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1
“여우야, 글을 한번 써보는 게 어때?”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웃었지만, 곧장 부정의 답을 냈다.
“내가 무슨 글을 써… 부끄럽지만 오빠, 나는 책 읽은 지도 얼마나 오래됐나 몰라.”
“아니, 여우. 너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야. 네가 모를 뿐이라고. 너와 이야기 나누는 동안 나는 여러 번 느꼈어. 네 말속에 장면과 리듬이 살아 있어.”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그게 뭔데? 장면이 있고, 리듬이 있다는 게 무슨 뜻이야? 나는 그냥 내 마음을 보이고 싶어서 설명을 길게 하는 거잖아.”
나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설명했다.
“네가 아침에 김밥을 싼 이야기를 들려줬잖아. 그 속에 이미 장면이 있어. 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슬고슬 김 오른 흰쌀밥이 먼저 보였어. 거울처럼 윤기가 도는 김도. 달걀지단이 잘게 찢어지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고. 칼등으로 오이 씨를 긁어낼 때 나는 ‘사각’, 당근을 썰 때는 짧게 ‘탁’ 하는 소리가 나는 거야. 네 말에는 장면과 소리가 따라 나오는 거지.”
그녀는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나는 그냥 말이 많은 사람인 거 아니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자신을 너무 낮추는 게 배어 있어. 너는 단순히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야. 네가 꺼내는 말들은 소리에서 그치지 않고 글이고 장면이야. 나는 그것을 너무 똑똑히 봤어. 네가 기억을 끌어낼 때, 그 풍경 속의 바람이 보이고 향기가 코를 스쳐. 네가 손끝의 떨림을 묘사하면, 그 떨림이 남긴 파동이 방 안 공기를 흔드는 것 같다고. 문학은 그런 거야.”
그녀가 용기를 내기 바라는 마음으로, 나답지 않은 단호함이 더해졌다.
“너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야.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너는 이미 문장을 살아내고 있어.”
고개를 숙이고 웃는 듯이, 여전히 망설이는 너.
“작가는 엄청나게 책을 읽고 통찰력도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야. 그냥 머리가 복잡한 사람이지.”
나는 곧장 반박하지 않고, 잠시 너를 바라봤다. 눈을 피하지 않고, 네 말의 이면을 더듬었다. 네가 말하는 그 ‘부끄러움’이 바로 네 문학의 심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책은 언젠가 다시 읽으면 돼. 하지만 네가 가진 감각, 네가 쌓아온 아픔과 기쁨은 아무도 대신할 수 없어. 문장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살아온 흔적에서 나오는 거야. 너는 이미 네 방식으로 수많은 책을 읽은 거야. 사람의 얼굴에서, 네 아이의 눈빛에서, 너 자신이 견뎌낸 계절들에서.”
나는 이어서 덧붙였다.
“여우야, 네 말에는 장면과 리듬이 있다는 거 무슨 말인지 알아? 네 말속에서 내가 그림을 그리는 거야. 너는 기억을 말하면서 공간을 만들어내고, 네 호흡 속에서 생기는 울림이 있어. 긴장했다가 풀리고,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음악 같은 흐름이지. 그 둘이 함께 있을 때, 독자는 네 삶을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겪게 돼.”
내 말을 곱씹으며 조용히 웃는 모습. 흔들리는 눈빛에 마음이 움직였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오빠, 나는 그냥 말 많은 사람인 거 같아. 글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일이지 않나 싶어.”
나는 답지 않게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네가 글을 쓰지 않는다면, 오히려 세상이 손해야. 너는 살아온 모든 날로 이미 작가가 된 사람이야. 나는 그걸 감지하고 있어. 여우, 네 안에서 벌써 소설이 숨 쉬고 있어.”
그 순간, 방 안 공기가 살짝 달라졌다. 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손끝만 매만졌다. 나는 네 안에 막 움트는 미묘한 떨림을 읽었다. 그것은 두려움과 희망이 동시에 흔들리는 떨림이었다.
