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낙태후 정신적 고통도 치유해야 한다.

오만가지 사람마음 29

낙태에 대한 찬반 논란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여성계의 주장이 있다가, 생명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는 종교계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면서 정책은 오락가락한다. 그러는 가운데 낙태를 해야만 하는 어린 여성들은 암암리에 많은 돈을 들여야만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년전쯤 이던가? 상담활동을 할 때 어떤 여학생이 와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돈 좀 빌려주세요"
"얼마나?"
"30만 원 정도요."

낙태라고 말은 안했지만, 이런 대화를 하다 보면 대충 낙태비용을 빌려달라는 소리로 어림짐작할 때였다. 그런데 요즘 들리는 소문에 그 비용이 100만 원 정도 된다고 한다.

사진=게티이미지

낙태후 정신적 충격 회복 쉽지 않아

어쨌든 낙태를 하고 나면 여성이든 여학생이든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심리적, 정신적 충격으로 이후의 생활이 크게 영향을 받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도와주는 곳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결혼할 사람으로 생각했던 남자와 헤어지게 된 지숙(가명)은 얼마 전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그리고 좌절과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가 아는 친구의 권유로 집단상담에 참여하게 됐다. 집단상담은 혼자 하는 상담보다 집단의 역동(다이내믹)을 이용하며 진행된다. 집단 역동이란, 집단의 지지와 격려를 통해 스스로 자기 문제를 말하고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필자는 역할극을 활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녀의 얼굴에는 검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잘 하지못할 정도였다. 그러던 중 마음의 결심과 주변의 권유로 집단 상담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드라마치료라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 방식은 모든 상황을 극적으로 만들어낸다. 자신이 경험한 일, 대상, 과거 미래 등 마음속에 간직한 그 무엇이든 상황화 시켜보는 작업이다. 그녀가 처음 만든 장면은 남자 친구의 비난 장면이다. 남자 친구는 그녀에게 자신의 절망을 호소한다.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난 미래가 없어, 난 절망적이야”

이런 소리들은 남자가 좌절을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결국은 여자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말들이었다. 왜 조심하지 못하고 임신을 했느냐? 결국 너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 아니냐는 비난의 소리로 들릴 수 밖에 없게 했다. 낙태를 한 게 고스란히 여자의 책임이 돼버리고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날 수 없었던 아기에 대한 미안함

두 번째는 엄마와의 관계 문제였다. 딸이 공부를 잘하고 신앙이 좋아 결국 목회자의 사모님이 될 수 있다는 기대로 누구보다 기뻐했던 사람이었다. 교회에서 자랑하기 좋았고 자신스스로 남편과 시댁에서 받은 설움을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주인공은 자신이 엄마가 되어서 엄마의 고통스러운 삶을 연기해 보았다. 남편의 무시와 시어머니가 잠자리까지 함께하며 괴롭히던 결혼생활을 보여줬다. 지숙이 오랫동안 엄마에게 들었던 내용을 다시 경험해 보는 과정이다. 이 드라마치료 과정에서 그녀는 엄마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으로 대물림되고 있음을 느꼈다.

세 번째 장면은 낙태로 인해 안아볼 수 없었던 아기와의 만남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하게 되었지만 여자는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아이에게 고백을 한다. 그리고 신에게 아이를 맡기는 장면을 연출했다. 

“제가 이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한 점을 용서해 주세요. 하나님이 돌봐 주세요”

이렇게 말하며 아이를 하느님에게 맡겼고, 하느님은 아이를 안고 퇴장했다. 그 퇴장하는 장면은 지숙은 멍하니 보고 서 있었다.

이처럼 드라마 치료 방식은 굿과 같은 형태를 띠면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 오래전부터 어느 민족이나 무당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상담심리치료를 하는 사람은 현대판 무당의 역할을 어느 정도는 한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대변해 주는 역할이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약만 먹는다고 치료되지 않는다. 마음을 풀어내야 한다. 마음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산을 하든 임신중절이든 뱃속에 아이를 품었다가 떠나보낸 엄마들은 마음속에는 응어리가 숨겨져 있다. 그 응어리는 우울, 분노, 짜증으로 나타난다. 외형적 모습만 보고 주변에서 뭐라고 탓할 수 없다.

또한 낙태는 단순히 아이를 잃었다는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낙태를 방치한 주변 인물,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좌절이 숨겨져 있다. 단순히 낙태가 맞다, 틀리다의 논리 이전에 낙태를 한 여성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이성을 특별히 싫어하는 이유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