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과 해야할 일
퇴사를 하고 주변 환경이 바뀌면서 만나는 사람들도 많이 달라졌다. 카페에서 일을 하고 카페투어를 다니고, 커피 모임에 참여하며 자연스레 커피 일을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자주 나누게 되었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공통점이 있다면, 커피 일을 아무리 오래 했더라도 여전히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보통 회사를 다니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져든다. 익숙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어떤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에 반해 커피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경력 기간에 관계 없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보였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바리스타들은 대부분 박봉이다. 일에는 흥미를 느끼지만 금전적인 보상이 충분히 따르지 못하다보니, 바리스타들은 업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한다.
짧게나마 카페 파트타이머로 경험한 나의 의견을 보태자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커피를 내리는 일이 흥미롭기는 하지만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일은 아니다. 요즘 바리스타 구인 공고들을 찾아보면 대부분의 급여가 최저시급에 맞춰져 있다. 임금 상승률도 상당히 낮은 편이라, 경력이 적잖이 쌓인 경우에도 보수는 거의 그대로인 경우들이 많다.
보통 이런 고민들을 하기 시작하면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경제적인 보상을 어느정도 포기하고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며 살거나, 돈을 더 벌기 위해 새로운 업종에 뛰어든다.
좋아하는 일에 대한 주제를 걸어놓고 커피 얘기를 이토록 오래 하는 이유는, '좋아하는 일'과 '현실'의 괴리를 가장 가까이서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는 업계가 바로 커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느끼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은 크게 돈이 되지 않는다. 가끔 경제적으로도 두각을 나타내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며 큰 돈을 벌겠다는 것은 생각보다 이루기 쉽지 않은 목표다.
그렇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어느 시점에 다다르면 앞서 말한 갈림길에서 고민을 거듭한다. 삶의 의미를 생각하자니 좋아하는 일을 해야할 것 같은데, 또 당장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자니 돈이 되는 일을 해야할 것만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좋아하는 일과 돈이 되는 일, 둘 다 할 수는 없을까?
최근에 한 카페에서 사장님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평일에 카페투어를 다니다보면, 한가한 때에는 사장님과 꽤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비슷한 나이대의 사장님과 일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다가 자연스레 좋아하는 일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좋아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동시에 하기는 어렵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사장님 지인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커피를 상당히 좋아하는 지인인데, 평일에는 직장인으로 일하고 주말에는 카페 파트타이머로 일을 한다고 한다.
스스로를 나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회사를 다니며 주말에 다른 일을 병행한다니, 대단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선택지들을 펼쳐두고 하나만 집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눈 앞에서 복수 정답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일에 올인하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해야할 일을 병행하는 것이 최선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대화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참으로 오랜만에 직장인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직장인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지속하고 싶은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 공간 소개 계정을 운영하는 것, 커피와 관련된 무언가를 하는 것,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정도가 떠올랐다.
이렇게 글로 적어놓고 보니, 어느 정도의 조건만 맞으면 직장을 다니면서 병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퇴사를 하고 나서부터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같은 것이 있었다. 회사가 불만족스러워 나왔으니 이제부터는 혼자 결과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한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회사라는 조직에 대해 선을 긋고 외면하며 살아왔다.
물론 그로인해 혼자 어느정도의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수익화에 성공했으며, 그로인해 영상 촬영 프리랜서로 일할 기회를 얻기도 했고, 브런치에 남긴 글들로 소정의 후원금을 받아보기도 했다.
한 가지 자랑을 남겨보자면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으로 영상 촬영 방법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촬영 방법부터 편집 방법까지 어떤 식으로 담아내는지, 나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럴때면 기쁜 마음으로 내 노하우를 공유해주는데, 새로운 분야에서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가 대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여전히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말이다.
말이 길어졌지만 그래서 요즘은 회사에 대해서도 기회를 열어놓고 있다. 다만, 돈이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평소 관심있던 분야와 업종으로 도전을 해 볼 생각이다.
관심있는 분야와 업종에서 직장인으로 일하며 새로운 만족감을 느낄수도 있지 않을까. 단순히 안정적으로 돈을 번다는 것 외에도 말이다.
오랜만에 채용공고를 살펴봐서인지 흥미로워 보이는 포지션들이 몇 개 눈에 들어왔다. 물론 회사에서도 내가 흥미로워야 채용 될 수 있겠지만 결과야 어찌됐든 도전한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다양한 기회들을 살펴보며 도전해보고, 문이 열리는 결과를 향해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퇴사 후 3개월 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고, 어느정도의 성과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내면을 채워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앞으로에 대한 고민들이 많다. 그 과정이 흥미롭긴 하지만 때로는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또한 나에게는 필요한 시간이고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 배우고 알게된 것들이 정말 많다. 다시 직장인에 대한 생각을 열어둔 것처럼 앞으로의 생각 또한 변할 수 있겠지만, 마음 가는대로 열심히, 또 후회없이 선택해나가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조금씩 단단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