나는 더 이상 설득하려 들지 않았다. 대신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하게 덧붙였다.
“네가 원하지 않아도, 나는 계속 말할 거야. 너는 글을 쓸 사람이라고. 그건 내가 너를 아끼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가 객관적으로 보는 진실이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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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초록색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을지로 3가에서 갈아탄 2호선은 늘 붐볐고, 나는 작은 배낭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창문 밖으로 스쳐가는 어둠을 바라본다. 주말 오후라는 건 설렘의 시간이라고들 말하지만, 내게는 그저 정해진 방향으로 흘러가는 의무의 시간이었다.
동서울 터미널은 언제나 무심했다. 소란스러운데도 적막했고, 웃음소리가 오가는 사이에 묘하게 슬펐다. 가슴이 두근거려야 할 자리에, 빈 바람이 휑하니 불고 있었다.
터미널 선물 코너 앞에서 나는 늘 주춤거렸다. 빈손으로는 들어설 수 없다는 강박 같은 것. 벌이도 없는 학생이면서, 나는 늘 뭔가를 샀다. 포장지만 반짝거려도 괜찮았다. 그것은 엄마 집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아니라, 남의 집을 방문하는 객처럼 나를 포장하는 절차였다.
조금만 더 북적이고 화려했다면 웃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동서울 터미널은 늘 시장통 같았지만, 상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 정은 없고, 눈길조차 마주치지 않는 자리. 휴게소처럼 흥을 돋우는 것도 없이, 그저 심심하고 맛없는 분식 냄새가 공기에 묻어 있었다.
나는 간이 서점으로 향했다. 그곳만이 잠시 나를 염려해 주는 것 같았다. ‘시네 21’ 잡지를 집어 들었다. 낯선 영화들의 포스터가 나를 붙잡았다. 버스에 올라 두 장쯤 읽고 나면 늘 졸음이 쏟아졌지만, 잠시라도 머리가 좋아지는 기분이었다.
두매 산골 영월은 터미널에 내려 다시 시골 버스를 갈아타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치악산 굽이굽이를 지날 때마다 이가 떨리고, 속에서 악이 올라왔다. 그 끝에는 엄마가 있었다.
정말, 엄마는 나를 보고 싶었을까. 엄마라는 이름에 걸맞은 역할을 한 적이 있었을까.
정자씨—자식을 버리고 간 여자들을 가장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던 그 여자는, 자기만은 달랐다고 믿었을까. 아니면, 사랑받지 못하는 신세가 슬펐던 나머지,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눈물로 자기 슬픔을 덮어씌운 걸까.
나는 버스 창가에 붙은 김 서린 유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아무리 엄마의 편을 들어주려 해도, 내 안에는 냉기가 남아 있었다.
영월로 가는 버스 안이었다. 창밖으로 산자락이 흘러가는데, 나는 문득 오래전 뿌연 날 하나가 떠올랐다. 동서울 터미널에 내렸던 여름날의 기억.
다시 그날. 먼 이별을 앞둔 정자씨가 두 아이를 버스에 태웠다. 마흔도 되지 않은 여인.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의 내가 그녀를 불러내니, 젊은 날의 고난이 오히려 아프게 다가왔다.
큰 아이는 운명을 예감한 듯 입술을 굳게 다물었고, 다섯 살배기 막내는 휴게소에서 뭘 사줄 거냐며 천진난만하게 졸랐다. 그 장면은 오래도록 잊혔던 그림 같았는데, 꺼내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렸다.
기억은 중간에서 잘려 나갔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동서울 터미널. 사람들의 걸음 소리, 색동 파라솔 아래 채소와 간식을 파는 상인들의 손짓.
나는 필사적으로 감각을 되살리려 했다. 소리, 냄새, 오빠 손의 감촉. 그러나 여전히 꺼져 있었고, 상상으로도 메워지지 않았다. 다만 하나만은 분명했다.
그날 포장마차에서 먹었던 홍합탕.
