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러니 이는 유전자를 향한 불평이 아니라, 공부만을 바라던 부모님의 의견에 대한 반론 근거일 뿐이다.)
샤일로가 어머니 안젤리나 졸리와 아버지 브래드 피트의 얼굴을 반반 닮은 것처럼 나 또한 그러하다. 엄마 옆에 있으면 사람들이 엄마 닮았다 말해주고, 아빠와 함께 다니면 아빠 닮았다고 말해준다. 샤일로와 차이가 있다면 우리 집은 엄마도 예쁘고 아빠도 예쁜데 나는 예쁘지 않다는 것.... ^^ 유전자 배합에서 약간의 오류가 발생했는지 잘생겼다는 소리는 꾸준히 듣는 게 유머라면 유머다.
비단 얼굴뿐만 아니라 성격도 반반, 성향도 반반, 하는 행동도 반반 닮았으나 딱 하나 가방끈은 두 분과 차이가 난다. 부모님은 공부와 거리를 두셨으면서 (한) 자식만큼은 고등 교육까지 밀어 넣으셨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약력을 설명하자면 너무 TMI라 생략하지만 공부와 거리를 두셨을 뿐이지, 부모님은 각자 빛나게 사셨고 서로 가정을 이루고 나서도 열심히 사셨다.
(▽ 이는 모두 부모님에게 들은 얘기를 조합한 거다.)
아빠는 공부머리가 없는 대신 기술자가 되고자 전문대에서 기술을 배우셨다. 요즘은 약초를 알아보실 만큼 배우는 행위를 좋아하신다. 엄마는 공부가 죽도록 싫다며 아버지-내게 있어 할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곤 취직을 하셨다. 성적 낮은 아빠와 달리 공부머리가 좋아 늘 상위권이셨다고. 엄마는 지금도 공부라면 질색하신다. 아빠는 기억력이 심히 나쁘신데 엄마는 무서우리만큼 기억력도 뛰어나시다.
유전자의 신비!
손위 형제는 엄마같이 기억력이 미치게 좋은데 공부를 안 했다. 시험 전날이 돼서야 교과서를 펼쳤는데도 성적이 하위권인 적은 없었고 몇몇 과목은 상위권도 차지했다.
반면 나는 아빠처럼 기억력이 나쁜 데다 공부머리도 없었는데 무언갈 배우는 건 좋아했다. 그럼에도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상위권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부모님이며 친구들, 때로는 선생님들까지도 이런 나를 안쓰러워하면서도 신기해했다.
"너는 왜 이렇게 공부하는 것에 비해 성적이 안 나오니....?"
"진짜 이 정도밖에 안 나왔다고?"
망할 공부!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짝사랑에 고달파하느니, 이루어지지 않는 걸 즐기면서 원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었지만 학교란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고난은 매해 되풀이되었다.
아빠는 학창 시절에 성적 욕심은 없으셨다. 엄마는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주의라 잘 받으려는 욕심은 있으셨던 거 같다. 이런 면은 엄마를 닮아, 공부 못 해도 된다는 아빠 말에 오히려 화를 내면서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악바리처럼 공부했다.
공부하다 말고 오열하거나 소리 지를 정도로 공부와의 화합은 썩 좋지 못했다. 심할 때는 죽고 싶기까지 했는데 그러다 보니 학교란 공간에 벗어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판단은 15살 때 들었으나 끝끝내 벗어나지 못해서 불과 몇 달 전까지도 공부 때문에 끙끙 앓았다.
공부하기 싫어 학교를 관두는 게 아니라, 내게 맞는 방식으로 공부하겠다며 학교를 떠나려는 건데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17살, 자퇴 이후의 학업 계획서를 내민 내게 언니와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반감이 듦과 동시에 엄마도 공부를 싫어했고, 언니도 공부하기 싫어해 위탁 교육까지 보내주면서 왜 나한테만 이러는지 의아했다.
내가 엄마의 공부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했다는 걸, 아빠처럼 공부 대신 다른 길을 찾아야 된다는 걸, 공부엔 유전자도 한 몫 한다는 걸 왜 인정 안 해 주는 건지!
내 끈기가 원인이라면 끈기를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그러지 못했다. 말로는, "억울해서 아예 안 해!" 하면서도 한숨 푹푹 쉬면서 교과서 펼치고 인강 듣고 노트 정리했다. 이랬는데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성적은 낮았던 게 유전자의 슬픈 현실.
공부가 싫은 언니는 잘 다니던 인문계를 뒤로하고 위탁 교육을 받겠다며 타지로 떠났다. 대학도 진학하지 않았다. 공부하다 미칠 뻔한 중학생(나)은 고등학생이 돼서도 공부 때문에 발 동동 굴렸는데 그만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학교 가는 길 버스 안에서 울컥, 학교에서 수업 듣다 말고 울컥, 담임 선생님 앞에서 울컥, 눈물이 터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렇듯 학교란 공간이 정신을 갉아먹는 걸 알면서도 참았다. 엄마가 고등학교 졸업장만 받아오라 하셨으니 졸업식까지 참자며 효녀 정신을 쥐어짜 내면서 버텼다, 아니 버티려 했다.
그런 내게 엄마는 대학을 준비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원서 접수가 있기 두세 달 전에> 은근슬쩍 내게 속내를 비추셨고, 이 질문을 기점으로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18살, 현장체험학습 때 찍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