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에 점점이 뭔가 생기더니 가렵기 시작했다.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언젠간 낫겠지 싶어서 그냥 두었다. 평소에도 병원엔 잘 가지 않는다. 회피 성향이 이런 데서도 드러난다. 이번에도 웬만하면 안 가고 싶었는데, 그 부위가 조금씩 단단해지고 감각이 무뎌지더니 어제 아침부터는 흉측하게 벗겨지기까지 했다.
엄마 이제 출발해. 거실 바닥만 좀 치워줘. 곧 만나.
퇴근 길에 차에 오르며 집에 첫째와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핸들을 잡으니 흉측해져버린 손가락이 보였다. 마치 특수분장을 한 것 같은 비주얼에 이대로 더 두었다간 무슨 일 일어나는 게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도저히 안되겠어서 발길을 돌려 피부과에 가기로 했다.
엄마 오늘 더 늦을 것 같아. 아까 봤던 엄마 손가락이 너무 심해져서 병원 좀 들렀다 갈게.
곧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몇 분 만에 철회하고, 피부과 근처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피부과에 도착해보니 다행히 사람이 없었다. 접수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내 이름이 불렸다.
습진이네요.
뻔한 증상인가보다. 진단은 간단했다. 불을 켜고 병변 부위를 비춰보는 흔한 절차도 없었다.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고 약만 하루 두 번 바르세요.
차일피일 미루던 게 민망할 만큼 접수-진료-수납-처방까지 속전속결로 끝이 났다.
그러고 돌아와서는 별 거 안했다. 그냥 침대 머리 맡에 약을 두고 생각 날 때 발랐다. 겨우 세 번쯤 발랐나. 그런데도 벌써 원래 피부로 거의 돌아왔다. 이럴 것을 왜 그리도 오래 버티기만 했나. 과거의 난.
그래.
사소한 시도라도 안하는 것보단 늘 낫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