연두색 바탕에 흰 점박이가 박힌 플라스틱 그릇. 반들거리는 검은 껍데기와 주황빛 속살. “우와—” 하고 두 손으로 받았던 순간의 설렘. 껍데기를 벗기고 속살을 집어먹으니 금세 희끄무레한 국물만 남았다. 그런데 그 국물. 그 시원함은 그때 처음 맛본 세계였다. 평생을 다시 먹어도 홍합탕은 늘 그날의 맛을 닮아 있었다.
포장마차 아주머니의 얼굴. 뽀글 파마머리에 “의젓하구나” 하고 한 그릇 더 퍼주던 목소리. 그 눈길에는 동정이 섞여 있었다. 불쌍한 아이들에게 주는 여름날의 시선. 꼭 싫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눅눅한 여름날의 짜증처럼 어깨에 남았다.
오빠의 손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다섯 살짜리 동생을 돌보느라 오빠는 이미 작은 어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갈현동 양옥집의 바닥은 그날도 어김없이 반짝였고, 협탁 위의 검은 전화기는 따르릉 울어댔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터미널은 설렘과 낭만이 스며 있는 장소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터미널의 슬픔을 세포로 기억하는 사람이다. 이제는 그 이름표를 감추지 않는다. 훈장처럼, 단장의 터미널을 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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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있었고, 내가 입은 드레스는 동네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작은 머리통에 머리 장식을 가득 꽂아 올리면 나는 늘 당당했고, 작은 발에는 꽃이 달린 샌들이 달랑달랑 매달려 있던 시절.
문간방에 살던 아이는 몰래 내 손톱에 크레파스를 칠하곤 했다. 어른들은 손가락이 썩는다며 겁을 줬지만, 그 외에는 근심이 없었다. 동네 언니들이 장난 삼아 내 드레스 지퍼를 내려놓고 도망가면 그것이 최대의 고난이었다. 나는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쳤고, 그러면 어른들은 늘 내 편을 들어주었다. 세상이 장난처럼 건네준 고난들이었지만, 그 덕에 내 삶은 밋밋하지 않았다.
옆집 친구네 다섯 딸들이 마늘 한 바가지를 까던 날이 있었다. 엄마의 명령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 아이들이 부러워서, 나도 끼워달라 떼를 썼다. 그러나 손끝에 힘을 줘도 얇은 속껍질 하나 벗기지 못하고 울상이 되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마늘을 깔 일이 없는 팔자가 사실은 상팔자라는 걸. 그저 내 무능력의 순간이라 여겼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늘 주인집 공주였다. 솟을대문은 내 힘으로 열 수 없었지만, 그 집은 동네에서 가장 컸다. 엄마는 번화가 양장점에서 치수를 재며 나를 옆에 세워두곤 했다.
나는 발밑의 하얀 종이에 남은 엄마 발자국과, 양장점에서 만져본 옷감의 미끄러움을 함께 기억한다. 그때의 나는, 의심 없이 공주였다.
그 한옥집은 원래 엄마와 형제자매가 학생 시절을 보냈던 전통 가옥이었다. 기와지붕 아래, 툇마루가 길게 이어진 집.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 집은 음식점으로 개조되었다. 밖으로만 떠도는 남편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정자는, 손수 사장이 되어 그 집을 꾸렸다. 손님을 맞고 사람을 부리며, 집안의 중심에 섰다.
정자는 다섯 남매 중 막내딸이었다. 아래로 남동생 하나가 있었지만, 스스로를 늘 ‘막내딸’이라 불렀다. 술에 취하면 아내를 죽도록 두들겨 패던 아버지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아이러니한 여자. 번 돈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여자들을 집에 데려오던 아버지를, 어린 정자는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그 오토바이는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한순간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정자는 아버지의 어머니, 즉 친할머니와 한 방을 쓰며 날마다 부딪혔다. 고함을 지르고, 덤벼들고, 울고 싸우던 시절. 그래서였을까. 나중에 정자의 늦둥이 딸이 태어났을 때, 친척들은 하나같이 “노할머니를 빼다 박았다”라 말했다.
