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방 1부 3

1-3

by 투명물고기

나는 ‘외할머니’라는 말을 싫어한다.

아빠의 엄마에 비해 엄마의 엄마에게 더 설명이 필요한 이 구조가, 내겐 어딘가 모욕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에게는 하나뿐인 그 할머니.

내가 느끼는 이 특수함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글쎄, 자신은 없다.


할머니… 부르지 못한 시간이 삼십 년이다.

할머니가 떠나던 날을 적어보기로 결심하자, 이 순간 바로 깨달음이 솟는다.

할머니가 떠나서 나는 괜찮지 않았다고.

그런데 혼자 살아남느라 그 슬픔을 바로 보지 못하고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는 걸.

어쩌면 내가 감각을 끄고 양철 로봇이 된 건 그때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숨이 가라앉는다.


오빠 손을 잡고 터미널에 내린 날 이후로,

하늘나라 가는 날까지

다섯 살 꼬마가 중학생이 되는 십 년 동안

내게 따순 밥을 해주고 옷을 빨아 입힌 것은 우리 할머니다.


육십이 넘어도 뾰족구두를 신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자주 가늠해보곤 했다.

작은 얼굴에 오막조막 반달눈, 적당히 오똑한 코, 번쩍이는 금니 세 개가 드러나던 환한 웃음.

엄마가 없는 아이는 할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싶었다.

가끔 오가는 아빠와 할머니를 연결하는 순간 불편해서, 그 상상은 더 이어지지 못했지만.


그날의 누런 기억이 황사 탓인지, 눌어붙은 다림질 자국 같은 쓰린 아픔인지 모르겠다.

특별활동이 있던 수요일 하굣길에, 꽃꽂이 반인 친구가 남은 장미 한 송이를 건넸다.

빈약한 몸을 웅크리고 있던 한 줄기 장미.

내가 살던 집 뒷마당 장독대에 걸린 장미 넝쿨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봄이면 꽃잎을 따서 말리는 즐거운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장미 머리를 쥐고 우악스럽게, 투두둑 잡아떼어버렸다.

선물한 친구에게 양해를 구했어야 한다는 것은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되어, 답답한 마음을 한동안 가지고 있었다.


여느 날처럼 집에 돌아와 덜컹이는 철문을 열어 졸고 있는 마당을 깨웠을 것이다.

집 안 구석구석을 돌며 적막함을 몰아냈을 것이다.

나이에 맞지 않는 재방송 만화를 보며, 돌아올 할머니를 기다리던 그날.


따르릉—

전화가 나를 불렀다. 무심하게 전화를 받았다.


“영월 경찰서입니다. ***씨 댁 맞나요?”

“***씨께서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에휴, 빨간 불에 건너기라도 한 거야? 하여간… 조심 좀 하지.’

버릇없이 속으로 핀잔하며, 의젓한 체 어른을 흉내 내며 물었다.


“많이 다치셨나요?”


잠시 정적.

“***씨께서 사망하셨습니다.”


목놓아 울었던가, 손이 떨렸던가.

지금 생각해 보니, 나의 불안증은 이 순간부터 더욱 불이 붙었을지 모르겠다.


나는 엄마 아빠가 한 집에 없는 아이라서,

이모네 차를 얻어 타고 달려간 곳은 제천의 한 장례식장이었다.

하필이면… 선명한 기억은 아니라도, 엄마가 아이들을 태워 보낸 그곳이라니.

얄궂다.


서울 가는 열차 시간이 당도하여 기차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할머니를 커다란 트럭이 덮쳤다고 한다.

나를 돌보러 오는 길이었을 것이다.

여비를 아끼려 허기를 참으시는 걸 안다.

얼른 집에 와서 나에게 따순 저녁을 지어주고, 노란 양은 냄비에 닭똥집을 볶으셨을 것이다.


은혜 갚은 까치처럼 구렁이와 싸울 수 있다면, 피를 흘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장례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음식을 떠 넣고 씹어 삼키는 것이 배은망덕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굶고 다녔을 할머니에 대한 작은 의리라고 여겼다.


너무나 쓰리게 생각이 열린다.

아… 지금껏 스무 해를 넘도록 거식과 폭식의 식이장애를 오가며 삶과 정신이 무너져버린 그 시작이 여긴가.

본디도 슬픔과 외로움을 분간하지 못하던 나는,

그때 완전히 고장 나 버린 것은 아닐까.


아침상을 치우던 길에,

학교에 가는 나를 배웅하는 할머니 손에 있던 민트색 행주가 또렷하다.

젖은 손을 문질러 닦으며, 마지막 인사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것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 아이.

나의 하늘인 할머니가 떠났는데, 누구도 나를 살피지 않는다.

나는 할머니의 혹이라서 그랬다는 걸, 그때의 나는 눈치가 없어서 알지 못한다.

그저 장례는 어른들의 일이고, 나는 자식은 아니니까.

그렇게 그럴 법하다고 믿고 견디는 것이다.

나란 아이는.


내가 제일 슬프다고,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며 울부짖었다면…

깊은 후회가 든다.


나의 마음이란 것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몰랐던 아이는,

심장이 없어서 슬픔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쭈그러져 있었을까.


할머니가 두고 간 고추 모종과 깻잎들은 말라버리고,

더 이상 정원사 할아버지가 오지 않는 마당 정원은 사람이 살지 않는 정글이 되어갔다.

마당을 지키던 개는 돌봐줄 집을 찾아 떠났다.

슬픈 줄도 아픈 줄도 모르는 아이는,

“뭐 그리 걱정을 하냐”는 핀잔을 들으면서 홀로 남아 시간을 견뎠다.


우리 할머니 이름은 연이다.

너무나 소녀 이름. 예쁘고 고운 이름.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삼십 년이 되도록. 할머니…


나는 오래 전의 나를 만나면 늘 담담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할머니를 떠올리며 글을 쓰다가,

내가 그때 제대로 울지도 못했고, 삼일 내내 굶으면서도

“나는 괜찮다”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 사실이 나를 흔든다.

나는 지금까지도 “나는 괜찮다, 참아야 한다”는 훈련으로만 살아왔구나.

그 버릇이 나를 지켜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아픔을 인정하지 못하게 가두어 놓았구나.


그래서 지금 글을 쓰며 그 문이 열리자, 억눌러둔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무서운 건 병이 깊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 안의 진짜 목소리가 이제 막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일뿐이다.


그 소리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내가 견딜 수 있을지…

나는 알 수 없는 것은 다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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