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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봄 Nov 07. 2018

재능이 없다는 평을 듣더라도

시인의 재능을 다시, 묻다


제가 시인으로 재능이 있을까요?


시인이 되기위해
필요한 재능은 뭔가요?




1.

빨간펜을 든 평론가
시인됨의 자질을 평하더라

그는 너무 밝기만 하여
시를 쓸 수 없다하네
시는 그림자에서 태어나니

그는 너무 바른 사람이라
시를 쓸 수 없다라네
시는 모순에서 자라나니

그는 너무 아름다워
시를 쓸 수 없다하네
시를 쓰는 삶은 비루함과 함께이니


2.
듣고 있던 질문술사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의 삶은 빛을 추구하나 어둡고
선하고 싶어하나 한 가득 모순이며
풍요와 아름다움을 좋아하나 비루하니
시인으로 피어날 재능있다 좋아한다


시인의 재능을 다시, 묻다 (초고)




2018. 11. 7. 질문술사

시인의 재능을 다시 묻다


시족(詩足) : 재능이 없다고 안 할껀가?

  재능이 없다 평하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당신을 걱정하는 척, 위하는 척 하지만, 미숙했던 시절의 기억을 망각한 꼰대일 뿐이다.

  ’외부의 평론가’보다 무서운 것은 ‘내 안의 평론가’다. 잘 하려는 마음, 좋은 작품을 만들려는 마음은 이해가 되나,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해지진 말자. 아장아장 걸음마부터 익혀야 할 때, 달리지 못한다고 혼내는 것은 어른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미숙함의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는 것이다. 잔혹함은 우리 안의 어른됨을 파괴하곤 한다.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도 평론가는 속삭인다. 그의 평론은 아프고 상처를 남긴다. 칭찬만 바라는 것은 미숙함의 증거이며, 그 상처를 품고도, 굴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딛어야 어른이 된다.

  아장아장 ‘아이 걸음마 같은 시’를 쓰고 있는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시인’이다. 나르시즘에 빠지고 반항기에 물든 중2병에 걸린 청소년 시인 정도는 된 듯 하다. 질풍노도의 시기엔 높은 이상과 비루한 현실의 차이에서 길을 잃곤 한다. 나 역시 종종 길을 잃고 헤멘다.

  내 안에는 미숙한 시인과 빨간펜을 든 냉혹한 평론가, 질문을 사랑하는 질문술사가 함께 살아간다. 그 모든 존재들을 다독이며, 모두 소중한 벗이라 여기며 함께 품고 살아간다.

  재능 따윈 중요지 않다. 시를 쓰지 못하는 나는 ‘온전하고 고유한 나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시인박씨는 비록 시에 재능이 없다할지라도 멈추지 못하고 시를 끄적인다오. 그림자를 품고 사는 인간이라서, 모순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라서, 그럼에도 불구라고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싶은 인간이기 때문이라오.’

2018. 11. 7 질문술사
재능보다 중요한게 무엇인지 다시, 묻다


혁신가의 질문엔 이런 글도 썼다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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