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티비를 켰다.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눌러 까맣던 티비 화면이 밝게 켜지는 동안 금요일에 사두었던 고로케와 우유를 들고 와 티비 앞에 앉았다. 이리저리 채널을 한참 돌리다 예능 프로그램 하나를 픽했다. 길었던 채널 선택의 과정을 끝내니 마음이 한결 여유롭다. 출연진들의 재치있는 입담에 소리죽여 웃어가며 와작와작 고로케를 먹기 시작했다.
고로케 하나를 거의 다 먹어갈 무렵이었다. 그만 왼쪽 윗 어금니 쪽에 뭔가 끼었다. 아 개운치 않고 꺼림칙한 기분. 조금만 더 먹으면 끝인데 이 느낌으론 조금도 더 먹을 수가 없다. 입 속에서 혀를 굴려 꺼내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다. 나올 것 같으면서도 그대로다. 몇 번을 시도했더니 혀에 쥐가 날 지경이다. 조금 전까지 재밌게 보던 프로그램은 보는 둥 마는 둥, 나의 모든 신경과 감각은 혀가 닿을랑말랑하는 왼쪽 윗 어금니 구석에 쏠렸다. 조금 더럽긴 하지만 손가락도 넣어본다. 너무 답답하고 불편해서 참을 수가 없다. 그래도 닿지 않는다. 초등학생보다도 작은 내 손도 그 구석까진 파고들 수 없나보다. 그렇게나 구석에 끼었다. 왼쪽 볼에 바람을 잔뜩 넣어본다. 하하.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이렇게 하면 공간이 생겨서 혹시 굴러나올까 싶어서. 역시나. 그럴 리가 없다. 그 뒤로도 한참을 싸웠다. 안 되는 방법을 돌아가며 또 썼다. 온 신경이 곤두섰다. 혀가 뻐근하고, 기분 탓인가 등근육도 뭉친 것 같다. 결국 세면대로 가 물로 입을 헹궜다. 오물오물 퉤.
오, 나왔다!
드디어 나왔다. 고로케 튀김가루 두 점. 에게, 예상 외로 너무 작다. 깨보다 더 작은 정도. 이렇게 작은 게 나를 그렇게도 괴롭혔다. 시간으로 치면 길진 않았겠지. 그런데 그 몇 분의 시간이 당사자인 나에게는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나만 아는 그 긴 시간 속에서 나는 진이 빠지게 시달렸다. 같은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알리라.
그깟일로 뭘. 사람들은 쉽게 말하는 것만 같다. 그깟일로 왜 그러냐고. 고작 그 정도 일로 그럴 일이냐고.
크리스천인 나는 생명의 결정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은 끝까지 걸어갔으면 좋겠다. 하지만, 삶을 더 이어가고 싶지 않은 절망을 지난 사람에게 적어도 모르는 사람들이 비난을 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겨우 그 정도 일이라고, 별 거 아니라고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 그 사람이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람의 짐의 크기가 어떠했든 그 사람이 아픔을 견딘 기간이 어떠했든 힘들었던 마음을 인정하고 묵묵히 들어주는 일이리라. 삶을 마감하려는 시도 후 감사히 살아났다면, 다시 주어진 삶은 오래 걸리더라도 마침내 긍정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잇몸에 낀 튀김 가루 두 점 때문에 온 신경과 온 감각이 곤두섰던 경험이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연예인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의 삶을 나는 모른다. 모를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선택을 하기까지 몸부림쳤을 누군가의 고통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 사람은 들어주길 바랐겠다. 이해받고 싶었겠다. 누군가 있어주었으면 했겠다.
세상 가장 외로운 그 선택을 하기 전 내가 당신을 몰랐음이 슬프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가 분명 당신 곁에도 있었을텐데.
같은 하늘 아래 모든 이들이 외롭지 않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