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모르는 그 느낌
"셈케이씨 알잖아. 그 느낌."
올 것이 왔다. 최대한 다채로운 단어를 떠올려야 한다. 그녀가 원하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는 사실 중요치 않다. 앞으로 내가 내뱉은 단어가 ' 그 느낌'이 될 테니까 말이다. 무조건 알 것 같다는 표정은 디폴트다. 표정부터 '읭?'스러우면 이미 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네, 유니크하지만 색감이 너무 언발란스하지 않도록 시안 잡아보겠습니다."
아쉽다. 내 대답이 유니크하지 않았다. 다행히 모르겠다는 액션보다 나았는지 그녀의 표정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난 늘 궁금하다. 그녀에게 생각이 정말 있을지.
9년의 시간을 디자이너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버거운 미션 '그 느낌'. 대부분 돈을 많이 받고 경험이 많은 윗선에서 '그 느낌'의 틀을 잡고 우리들은 '그 느낌'을 구체적으로 구현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는 '그 느낌'에 살을 더해 더 탄탄한 '그 느낌'을 완성시키는 역할이 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사실은 여러 디자인실을 겪어도 항상 정답을 아래에서 찾는다. 억울하다는 말이 아니다. 진짜 모르겠어서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놓고 매출 안 나오면 #@$%^!.
분명 대학을 다닐 때, 서른이 넘어 여전히 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있다면 위와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빨간 스포츠카에(왜 빨간스포츠카였는지는 당최 기억이 안 나지만 그냥 멋있어 보였 나보다.) 날씬한 몸매 그리고 세련된 장신구(?)들 모든 뭇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희대의 커리어우먼 뭐 그 정도랄까.
물론 운전면허는 갱신까지 했다. 빨간 스포츠카는 개뿔, 빨간 코피만 안 흘려도 양반이다. 다른 거 다 차치해도 서른이 넘은 디자이너나 신입 디자이너나 별반 다른 건 없다. 오직 잔꾀만 늘어가는 것. 임기응변에 능해지는 것. 그래서 능구렁이가 되어가는 것. 이것도 능력치라면 능력치지만 말이다.
대중적으로 디자이너라 말하면 '의상 디자이너'또는 '브랜드 디자이너'로 많이들 알고 있다. 드라마 주인공 직업으로도 자주 등장하고 우리 실생활에 가까운 부분의 디자이너가 더 일반적으로 떠올려지는 듯싶다. 그러나 디자이너의 갈래는 무수하다. 의상 디자이너 내에도 스타일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패턴 디자이너로 나뉜다. 물론 사려깊은 회사는 스타일 디자이너에게도 그래픽을 그래픽디자이너에게도 스타일을 요구하는 재밌는 상황이 펼쳐진다. 전공은 그저 회사에 발을 들이기 위한 마패 같은 역할일 뿐 직장생활을 하면서 복수전공이 가능한 셈이다. 그러니 대학에서는 부디 한 전공만 열심히 파시길.
본론으로 돌아와 디자이너의 갈래가 다양한 이유는 디자이너의 손길을 스치지 않고 탄생되는 유무형의 것들이 흔치 않다. 가령 지금 당장 시선을 쓱 둘러봐도 길거리의 간판, 땅에 버려진 전단지, 사람들의 옷, 자동차, 심지어 표지판까지. 물론 A부터 Z까지 모든 공이 디자이너에게만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우리 삶에 깊게 박혀있는 디자이너들의 숨결이, 영혼을 갈아 넣은 그 숨결에 대해 하나하나 써 내려가보려 한다.
어떤 디자이너에게는 공감을, 또 다른 다자이너에겐 꿈과 희망 또는 포기를 선사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