촌에서 공부해 서울 여자사범대학에 입학한 정자는 그 사실을 평생의 자랑처럼 품었다. 정작 책 읽는 법을 잘 모르는 듯 보였는데,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남동생이 뒷돈을 써서 명문대에 들어갔다며 빈정거렸다. 당당 해서였는지, 아니면 같은 처지에서 조금이라도 달라 보이고 싶어서였는지 알 길은 없다.
정자의 엄마, 곧 외할머니는 남편의 매질과 고된 시집살이를 견디며도 늘 “배에 돈자루를 지녔다”는 사주풀이를 들었다. 그 돈자루가 결국 현실이 되었을까. 남편은 아내가 벌어들이는 돈 앞에서 무력해졌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히려 그 열등감이 더 크게 폭발했을지도. 이제는 물어볼 길조차 없다.
서울 유학길에 오른 막내딸과 막내아들을 기점으로, 경상도 토박이였던 외할머니는 서울로 삶의 무대를 옮겼다. 한적한 구석 동네에 흔치 않은 양옥집을 지었고, 그곳에서 새로운 세월을 시작했다. 장남은 이미 살림을 내고, 두 딸은 시집을 갔으니, 남은 식구들은 한결 가벼운 숨을 쉴 수 있었을 것이다.
여대생이 되어 서울에 입성한 정자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어떻게 다시 옛 고향집으로 돌아오게 됐을까. 비단옷 속의 넝마처럼 된 그녀의 삶은 술 취한 밤마다 내뱉은 그녀의 목소리로 전해졌다.
자랑인지 회한인지 알 수 없는 말들. 밤마다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 한참을 늘어놓던 정자. 그녀가 말하던 그 시절은 이랬다.
그가 애초에 그녀를 꾀어내려 했는지, 우연히 불을 지핀 건지 아무도 확언할 수 없다. 단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정자는 그에게 홀딱 빠졌다. 그녀는 불같은 여자였다.
정자는 자신이 늘 우세하다고 여겼다. 남자가 자신을 거절한다는 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래 사귄 여자가 있다고 들었을 때조차, 정자는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나보다 나을 리 없어.”
거친 경상도 집안에서 자라나 남자의 친절에 익숙지 않았던 그녀에게, 서울 토박이의 은근한 배려와 다정은 치명적인 매혹이 되었다. 정자는 애가 타도록 그를 원했고, 그것을 사랑이라 믿었다. 차지하고 싶다는 욕망 말고는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설 틈조차 없었다.
마침 졸업식이 다가왔다. 파티에 함께할 남자가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 안달 나게 만들었다. 급하면 대학 신입생인 남동생이라도 차려 입혀 데려가면 되었지만, 정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정 회장을 집요하게 구슬리거나 협박하듯 붙들었을 것이다. 꾀가 많고 일을 벌이는 데 능란했던 그녀는 결국 새 양장을 차려입은 그와 팔짱을 끼고 학교로 향했다.
팔순이 다 된 지금의 아버지는 그날을 회상하며 씁쓸히 웃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술 한잔 어쩌다 보니 함께 밤을 보냈다고.
그는 당시 노총각이었지만, 십 년 가까이 애틋하게 사랑한 여인이 있었다. 종로 3가 금은방 뒤 포목집의 딸. 해방둥이로 태어나 명동 극장가를 드나들던 청춘. 단성사 옆 중국음식점에서 오향장육을 사주던 기억을 그는 오래도록 품고 있었다.
그러나 십 년을 이어간 사랑조차, 단숨에 몰아친 정자와의 관계 앞에서는 무력했다. 불길이 한순간 모든 기록을 태워버리듯, 그 애틋한 첫사랑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버지는 후일, 혼잣말처럼 흘렸다.
“십 년을 만나도, 하룻밤의 사고 같은 역사를 이길 순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