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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웬디 Jul 17. 2024

케바케(case by case)

냉장고를 바꾸며 알게 된 다름과 행복에 관하여

냉장고를 줄이려고 할 때 모두가 날 말렸다. 냉장고는 거거익선-클수록 좋은 거라고 했다. 공간이 남으면 쌀이라도 보관하는 거라고 했다. 쓰던 것보다 작은 걸로 바꾸면 바로 후회할 거라고.


돌아보면 우리 집 냉장고는 10년 동안 창고였다. 냉창고. 나오는 것은 별로 없고 들어가기만 했다. 들어갈 땐 분명 음식이었던 것이 쓰레기가 되어서야 나오기 일쑤였다. 요리를 잘 못하는 나는 자주 배달음식을 이용했고 때때로 반찬가게를 이용했는데, 요리를 잘 못하는 나를 위해 엄마와 어머님은 반찬을 해다 주셨다. 그런데 반찬이 없을 땐 내내 없다가 내가 반찬을 잔뜩 사다놓으면 그 날이나 그 이튿날 가져다주실 때가 많았다. 어느 땐가는 내가 미역국을 산 다음 날 엄마랑 어머님이 각각 미역국을 끓여다주신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또 냉장고는 음식으로 꽉 차곤 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며칠 배달이라도 시켜먹을라 치면 그 감사한 음식들은 냉'창고'에 한참 머물다 버려지고 마는 것이다. 내가 달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겪어야 하는 죄책감이 나는 부담스러웠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정을 내렸다. 원래 사이즈보다 반을 줄였다. 내 라이프 스타일에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니 며칠인가 후에 연락이 왔다. 담당자는 이 용량의 냉장고를 주문한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맞다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배송기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기존 냉장고 용량과 새 냉장고 용량을 차례로 언급하시며 맞는지 확인했다. 이번에도 맞다고 했다. 이런 비합리적인 소비자가 걱정이 되었는지 괜찮으시겠냐고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다. 엄청난 확신은 없었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이미 그 시점에 무를 순 없었을테니.


냉장고가 있던 자리에 냉장고가 서있는데, 휑했다. 가로폭도, 깊이도, 키도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실망스러웠냐고? 아니. 키가 작은 나에게 너무 딱이다 싶었다. 까치발하지 않고도 냉장고의 지붕(?)에 손이 닿았고, 고개를 잔뜩 꺾어 손만 깊숙이 들이밀어 안쪽 깊숙한 곳의 그릇을 꺼내는 곡예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이 깊이도 얕았다. 문을 열면 보이는 게 다인 아담함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렇게 1년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세상사 케바케. 내가 들었던 주변의 우려가 무색하게 나는 너무 좋았다. 진작 바꿀걸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들었다. 아니, 처음부터 샀더라면 좋았을 것을. 신혼집 좁은 주방에 냉장고만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그 때는 이렇게 작은 냉장고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모든 냉장고가 양문형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나는 꽤 불안이 높은 사람이다. 대학원 공부를 하며 점점 알게 되었는데, 그래서 나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이 있다. 직업적으로도 그랬던 것 같다. 나 자신은 그래도 어찌저찌 통제할 수 있는 축에 속하지만, 스물 몇 명 단위인 학급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했던 것 같다. 혹시 누가 다치면 어떡하지, 나도 모르는 새 아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닐지, 내 말과 행동이 이 어린 아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등등.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 세계를 포함하여 세상의 많은 부분은 통제 불가능의 영역이기에 나에겐 통제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집안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실행했던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친한 친구가 내게 인테리어 구현을 위한 나의 적극성에 깜짝 놀랐다는 말을 했더랬다. 나는 평소 그리 적극성을 띄는 성격이 아니기에.) 가구를 옮기고 커텐과 러그를 교체하면서 나는 나의 환경을 통제할 수 있었고 그것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게 아닐까.


같은 의미로 내가 파악하지 못하는 지의 세계가 우리 집 한 켠에 서있다는 것은 나에게 불안 요소였을 것이다. 꽤 긴 간격을 두고 그 안에 들어간 음식이나 식재료는 쉽게 잊혀졌다. 내가 넣기는 했으나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다 파악할 수 없는 공간. 그 앞에 서서 요이 땡 하는 불안을 느낀 적은 없었지만 돌아보면 마음 한켠의 불편감은 있었던 것 같다. 냉장고에 관해서는 잘 사용해야지,가 아니라 언제 정리하고 청소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주로 했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이게 좋았다. 작은 냉장고를 사용하면서는 마음이 후련했다. 사실 아예 창고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공간이 작으니 다음 음식을 넣기 위해선 보이는 것들 중 몇 가지를 비워야 했다. 어쩔 수 없더라도 내 기억에서 잊혀지기 전에 순환이 되는 게 좋았다. 음식은 모자라는 것보다 남는 게 낫다는 철학을 가진 손이 큰 엄마에게 우리 집 냉장고가 무척 작으니 이렇게 조금 줘도 되나 싶은 정도로만 보내달라고 했다. 나도 입체적인 사람이라 때에 따라 조금은 다르긴 하겠지만 살림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차라리 음식이 모자라는 편이 더 낫다. 먹다가 남아서 저장하고 싶지 않다. 새로 바꾼 냉장고는 매우 작기 때문에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먹어가다가 양이 줄면 처음 것보다 작은 용기에 옮겨 담는데, 그렇게 담아 넣으면 원래보다 빈 공간이 많이 생겨 냉장고가 환해진다. 나는 그게 너무 행복했다. 냉장고가 나를 행복하게 할 줄이야. 바꾸지 않았으면 몰랐을 일이다.


누군가에겐 맞지 않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딱 맞았고 심지어 꿈꾸지도 예상하지도 않았던 행복감까지 맛볼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나에게 이토록 좋았던 일이라고 모두가 작은 냉장고로 바꿔야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누군가는 넉넉한 냉장고에 가족과 지인들을 위한 신선한 식재료와 음식을 설레는 맘으로 보관하고 있을 수 있다. 냉장고 문을 열어 색색깔의 다양한 식재료 중 오늘의 음식이 될 몇 가지를 고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일 수 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다.


나를 알아가는 일, 나에게 알맞은 생활방식을 알아가는 일, 나에게 행복을 주는 일을 알고 행복감을 자주 느끼도록 삶을 설계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냉장고를 줄이며 새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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