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살바토레를 찾아서 프롤로그

움베르트 에코, 장미의 이름, 살바토레, 광인, 광기의 역사

by 사유의 풍경

프롤로그

내 이름은 살바토레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처음 펼쳤을 때, 가장 기이하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으로 다가온 인물은 단연 살바토레였다. 그는 소설 속에서 여러 언어를 뒤섞어 알아듣기 힘든 말을 내뱉고, 기이한 행동으로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그야말로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그때는 왜 내가 이 괴짜 같은 인물에게 마음이 끌렸는지 알 수 없었다.


1. 직장에서 영어이름 짓기


장미의 이름을 읽기 전 일이다. 회사에서 다소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자는 취지로 각자 영어 이름을 사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어떤 이름을 쓸까 고민하던 중, 문득 '살바토레'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특별한 이유 없이 '쌀바또레'라는 어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명품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호기심에 어원을 찾아보니 '세이비어(Savior)', 즉 '구원자'라는 뜻이었다. 심지어 나라 이름 '엘살바도르'에도 사용되는 단어였다. 이름의 무게가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왕이면 내가 회사의 분위기를 구원하는 역할을 해보자!'라는 다소 장난스러운 생각으로 '살바토레'를 내 이름으로 정했다.


'살바토레'라는 이름을 공표하자마자 대표님께서는 전체 메일을 통해 우스갯소리로 물으셨다.

자네, 명품 좋아하나?

나는 웃으며 이렇게 회신했다.

명품 자체보다는
명품 서비스를 좋아합니다.
앞으로 저만의 명품 서비스 정신으로,
상위 1%에게 걸맞은 수준의
업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내가 특별히 권한 것도 아닌데, 이후 우리 팀 직원들은 신기하게도 하나같이 모리꼬네, 빈센쪼 같은 이탈리아식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다른 팀에서는 "영어 이름 지으랬더니 웬 이탈리아 이름이냐?", "네 글자 이름은 부르기도 불편하다"는 핀잔도 들려왔다. 하지만 우리 팀은 꿋꿋하게 이탈리아식 이름을 고수했고, 급기야 한 임원분은 웃으며 이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자네 팀은 무슨
이탈리아 마피아 집단인가?

그렇게 '살바토레'는 자연스럽게 나의 이름이 되었다.


2. 살바토레의 언어

2.1 바벨의 언어


장미의 이름에서 살바토레는 여러 가지 언어를 조합해서 기이한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한 부분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Penitenziagite (회개하라)! 그대의 anima (영혼)를 쏠기 위해 용이 이 땅에 내릴 터인즉! 죽음은 super nos (우리 위에) 있으니 어이할꼬. 오시어서 nos a malo (우리를 악으로 부 터) 그리고 죄로부터 구하시도록 santo pater (거룩한 아버 지)께 기도하라! 하하, 그대는 Domini Nostri lesu Christi(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negromanzia (강신술)를 좋아하는구나. 그러니까 기쁨도 고통이고 쾌락도 고통이지. Cave el diabolo(악마를 조심할 일이다)! 악마는 숨어서 기다리다가 뒤꿈치를 무는 법이다! 살바토레는 stupidus (미치광이)가 아니다. Bonum monasterium (좋은 수도원)이며 aqui refectorium(여기는 식당)이니 dominum nostrum(우리 주님)께 기도할 일이다.

*강신술(降神術): 죽은 자의 영혼이나 신령한 존재를 소환하여 교류하거나 정보를 얻으려는 행위

위 표현에는 라틴 속어, 프로방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카탈로니아어가 뒤섞여 있다. 에코는 주인공 윌리엄 수도사의 꼬붕 아드소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요컨대 나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위의 기록(기억에 의존한)에서 그 말투의 족보가 어떠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뒷날,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면서 산 여러 나라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살바토레가 모든 나라 말을 하는데도 그 말은 어느 나라의 말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어쩌면 그는 나름대로 자신이 접한 언어들의 기본 뼈대를 이용해 자신만의 말을 하나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이거야말로 창세 적부터 바벨탑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두루 쓴 아담 시대의 언어, 혹은 언어의 사 분오열 뒤에 생긴 방언이 아니라 하느님의 응징이 떨어진 바로 그다음 날의 바벨 언어, 즉 원시적인 혼란의 언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살바토레의 수작을 언어라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언어에는 규칙이 있으며 모든 용어는 합의된 불변하는 법칙에 따라 사물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지는 아드소의 독백은 사실 에코의 기호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아드소의 입을 빌어 에코는 기호학 강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약속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한때 <개>라고 부르던 놈을 <고양이>라고 부르는 일은 없고, 사람들이 더불어 그 뜻을 정의하지 않은 불분명한 소리를 내는 일도 없다. 그렇기는 하나 나는 이리저리 꿰어 맞추어 살바토레가 한 말을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던 것으로 안다.

사실로 미루어 짐작건대, 그는 한 가지 언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서도 여기에서 한 단어, 저기에서 한 문장씩 취하는, 이를테면 만국어를 하는 셈이었다.

뒤에 나는 그가 처음에는 라틴어로 지칭하던 것을 다른 때는 프로방스어로 지칭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자신의 문장을 만들어 내기보다는 다른 문장의 흩뿌려진 파편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현재 상태와 자신이 말하고 싶은 내용에 따라 언제 어디에서 들었던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곤 했다.

예컨대 음식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함께 그 음식을 먹으면서 사람들이 하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자기도 몹시 흥겨웠다고 생각되던 자리에서 사람들이 떠들어 대던 문장을 인용함으로써 자기 흥겨움을 나타내는 식이었다.

