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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같은온도 Nov 24. 2024

7. 공주 금강, 환영에 뛰어들다

아름다움으로의 여행


여행의 참된 의미 중 하나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곳을 걸으면 발바닥 아래에서 내 영혼의 일부가 흘러나와 그곳에 내 영혼이 심어지는 것 같다. 이를 나는 '나의 영혼이 나누어지는, 영혼의 분여分余' 라고 말한다. 그 영혼이 나를 불러 전에 갔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그곳은 과거이자 미래이며 현재가 되는 삼생三生의 완성이 되는 것이다. 그곳은 슬픔마저 완전하여, 언제나 부족했던 지금에서 느낄 수 없는 완성감,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 나 자신을 나아가게 한다. 


20241105.

다시 돌아온 공주. 드문드문 떨어지는 낙엽이 내 앞을 막아섰고, 맵짠 더위를 막아주던 이파리의 빈자리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내 얼굴에 내려앉아도, 해와 눈싸움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길은 여전히 질주하고 있었고 그날의 시간은 아스라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야기는 한 달 전 공주의 호텔로 다시  돌아간다. 


그날 호텔 주차장. 호텔 앞에서 베돌던 흥분의 가슴을 끝내 끌어안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날의 아름다움으로 끝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아름다움은 순간에 나타나기에 환호되지 않고 순간으로 사라질 수 있으니. 

차에서 내린 그녀와 나 사이에 아쉬운 미적거림이 감돌았다. 공주까지 데려다준 그녀에게 그 시간에 딱히 뭘 해줄 수 없어 내 것인 양  금강을 보여주고 싶었다. 얼마 전 축제는 끝났지만 공주는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강변 공원은 우리를 위해 내어 주는 듯 아무도 없었다. 축제의 꽃은 시들고 있었지만 꽃 같은 시간은 그 안을 휘저었고, 서로의 거리를 좁히는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공주의 모든 빛을 삼킨 듯했고 황홀함마저 강물로 뛰어들어 환상적인 두 개의 세계를 만들어 우리를 맞이했다. 


[ 금강에 비친 두 개의 공산성 ]


우리는 한동안 이 환상적인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 저는 저 배가 좋아요.

그녀의 말에, 난 강 중앙을 가리며 말했다.

- 전 강에 비친 성이 좋은데요.

그녀는 배를 선택했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강인지 강에 비친 성인지를 선택했는지 모른다. 그 애매함도 표지였을까. 난 한마디 덧붙였다.

- 아, 저 성 중간이 귀신을 봤다고 착각한 절이 있는 곳이에요.

그때였을 것이다. 무엇이 강인지 무엇이 성인지 눈을 의심케 하는 강은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돌이켜보면, 그녀를 만나기 전 전조처럼 여겨지던 말과 사건이 두 개의 환영, 하나의 진짜와 하나의 가짜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길을 걸을 때 소도 만나고 말도 만나는 것처럼, 당나라 소정방이 개 타고 말 장사 한다는 이상한 일들처럼. 때론 천진한 아이가 진실을 말하고 주정뱅이가 미래를 말하기도 하는데, 이를 우연이라고 할지 운명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삶은 해석일 뿐이며 어느새 이야기로 둔갑해 현혹에 빠지게 한다. 분명 현혹되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유혹 말이다.


갑사로 가기 전 낮술을 하던 동료, 그는 하루 내내 취기에 젖어있는 술꾼인데 여자를 꼬셔오라고 했다. 사장동생이 날 갑사에 데려주지 않았다면 동학사로 갈 생각을 할 만큼 시간이 되지 않아 공주로 돌아왔을  것이고, 동학사의 그녀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를 만났다고 하자 사장동생은 환호까지 하며 다음 주에는 그녀의 집이 있는 대전으로 간다고 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지점으로 향하고 있는 듯했다. 진짜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우리는 강변을 걷고도 호텔 주변에서 산책하다 헤어졌다. 그녀가 차에 탔고 악수를 청했다. 나는 가늘고 희고 긴 손을 한동안처럼 바라봤다. 강변의 공원에서 그녀의 긴 손끝이라도 잡고 가는 허리라도 감싸야 맞았던가. 불길한 악수였다. 나에게 대부분의 악수는 이별이었다. 친하지 않은 사람끼리 악수를 한다는 책 속의 말까지 떠올랐다. 


그 후 몇 통의 전화가 오갔지만 기약을 할 수 없었다. 기약이 없는 관계는 깨지기 마련이다. 그녀의 집이 있던 대전으로 일하러 갔을 때도 우울한 비를 맞고 재개발이 시작된 폐허 같은 동네를 터벅터벅 걸었다. 슬픈 건, 전화를 할 때마다 그때의 그녀는 사라지고 있었다. 사선을 건너와 뭔가를 내려놓는다는 그녀는 먹고사는 생활의 귀신에 다시 붙잡혀 있었고, 당당하게 말했던 사색은 걱정으로 돌변했으며, 뭐든 다 웃어줄 것 같은 풋풋한 목소리는 예민함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그런 자신 때문에 사람들이 떠난다고 했다.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무리 나는 나이지만,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어, 우리가 될 때 행복이 찾아오는데.


며칠 후 그녀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날 만나려고 했지만, 난 이미 대전을 떠난 후였다. 대전으로 달려가 한 시간이라도 만나고 싶었지만 그날따라 일이 늦게 끝났다. 그곳은 충청의 경계를 넘어 경상의 땅, 성주였다. 마침의 때는 때를 버리고 이미 마침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날도 날 위한 시간이라기도 보다 그녀에게 남는 시간이었다. 갈수록 실망감으로 마음이 내려앉았다. 이내 거짓말 같은 슬픔이 찾아왔지만 슬픔마저 여행의 엇갈림에서 비롯된 것이니 시작의 변주일 것이다. 변해버린 그녀도, 그녀의 삶도 인정한다. 다만 그녀에게 사색이 되는 시간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또 돌이켜보면, 그곳에 간 것도 우연이었고 그곳에서 만남은 불가측이었다. 여행의 일부였던 셈이다. 기약을 할 수 없던 투정의 시간이 지나자, 다 욕심이란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욕망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되는데도, 욕망은 언제나 이루어지길 바라는 환영 같은 욕심을 부르기 마련이다그날의 아름다움은 그녀도, 우연한 만남도, 미래의 관계도 아닌 그날의 이야기, 그날 자체였던 것이다. 여행은 나의 영혼 일부는 분여하는 것인데, 그래 영혼의 빈자리에 가득 찬 허무만이 나에게 자유를 주는데. 그날 자신도 모르게 진짜의 나는 금강에 비친 성에 뛰어내렸던 것이다. 삼길포항에서 술잔에 비친 자신을 날름 삼킨 차장처럼 나와 나를 헛갈린 것이다. 같은 것이 두 개가 보인다면 그중 하나는 가짜인데 말이다. 문득  서름한 생각이 스쳤다. 비구니를 귀신으로 잘못 본 곳인데, 진짜 귀신에 홀려 진짜의 나를 강에 뛰어들게 했는지도. 하. 


공주로 가는 차속에서 영화 같다던 그녀의 말. 좋은 영화는 예상을 비껴가고, 괜찮은 로맨스는 이별로 끝나는데, 예상과 달리 시작도 못한 이별이니 괜찮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허니 사라져서 살아지는 것도 아름다웠던 가짜가 사라지는 것이며, 이내 더 진짜를 찾기 위한 삶이니 이 또한 아름다움의 여정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여행의 끝은 환영에 빠진 나를 구원하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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