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판을 내려놓고 그 사이 쌓였을 알림 메시지를 확인하려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위에서 아래로 손가락을 훑으니 한 페이지에 담기지 않는 긴 알림 목록이 죽 내려왔다. 카드 사용 내역, 배송 안내, 구독 중인 유튜브 알림, 언젠가 가입했던 어플에서 때마다 보내주는 물 마실 시간 알림,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지갑을 들고 다닐 적에도 영수증에 종이쪽지에 깔끔하게 들고 다니지를 못하더니 핸드폰이라고 다를 게 없다. 예쁘게 케이스만 둘렀다 뿐이지 속에는 이런저런 것들이 이렇게나 주렁주렁이다. 남들도 그럴까. 나는 일단 긴 목록에 시선을 던져본다. 언제 보아도 특별할 것 없는 목록에서 특별한 것을 또 찾는다. 혹시 진짜 중요한 것이 있는데 모르고 지우기를 눌러버리면 큰일이니까. 한 번도 그런 큰 일은 일어난 적 없지만, 혹시는 혹시니까.
잊고 있다가 방금 깨달아졌다. 오늘 새벽에 글을 쓰고는 브런치 발행 예약을 했었다. 브런치 알림 메시지가 와있는 걸 보니. 세상에나. 오늘도 누군가 내 글을 읽었다. 어릴 적 꿈이었던-아니, 지금도 꿈꾸는 작가라는 이름을 슬며시 손에 쥐어보는 순간이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내 브런치를 공개하지 않았다. 못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응원하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과 사람들 앞에 나를 세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나는 글 쓰는 일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니까 더욱 내가 쓴 글을 가지고 그 앞에 서기 두려웠다. 또 한편으로는 눈치 많이 보고 사는 나에게 이 공간만큼은 자유롭게 남겨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은 내가 여기에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을 알지만 이 글이 내 글이라는 걸 모르거나, 혹은 아무 것도 모르거나, 셋 중 하나다.
나의 지지난 학교는 작은 규모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오며 가며 몇 마디 나누면 금세 모두에게 전달이 되는 구조였다. 그래서 가끔 선생님들은 눈을 꿈뻑이며 듣는 날 보며 아직 몰랐냐고 깜짝 놀라곤 했다. 학교 안의 소문은 나에게까지 도착하면 모두가 아는 걸 거라고.
정말 그랬다. 천성도 느린 사람이라 다 년간의 굳은 다짐을 한 분야가 아니고서는 외부로 관심을 잘 두지 않는 편이다. 실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데에만도 쏟을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라 그렇다.
나는 지금도 결제할 때 남들 다 내미는 스마트폰 대신 카드를 내미는 사람이고, 송금할 때면 유물 같은 보안카드를 꺼내드는 사람이다. 스마트폰을 바꾸는 일도 드물지만 바꿨다고 기능을 찾아보는 일도 없는 사람. 애초에 다양한 기능이 있는 제품을 구입하는 건 어떤 의미에서 손해인 사람. 몇 해 전 들은 글쓰기 연수에서 강사님이 브런치를 소개했기에 전에 썼던 몇 편의 글을 들고 작가 신청이란 걸 해봤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가 사는 시대에 브런치라는 게 있다는 것조차 몰랐을 사람이다.
어찌저찌 브런치를 시작하고서도 그 놈의 완벽주의와 얽혀 한참을 글 하나 적지 못하고 지내다가 이제 나름대로 극복하고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간신히 몇 자 적어보고 있다. 브런치라는 세상은 나에게 여전히 많이 낯설고 조금은 두렵다. 발을 내딛어도 불이 켜지지 않는 어두운 현관에 서있는 느낌. 정말 들어가도 되는지, 내가 초대받기는 한 건지, 혹시 무단 침입은 아닐지 검열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 내 정체성은 아직 외부인인 것 같다.
그럼에도, 그 미지의 세계에서 불꺼진 현관에 찾아와 내 글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생각하면 참 감사하고 설레는 일이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