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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Mar 07. 2024

06 나의 은밀한 취미생활



 내가 만나온 남자, 깊게 사귀지 않아도 애정의 감정을 교류한 남자, 모든 형용이 더해진 내 삶의 이성들 중 내게 글 쓰는 취미가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심지어 전 연애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써 내려가는 것은 나와 이 글을 읽는 당신밖에 모르는, 아무도 안 궁금해하는 비밀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오래 만난 사람에게 모두 감출 순 없다 보니 '언젠가 내 돈으로 딱 책 서른 권만 만들고 싶어.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고 싶어.'라는 로망을 말하긴 했어도 본인과의 연애 또는 다른 이와의 연애사를 가감 없이 쓰고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함께 여행을 떠나던 기차 안, 곯아떨어진 그의 옆에서 나는 그를 향한 사랑이 담긴 글을 썼었다. 그리고 또 다른 그와 떠난 여행에서는 아침 일찍 먼저 일어나 이번에도 자고 있는 그의 옆에서 그를 사랑하는 글을 썼었다. 참 오묘하다. 글을 쓸 때는 내 생에 다시 못 올 뜨거운 사랑처럼 느껴졌는데, 그 순간 함께함이 행복이고 그 행복이 늘 영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메모장에는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각기 다른 남자에 대한 사랑의 글을 보고 있자면 감동보다 웃음이 먼저 새어 나온다. 이전 연애를 떠올리는 것은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마주친 ‘봤던 드라마’처럼 다음 장면을 알면서 계속 봐지는거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웃기도하고 또한번 눈물짓기도하고 다음 장면은 커녕 바로 채널을 돌리고싶을 때도 있다. 그 ‘봤던 드라마’가 내게는 ‘글’이다.


 아마 앞으로 내 삶에도 그들의 남기고 간 추억과 잔상이 그럴싸한 자양분이 되어줄 거라 믿기에 어떤 연애의 찰나도 귀하지 아니한 순간이 없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내 이름이 이 세상에 없었을 때부터 나를 ‘아가’라고 부르며 내게 글을 써주셨다.

 아가, 오늘은 네가 많이도 움직여줘서 기뻐. 어떤 아이일까. 참 많이 궁금하구나. 아마 엄마는 네가 밝고 쾌활한 아이일 것 같아. 만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건강히 만나자.

 그 글을 성인이 돼서야 읽고 한참 눈시울을 붉혔다. 글은 가지 못하는 모든 순간으로 데려다주는 힘을 가졌다. 찬란했던 예전으로, 떠올리고싶은 그날로, 인지조차 못하는 작고 여린 태아의 내가 엄마의 품에서 이리도 따스한 말들을 들었던 그때로.


 그래서인가. 내 삶에 대단치 않은 일상을 기록해 두는 일. 많지 않은 사람의 시선이 머물다가더라도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왜, 내 취미에 대해서 한 번을 말하지 않았냐 묻는다면 은밀해야 더 재밌으니까. 아주 단순한 이유다. 연애에 있어 이 정도 취미 하나 감춰도 큰 문제가 없기에. 그러나 어쩌면 대충은 눈치챘을지 모른다. 유난히 길고 깊었던 연애편지와 연애 초반에 주었던 글선물 그리고 숨 쉬듯 해대던 삼행시 공격.


 나는 각광받는 작가도, 이름을 날린 작가가 아니다. 사실 작가라는 수식자체도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글들이 내 삶 구석구석에서 제 역할을 해낼 거라 자부한다. 마치 엄마의 편지처럼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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