그의 말은, 이 사람 저 사람의 얼굴에서 한 부분씩 떼어다 맞춘 것 같다는 의미에서 그의 얼굴과 흡사했다. 어떻게 보면 부서진 성물의 파편을 모아 만든 물건들로 채워진, 소중한 성보 상자 같기도 했다 [si licet magnis componere parva(위대 한 것을 비속한 것에다 견주는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다 면) 천상적인 것을 악마적인 것에 견주는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처음 만난 순간의 살바토레는, 외모로 보나 말하는 투로 보나 교회 정문의 인각에서 보았던 잡종적인 괴물 무리와 다르지 않았다. 훗날 나는 그 역시 착하고 다소 익살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아니다. 이야기를 너무 앞질러하지 말아야겠다. 각설하고,

2.2 나의 언어


돌이켜보면, 살바토레에게 느꼈던 묘한 동질감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나 역시 유별나게 여러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길어지던 시절, 평소 호기심을 가졌던 언어들을 하나씩 파고들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어(헬라어)는 매일 꾸준히 공부했고, 아랍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산스크리트어, 히브리어, 심지어 이집트 상형문자까지. 사전과 강의를 찾아보며 다소 두서없이 여러 언어를 넘나들었다.


이상하게도 지금은 쓰이지 않는 고대어나 사어(死語)에 더 마음이 끌렸다. 라틴어도 책과 강의를 통해 도전했지만, 영어와 비슷해서 흥미를 느끼지 못해 금방 그만뒀다. 반면 이집트 상형문자는 흥미진진해서, 나중에 소설 같은 창작 활동에 활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살바토레'의 어원이 산스크리트어 '시바(शिवः Shiva)'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는 가설이었다. 내가 가진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에서 '시바'는 "자비로운, 호의적인, 친절한, 다정한, 행복한, 운 좋은, 복지, 자유, 해방" 등 여러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시바'는 인도 신화 속 '시바신', 즉 파괴와 재창조를 관장하는 신을 의미하기도 했다.

어원학, 철학적으로 정리한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M. Monier Williams, 2015) 발췌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살바토레라는 이름에 이런 심오한 뜻이 숨어있었다니! 내 이름에 대한 애착이 더욱 커졌다. 어쩌면 내 안에도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롭게 만들어내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꿈틀대고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 생각은 내 이름 '살바토레'와 『장미의 이름』 속 살바토레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여러 언어를 넘나들다 보니, 가끔 나도 모르게 살바토레처럼 여러 언어가 뒤죽박죽 섞여 나올 때가 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가 있었고, 아이들과 아내는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아빠, 지금 무슨 말하는 거예요?


아내는 진심으로 걱정하며 물었다.

아니, 쓸데도 없는 이집트 상형문자는
도대체 왜 배우는 거예요?
제발 현실적으로 도움 되는 공부를 좀 해요.
차라리 영어를 더 하든지!


아내는 도무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 안의 언어에 대한 탐구심과 창조적 욕구 현실적인 '쓸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3. 미셀 푸코의 『광기의 역사』

나의 광인의 경험


3.1 학창 시절


그렇게 살바토레와의 기묘한 인연은 시작되었다. 내게 『장미의 이름』 속 살바토레는 점점 더 많은 의미로 다가왔다. 그러던 중 철학 공부를 하며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게 되었는데, 책 제목을 보자마자 『장미의 이름』 속 살바토레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광기(狂氣)
우리식 표현으로는 '또라이' 혹은 '괴짜'

생각해 보니 학창 시절 나 역시 종종 엉뚱하거나 기이한 행동을 하곤 했다. 어떤 친구는 그런 나를 보고 '도가 텄다'거나 '도틴 놈'이라며 나름 긍정적으로(?) 표현해 주기도 했다. 어쩌면 내 안에도 남들이 보기엔 이해하기 힘든, 숨겨진 '광기'의 편린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살바토레와의 정신적 유대감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그와 닮은 어떤 광기가 내재되어 있었던 걸까?


3.2 직장생활


'광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20여 년 전 첫 직장생활 시절의 기억 하나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 회사 근처에는 소위 '광인'으로 불리는 두 분이 있었다. 한 분은 사고로 남편을 잃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으신 아주머니였고, 다른 한 분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역시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셨다.


두 분 모두 회사 근처에서는 유명 인사였다. 길 가는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험한 말을 내뱉는 일이 잦았다. 나 역시 그분들에게 봉변을 당한 적이 있는데, 그때 '광기'라 불리는 상태의 단면을 얼핏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흥미롭게도, 어느 날 그 두 분이 회사 앞에서 크게 다투는 사건이 벌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숨죽이고 지켜보며 궁금해했다. '과연 어느 쪽의 광기가 더 강렬할까? 비극적 슬픔에 잠긴 아주머니일까, 아니면 세상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일까?' 결과적으로는 시각장애인 분의 기세가 더 강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조건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던 걸까? 그 장면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3.3 '살바토레'의 서곡


자, 이제 사적인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살바토레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애착은 충분히 드러낸 듯하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장미의 이름』 속 살바토레라는 인물 그 자체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왜 살바토레를 이 소설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설정했을까? 그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이며,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의미는 없을까?


에코가 제시한 '귀추법(abduction)'의 4단계를 길잡이 삼아, 살바토레라는 인물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해체해 보려 한다. 이 흥미로운 탐구에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에코의 4단계 귀추법에 대해서는 아래 글 참조.


[표지 사진: 테오도르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의 시기에 사로잡힌 여인(Monomaniac of Envy, 1822)(좌),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자화상(1912), 출처: wiki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