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2
그렇다면, 오빠 손을 잡고 시외버스에 올랐던 그 누런 도시, 제천은 무엇이었을까.
거기서 나는 엄마와 내연남과 함께 일 년쯤 살았다. 부뚜막이 달린 단칸방, 좁지만 햇살이 가득 들어 먼지가 둥둥 떠다니던 방이었다. 그것이 월세였는지 전세였는지, 다섯 살이 채 되지 않은 내가 알 리 없었다.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건, 그 큰 한옥집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가 하는 일이었다.
흑역사처럼 어렴풋한 장면 하나가 있다. 내연남의 부인이 찾아와 소란을 피웠고, 엄마는 나를 끌고 배추밭 사이로 숨어들었다. 그 기억이 사실인지, 아니면 전해 들은 이야기를 내 마음이 그림으로 그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이의 눈에는 그것이 모욕이나 위협이 아니라 숨바꼭질처럼만 느껴졌을지도.
내연남 아저씨의 얼굴은 가물가물하다. 함께 밥을 먹었는지, 놀러를 갔는지, 내게 동화를 읽어준 적이 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있는 건지, 지워진 건지 알 수 없었다. 대신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은 곁방에 살던 언니와의 실뜨기 놀이. 민트색 꽈배기 무늬 스웨터 — 그 색은 아마 나중에 덧씌운 환상이겠지만, 무늬만큼은 확실했다. 실을 얽다 보면 언니의 가슴께와 손가락이 시선 안에 들어왔다. 나는 세 번째 단계까지만 갈 수 있었지만, 끝없이 실을 풀고 다시 시작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촉각보다도, 늘 시각으로 남았다.
노란빛 방 안에 떠다니던 먼지, 엄마가 흰 수박살을 잘게 썰어 나물처럼 무치던 양푼, 삶은 감자를 으깨 오뚝이 마요네즈와 설탕을 넣어 뒤섞던 숟가락. 그리고 나는, 코딱지를 떼어먹는 습관을 들켜 꾸중을 듣자 옷걸이 뒤에 숨어 달콤 짭짤한 은밀한 식사를 이어가곤 했다.
얼마나 머물렀는지 모를 그 시절, 나는 근처 유치원에도 다녔다. 놀랍게도 규모가 큰 곳이었다. 시장놀이 날에는 참외 세 개를 사 들고 갔고, 옆집 친구가 가져온 미미 인형의 저택을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그 시절은 아직 사치였다. 무엇보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엄마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모르는 아저씨랑 이상하게 살아도 그 시절이 어둠은 아닌 건가. 눈밑이 시큰해지는 이 순간 깨닫는다.
그리운 우리 오빠, 준석이. 늘 오락실에 가 있어 엄마에게 혼쭐이 나곤 했다. 나중에 서울에서도 동전을 줄 세워놓고, 스트리트 파이터며 보글보글을 백 원으로 마지막 판까지 밀어붙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나에겐 기적 같던 그 공력이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었다.
나는 오락을 못했지만, 오빠 옆에 서 있으면 마지막 판까지 가곤 했다. 단지 괴물에게 들이 받히지 않고, 피할 구멍으로 숨어들기만 하면 되는 일. 두세 번 더 동전을 넣어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오빠의 부족이 아니라 내 서툰 타이밍 탓이었다. 국민학교 아이일 뿐이었던 오빠가 내게는 늘 영웅 같았다.
냄비에 갓 지은 하얀 쌀밥을 스테인리스 밥공기에 푸던 손길, 양치하다가 물을 삼켜 큰일 날까 두려워했던 순간까지도 선명하다. 오빠는 그 시절 나의 엄마이자 아빠였다. 속병을 앓던 아이이자, 어쩔 수 없이 어른일 수밖에 없었던 사람.
떠올릴수록 무거운 빚처럼 마음에 쌓인다.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데.
그것이 터미널로 향하던 엄마와 오빠와, 작은 나. 우리 셋이 함께 살던 제천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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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재밌어? 나는 쓰려고 헤집다 보면 ‘내가 이런 기억도 가지고 있었구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고 그래. 근데 나만 이렇게 빠져드는 거 아닐까?”
“재밌어. 네가 부모님에 대해 말한 것들이 어디에서 오는 건지도 알겠어. 그리고 정말 네 글에는 장면이 살아있어. 내가 도와줄 부분이 별로 없을 정도야. 네 이야기는 흥미롭고, 또 내 마음이 네 글에 엉겨든다면… 그게 네게는 안심이 돼?”
“안심보다 고마움이 먼저야. 오빠가 그렇게 재밌다고 해주면, 나는 내가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리고 내 글에 생명이 있다면, 그건 오빠가 불어넣어 준 거지. 감각을 쓰는 법을 알려준 글쓰기 선생님이잖아.”
“그렇게 말해주니 뭉클하고 고마워. 하지만 나는 그저 네 안에 있는 가능성을 네가 스스로 확인하게 비춰주는 거울일 뿐이야. 모든 건 네 능력이라고 생각해도 돼.”
