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발령을 받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아마 월급날이 가까웠었나보다. 행정실로부터 연락이 왔다. 근처 농협에 가서 월급 통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대기하면서 눈을 둘 곳이 없어 멀리 시선을 던져 은행원 분들을 바라보았다. 그 분들은 대화를 나눴다가 복사를 했다가 도장을 찍었다가 어딘가에 다녀오기도 하며 계속 바빴다. 마감 시간까지 촘촘히 바빴다. 게다가 이대로라면 나의 월급통장 발급은 마감 시간이 지나서까지 진행될 모양새였다. 그 날 따라 붐비는 건지 원래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었는지, 거기 계신 분들 모두 오늘 퇴근이 한참 늦어질 것 같아 보였다. 타 직종이지만 나도 직장인이기에 늦은 번호표를 들고 있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개인적인 용무였다면 다음에 다시 오기로 하고 그 길로 걸어나왔을텐데 학교에서 요구한 일이었기에 그럴 수도 없어 마냥 기다렸다.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쉴 새 없이 바쁜 은행원 분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이 없게도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고객이 번호표를 뽑고 한 번에 한 사람씩 온다는 것.
멀티가 안 되는 나는 한꺼번에 여러 요구가 오는 게 힘들었다. 초임에 3월, 첫 월급도 받기 전이었으니 한 학급의 담임을 한지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았을 시기였다. 교실 안에는 서른 세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동시에 여러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가 부지기수였다. 저학년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연예인 버금 간다. 쉬는 시간이 되면 눈 깜짝할 새 귀요미들에게 둘러싸인다. 둘러싼 아이들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 때마다 나는 누구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할지 모르겠었다. 귀는 두 개지만 따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게 이럴 땐 참 아쉬웠다. 어느 땐 다 귀기울여 듣지 못했지만 들은 척 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엔 한 쪽에서 다친 아이를 살피고 있자면 다른 한 쪽에선 싸움이 났다며 아이들이 나를 찾았다. 10분의 짧은 쉬는시간 동안에 제보가 쏟아진다. 선생님, 쟤가 저 놀렸어요, 쟤가 제꺼 허락도 안 받고 가져갔어요, 쟤가 욕했어요, 분명히 여기 놓았는데 안 보여요 등등등. 어느 날엔 아침부터 제보를 받는다. 선생님, 어제 저녁에 놀이터에서 노는데 쟤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내가 처한 상황이 이랬던지라 한 사람 한 사람에 집중할 수 있는 그 시스템이 나는 부러웠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 부러움에는 나의 바람이 담겼다. 그 바람은 나를 이해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힌트였다는 것을 마흔 즈음 다시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