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쓸모

실용적이지 않으면 뭐 어때

by 웬디

둘째가 1학년 들어갈 무렵 뭘 배우고 싶은지 물었더니 보컬이라고 했다. 그게 뭔지나 알았을까. 그래도 배움에의 첫 호기심을 꺾고 싶지 않아서 그길로 보컬 학원을 알아봤고 아이는 보컬학원에서 인생 첫 사교육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던 이유는 배움이 즐겁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서였다.


아기가 태어나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했다가 하나 둘 욕심이 붙는다더니, 나도 그만 초심을 잃었나보다. 누가 지나가는 말로 어린이 합창단 오디션 한번 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했는데, 그 말에 혹해서 둘째를 며칠 설득했다. 어느 날 둘째와의 작은 실랑이 끝에 내가 말했다.


둘째야, 부끄럽다고 누구 보여주지도 않는데 보컬은 대체 왜 배우는 거니?


아이의 노래는 연습실 안에서 보컬 선생님만 들을 수 있었다. 집에서도 철통 보안이고, 학교나 교회의 장기 자랑 비슷한 곳에서도 절대 공개할 수 없단다. 부끄럼쟁이 엄마가 키워서 그런지 아이는 어엿한 부끄럼쟁이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나도 그러면서 아이가 그러는 게 아쉬운 건 또 무슨 심보람. 2년 가까이 보낸 학원비 본전이 생각났던 것도 같고, 아웃풋 없는 배움이 실용적이지 않게 느껴진 것도 같다. 이만큼의 돈과 시간과 정성을 들여 다녔다면 이 정도는 해야 된다는 생각, 이쯤 되었다면 아깝지 않을 만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느 새 내 안에 찰랑이고 있었다. 그 생각의 결과로 태어난 차가운 말을 내뱉으면서야 자각했다. 그 말이 딛고 서있던 내 생각을.


늦었지만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다.


실용적이지 않으면 뭐 어때. 쉬라고 해도 기어이 가고 싶은 학원 하나쯤 있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야. 누구에게 들려주지 않아도 되는 대나무숲 하나 가지고 있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야. 수줍은 네가 수줍음을 벗고 소리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야.


이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이 되어 차고 차고 또 차오르면 언젠간 이 생각이 낳은 새로운 말이 널 향해 가는 날이 오겠지. 그 말은 따스했으면 좋겠다. 그 말이 너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고, 너를 마음 놓고 너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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