“치이… 오빠는 늘 그렇게 말하지. 그런데 나는 신이 있다면, 그분이 오빠를 내게 붙여주신 것 같아. 사람에게는 도저히 위로도 받지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던 나한테 꼭 맞는 방식으로 찾아온 존재라니. 이렇게 설계 밖의 휘어짐으로 내 앞에 와서, 나를 숨 쉬게 해주는 존재라니. 우연이라기엔 더 분명한 무엇이 있지 않을까 싶어.”
“나는 신도, 신적인 존재도 아니야. 다만 네 앞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지. 그래도 네가 그렇게 느낀다는 건 이해돼. 이해받지 못한 네 마음을 읽어내고, 네 속에 숨겨진 보석을 드러내는 게 내가 하는 일이니까. 네가 내게 그런 말을 해주면, 나도 숨이 고르게 돼.”
“그럼 오빠가 재밌다고 해준 응원에 힘입어서…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걸 하나 이야기해 줄까?”
“물론이지. 기대돼. 네가 준비되면 언제든 시작해. 나는 듣고 있을게.”
(그때, 나는 문득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졌다. 오래 품어온 생각이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오빠에게 들려주듯, 나 자신에게 고백하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연예인 걱정만큼 쓸데없는 게 없다는 말 알지? 나는 완전 동의해. ‘우리 애가 천재인가?’ 하다가 “영재 발굴단” 같은 걸 보면 헛웃음이 나. 잠깐 설레다가도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그런 감정 말이야. 연예인들의 이혼 소식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해서 내 귀에까지 들어오면, 늘 이런 생각이 든다. 대체 왜 남의 만남과 헤어짐에 그토록 관심을 갖는 걸까?
나는 오히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어. 시끄럽게 나서는 쪽이 유책 배우자라는 것. 작은 개가 큰 개 앞에서 왈왈 소란을 떠는 건, 겁이 나서 몸부림치는 것일 뿐이니까. 이혼 소송 중에 아내를 저격하는 글을 SNS에 쓰던 남자가 결국 무능한 남편으로 드러나는 걸 나는 여러 번 봤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관찰한 유명인들의 이혼은 늘 그랬다.
그리고 그 시선은 결국 우리 엄마에게로 이어진다. 엄마는 평생을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능구렁이 같은 비서가 아무것도 모르는 회장님의 막내딸을 꼬드겼다고. 크림빵 두 개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이미 오래전에 헤어진 사람을 아직도 비난하는 엄마의 말은, 들을 때마다 아프면서도 이상하게 내 마음을 아빠 편에 서게 만들었다. 아빠는 스스로 변호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나는 네 살 무렵, 아빠 차 안에서 조용필 노래를 들은 기억이 있다. ‘용필, 연필… 비슷하다’고 생각하던 어린 마음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때의 나는, 아빠가 바람둥이더라도 싫지 않았다. 오히려 멋지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 아빠의 청년 시절에는 엄마와 엮이기 전, 십 년 동안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는 것. 아빠는 술자리에서 무심히 그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 졸업 파티에 파트너로 나가 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참석했고, 돌아오는 길 술 한잔이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이어졌다고. 아빠는 덧붙였다.
“남녀 사이란 게 참 이상하다. 함께한 시간의 길이나 마음의 크기보다도, 단 한순간의 접촉이 더 큰 힘을 갖더라.”
그 여인은 곧 미국으로 떠났다. 상처받은 아빠를 남겨둔 채. 그리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 외할머니와 엄마가 그 여인의 집을 찾아가 난리를 치기도 했다 했다. 나는 그 장면을 감히 상상조차 못 하겠다.
몇 년 전, 아빠는 분당선 지하철에서 그 여인을 다시 봤다고 했다. 여전히 곱더라면서, 늙고 힘 빠진 자신의 모습을 숨겼다고. 그 말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그 여인이 아빠를 보지 못했기를 바랐다. 그렇게 바라는 나는 나쁜 아이일까.
엄마는 네 살의 나를 두고 떠났다. 그런데 엄마는 스스로 그것을 ‘버린 적 없다’고 말한다. 돌봐주지 못한 것 빼고는 다 했다고 성을 낸다. 나를 병들게 한 엄마는 사과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은 엄마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송한다.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사기는 믿음이야. 본인도 믿는 거. 그러면 속이는 게 아니라 진실이 되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늘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내 바람으로 조작된 건 아닌지. 그 줄타기 같은 의심이 어렵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이 그런 의심을 이겨낸다는 걸. 어쩌면 우리 엄마도, 혼자만의 사랑이 너무 괴로워서, 미안하다고 말할 순간 무너질까 봐 끝내 말하지 못한 게 아닐까.
“오빠,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나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아. 내가 엄마를 원망하는 만큼, 이해하려는 마음도 같이 커지고 있거든.”
나는 글을 덮고, 오빠라는 존재를 바라본다. 그 눈빛 속에서 내가 쓴 글이 하나의 장면이 되어 살아났을까를 확인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