

"아, 맞아. 이런 거지."

결과: "AI가 정리한" 포스트모더니즘 (나는 선택만 함)


차이는 명확하다:

과거: 사고를 구성함

현재: 사고를 선택함


비고츠키와 후설의 관점에서 보면, 후자는 진정한 의미의 "사고"가 아니다. 왜냐하면:

내면화 과정이 없다 (비고츠키)

지향적 구성 행위가 없다 (후설)

단지 외부에서 제공된 문장을 수용했을 뿐



2.4.2. 신경학적 기반: DMN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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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efault Mode Network (DMN)


자기 주도적 사고는 뇌의 특정 네트워크에 의존한다. 이를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라고 부른다.


DMN의 주요 영역들


후측 대상피질 (Posterior Cingulate Cortex, PCC)

역할: 자전적 기억, 자기 관련 정보 처리

기능: "과거 경험과 연결해서 생각하기"

예: "작년에 읽은 책 내용이 이것과 관련 있을까?"


복내측 전전두피질 (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 vmPFC)

역할: 판단의 가치 평가, 의미 부여

기능: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예: "이 개념이 내 전공과 어떻게 연결될까?"


각이랑 (Angular Gyrus, AG)

역할: 개념 간 연결, 의미 통합

기능: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어떻게 연결할까?"

예: "A 이론과 B 이론이 어떻게 관련될까?"


이 세 영역이 협력할 때, 우리는:

자발적으로 생각을 전개하고

과거 경험과 새로운 정보를 연결하며

독창적인 통찰을 얻고

"이것은 내 생각이다"라는 메타인지적 확신을 갖는다⁷



(2) DMN 활성화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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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N이 활성화되려면 특정 조건이 필요하다:


조건 1: 외부 자극이 없는 시간

DMN은 외부 과제에 집중할 때는 억제된다

멍하니 있거나, 산책하거나, 샤워하는 등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에 활성화된다

이때 창의적 통찰, 자기반성, 미래 계획 등이 일어난다


조건 2: 충분한 시간적 여유

DMN 기반 사고는 빠르게 일어나지 않는다

10분, 20분, 때로는 몇 시간의 숙고 시간이 필요하다

"천천히 생각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조건 3: 인지적 노력

수동적 정보 수용이 아닌 능동적 사고 구성

"이해하려는 노력", "연결하려는 시도"가 필요

어려움과 혼란을 견디는 과정



(3) AI 시대의 DMN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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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는 위의 세 조건을 모두 제거한다:


조건 1 제거: 끊임없는 외부 자극

과거: 질문 → (침묵, 멍함, 생각의 여유) → 답
현재: 질문 → (3초) → AI 답변 즉시 제공

DMN이 활성화될 틈이 없다.


조건 2 제거: 즉각적 답변

과거: 며칠간 고민하다가 통찰 얻음
현재: 즉시 답을 얻으니 고민할 필요 없음

"천천히 생각할 이유"가 사라진다.


조건 3 제거: 인지적 노력 불필요

과거: 어렵고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과정
현재: AI가 이미 잘 정리해서 제공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생략된다.


결과

DMN 회로는 점점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신경과학의 기본 원리 "use it or lose it"(사용하지 않으면 잃는다)에 따라, 이 회로는 점차 약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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